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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다시 3월, 오늘부터 우리는 Me gustas tú 본문
다시 3월, 오늘부터 우리는 Me gustas tú
어느 시간강사
다시 돌아오는 3월, 코로나 유행 2년차의 우울한 개강을 맞이하며 상큼한 칼럼을 쓰고 싶었다. 휴대폰 재생목록에서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을 재생했다. 누군가에겐 오래 된 노래겠지만 내게는 나름 최신곡이다. 멜로디, 목소리, 심지어 노래 앞뒤의 음향까지 모두 완벽하게 상큼하고 발랄했다. 노래를 듣는데 주책없이 눈물만 그렁그렁한다.
3월의 캠퍼스는 ‘새로운 시작’이란 단어에 딱 어울리는 공간이다. 신입생들은 낯선 캠퍼스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재학생에게도 3월은 방학의 끝과 수업의 시작을 의미한다. 수업을 듣지 않는 휴학생, 수료생에게도 3월은 갑작스레 늘어난 사람들로 학교 어디를 가도 붐비는 계절의 시작이다. 학생들 입장에서 보이지 않겠지만 강사들에게도 3월은 낯선 시간의 시작이다. 앳된 얼굴의 강사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또는 일상의 피곤한 얼굴을 가리고 강의실에 들어선다. 물론 코로나 유행은 앞서 늘어놓은 풍경을 빛바랜 수채화처럼 만들었다. 캠퍼스는 곧 개나리와 철쭉, 봄볕으로 선명한 색깔을 찾아가겠지만 낯선 웅성거림으로 가득 찬, 상기된 얼굴들로 붐비는 캠퍼스는 좀처럼 다가올 것 같지 않다. 봄이 왔지만 캠퍼스는 여전히 코로나 블루로 색칠해진 것만 같다.
사실 다시 돌아온 3월이 마냥 행복하지 않은 건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만이 아니다. 이전의 3월도 낭만만으로 가득 찬 적이 단 한 번 없었다. 모든 ‘시작’을 설렘과 두근거림만으로 설명하는 건 일종의 폭력일 수 있다. 캠퍼스 생활의 새로운 시작은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용기가 가슴 속에서 중앙광장 분수처럼 치솟는 사람은 어떤 길을 가도 두렵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내 손에 쥐어진 도구에 따라 약간의 상기된 흥분부터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공포까지 느낄 수 있다.
캠퍼스에서 10년 동안 봄을 맞이하고 익숙하다 못해 지루했던 어느 3월, “캠퍼스에서 내가 손에 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캠퍼스의 모든 게 공기처럼 익숙해져서 안암역에서 도서관까지 눈감고도 갈 수 있을 것만 같던 날. 누군가는 학교 건물을 찾지 못했고, 다른 누군가는 조교와 장학금 정보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헤매고 있었다. 낯선 시스템에서 수강신청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려움을 누구에게 말하고 도움을 얻어야 하는지, 앞에서 웃고 있는 나에게 질문을 해도 되는 것인지 등을 고민하고 주저하는 얼굴을 여럿 만났다. 나를 떠난 “왜 묻지 못하지?”라는 질문은 “왜 듣지/보지 못하지?”라는 질문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야 내 손에 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3월 개강을 ‘새로운 시작’이라 명명하고, 그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출발선에 선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그런데 모두를 똑같은 모습으로, 동일한 출발선상에 서있는 형태로 그려서는 안 된다. 같은 학과, 같은 세부전공, 같은 과정과 학년일지라도 우리는 다른 출발선상에 서있다. 눈에 보이는 경제 조건의 차이부터 자세히 보아야 간신히 보이는 경험과 조건의 차이들. 이러한 차이는 출발선에 서있는 사람의 위치와 손에 쥔 도구의 차이로 나타난다. 차이가 차이로만 끝난다면 차라리 다행일 텐데 차이는 차별로, 차별은 권력의 높낮이를 만들어낸다. 우린 다르게 출발했지만 쉽게 적응하고 자주 웃을수록 승자로, 낯선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할수록 부적응자로 불린다. 새로운 환경에 왔으면서 왜 스스로 적응하지 못하냐고 힐난한다. 고통마저 당신의 선택이고 책임이라 말한다. 권력과 위계로 가득 찬 대학 공간을 마치 무중력 진공상태인 것처럼 말한다. 내가 속한 공간이 아늑할수록, 별것인 일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에 당신은 안전한 대학 생활에 착륙할 수 있는 초대장을 받은 셈이다. 이 초대장은 요람의 안락함을 제공하지만 타인의 고통에 눈감을 수 있는 선글라스이기도 하다. 성별‧ 장애 유무‧출신 등에 따른 차별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 버린다. 내 앞엔 따라 잡아야 할 경주마만 보인다. 고통은 오로지 나만의 것으로 느껴지고, 대신 나 스스로 경주마가 되어버렸단 사실은 잊게 된다.
다시 찾아 온 3월, 캠퍼스는 ‘새로운 시작(들)’로 가득 찼다. 코로나 유행으로 캠퍼스에 사람이 줄었다. 낯선 공간에 타자로 도착한 사람에 대한 환대마저 지워졌다. 코로나 시대의 불편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3월의 캠퍼스가 봄볕으로 가득 차고, 그 따뜻함을 누구나 그늘 없이 누렸으면 좋겠다. 차이의 공간을 발견하고 잠시 멈춰 귀 기울인다면 참으로 좋겠다. 경주마가 아닌 손잡고 걸을 수 있는 사람으로 당신 곁에 서고 싶다.
널 향한 설레임을/오늘부터 우리는/꿈꾸며 기도하는/오늘부터 우리는/저 바람에/노을 빛 내 맘을 실어 보낼게/그리운 마음이 모여서 내리는 – 오늘부터 우리는(여자친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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