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면/과학칼럼

때 이른 개화는 기분 탓이 아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5. 5. 00:10

때 이른 개화는 기분 탓이 아니다.

 

심혜린 과학칼럼니스트

 

긴 겨울이 끝나고 색색의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 찾아왔다. 3월 무렵 봄을 알리듯 피어나는 개나리와 목련부터 시작해 완연한 봄을 알리는 4월의 벚꽃과 화사한 5월의 장미에 이르기까지, 봄이 무르익어감에 따라 발견할 수 있는 봄꽃들을 다들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봄꽃이 전보다 빨리 피어나는 것 같다거나, 이전과 달리 각종 꽃이 동시에 피어나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기후 변화로 인해 꽃들의 개화 시기가 변하고 있다는 보고 사례를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9년 국립수목원에서는 <기후변화와 한국 산림의 식물계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2009년부터 2018년까지의 식물 계절 현상을 분석해 발표한 바 있다. 관측 결과 식물의 개엽, 개화, 열매 생성 시기 등 식물의 계절 현상이 빨라진 것이 확인되었으며, 특히 관목류를 포함한 낙엽활엽수가 기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보고서에 의하면 1도 기온상승에 대해 진달래와 철쭉은 약 6일 정도, 졸참나무, 자귀나무, 생강나무 등은 약 2~3일 정도 개화 시기가 빨라진다. 초본류 역시 봄 평균온도 1도 상승 시 약 4.6일 정도 개화가 빨라지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지난 3월 17일 기상청에서 발표한 자료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봄꽃 3종인 개나리, 진달래, 벚꽃의 개화일 전망 분석 결과 1950년대에 비해 2010년대에 이미 각 꽃의 개화 시기는 개나리 3일, 진달래 9일, 벚꽃 7일 수준 빨라졌다. 차례대로 피어나던 봄꽃들이 봄철의 이상 고온 현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개화하는 경향도 뚜렷하다. 기상청은 21세기 전반, 중반, 후반기의 세 봄꽃의 개화 시기를 두 가지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예측했다. 그 결과 온실가스를 감축해 기온 증가 폭을 낮추는 저탄소 시나리오에서는 21세기 후반의 봄꽃 개화 시기가 현재 대비 10~12일 앞당겨지지만, 기온 증가가 크게 일어나는 고탄소 시나리오에서는 개화 시기가 23~27일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일반적으로 진달래보다 개나리의 개화 시기가 빠르지만 21세기 후반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동시에 개화하거나 오히려 진달래가 더 빠르게 개화할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진달래의 개화 시기는 2월 말까지 당겨진다.

그렇다면 기온의 상승이 개화 시기를 앞당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1937년, 러시아의 과학자 차일라키얀은 꽃의 개화를 조절하는 호르몬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를 ‘플로리겐(florigen)’이라 명명했다. 당시 차일라키얀은 낮이 짧아지는 가을에 꽃이 피는 단일식물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장일(長日) 조건에서 키우던 꽃에 단일조건에서 자라던 잎을 접목하면 장일 조건에 놓여 있음에도 식물에서 개화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차일라키얀은 접목된 가지를 통해 개화를 촉진하는 물질이 이동했으리라 추측했다. 이후 개화에 관여하는 다양한 유전자가 발견되었으나 플로리겐의 정체가 밝혀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처음 가능성이 제시된 이래 약 7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알려진 플로리겐은 여타 호르몬처럼 작은 화학 물질일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FT(Flowering Locus T)라는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지는 단백질이었다. FT 유전자는 유전자 형질 변환이 쉽고 생장 주기가 빨라 대표적인 모델 식물로 사용되는 애기장대(Arabidopsis thaliana) 연구를 통해 알려진 개화 조절 유전자다. 애기장대에서의 개화 연구를 통해 개화를 촉진하는 4가지 주요 경로인 ▲광주기 경로(photoperiodic pathway) ▲자발적 경로(autonomous pathway) ▲춘화 처리 경로(vernalization pathway) ▲지베렐린 경로(Gibberellin pathway)를 비롯해 개화 시기를 촉진하거나 지연시키는 다양한 대사경로가 밝혀졌다. 이렇게 밝혀진 모든 대사 경로는 최종적으로 FT 유전자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수렴한다. 토마토에 존재하는 FT 상동 유전자인 SFT(Single Flower Truss)가 모든 현화식물에서 개화를 촉진한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기후 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봄꽃 개화 시기  ⓒ 기상청

 

기온이 21℃일 때 장일 환경에서 자라는 애기장대는 개화를 촉진하지만, 단일 환경에서는 개화를 지연하는데, 기온이 27℃가 되면 단일 환경에서도 애기장대의 개화가 일어난다. 이를 통해 낮의 길이뿐만 아니라 주변 온도도 개화 작용에 관여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후 변화와 개화 시기 간 상관관계에 관하여, 온도가 증가함에 따라 FT 유전자의 발현도 늘어남이 확인되었다. 이는 온도 변화가 FT 유전자의 발현을 제어하는 조절 유전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기장대를 이용한 분자생물학적, 유전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기온이 여러 경로를 통해 개화 시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온도 의존적으로 작동하는 유전자의 한 예시로 FLM(Flowering Locus M) 유전자와 SVP(Short Vegetative Phase) 유전자가 있다. 애기장대가 놓인 환경이 16℃ 수준의 저온인 경우 FLM 유전자는 FLM-β라는 형태의 단백질을 많이 만들지만, 온도가 27℃ 수준으로 상승하면 FLM-δ 형태의 단백질이 많아진다. FLM 유전자로부터 전사된 이 단백질은 경쟁적으로 SVP 단백질과 결합하는데, SVP―FLM-β 결합체는 FT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해 개화를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는 반면, SVP―FLM-δ 결합체는 억제 기능을 하지 않아 개화가 일어날 수 있게 한다. 그 외에도 높은 대기 온도는 FT 유전자의 과다 발현을 억제하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거나, FT 유전자의 발현을 활성화하는 물질을 활성화해 개화를 촉진하는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기후 변화는 봄꽃의 이른 개화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가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은 기온상승에 따라 개화가 지연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종자나 식물이 겨울에 저온 환경에서 충분히 노출되어야 꽃이 피어나는 춘화 현상에 의한 개화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구온난화로 겨울의 평균온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연간 기온의 상승이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에는 개화 기간 단축을 일으키지만 여름에 꽃을 피우는 식물에는 개화 기간을 연장하는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사례도 있다. 여름에 개화하는 식물 대부분은 첫서리 등 가을 환경 조건이 등장할 때까지 꽃을 피우지만 봄에 개화하는 식물의 꽃은 대부분 일시적으로 피고 지는 꽃이기 때문이다. 

한편, 기후 변화로 인한 이른 봄의 도래가 종 간의 식물 계절 현상의 차이를 감소시키는 반면 동일 개체군 내에서는 차이를 증대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지상 관찰과 기후 조작 실험 결과 기후 변화로 인해 동일 종의 개체군 내 개화 시기와 개엽 시기의 동시성이 최대 55%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연구진은 개체별로 낮의 길이에 대한 민감도가 다른 것을 원인으로 추측했다. 일반적인 속도로 봄 날씨가 찾아오는 경우 기온이 높아졌을 때 낮의 길이가 충분하므로 개체군 내 개화 시기가 유사하다. 그러나 이상 기후로 일조 시간이 짧은 시기에 기온이 이르게 높아지면 낮 길이에 민감한 식물은 개화하지 못해 개체 간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체 간 개화 시기의 동시성 손실은 개체 간 수분(pollination) 확률을 낮출 수 있다. 다만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다양성의 증가로 작용해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시각도 함께 제시했다.

개화 시기의 변화는 단순히 꽃이 이르게 피는 현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방면으로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잎과 꽃의 생산은 곤충, 초식동물 등 생태계의 다른 구성원에게 주요 자원이며, 생태계의 생산성 및 탄소 흡수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식물과 꽃가루 매개자(pollinator)의 상호작용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식물의 개화 시기와 꽃가루 매개자의 활동 시기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이는 식물의 수분과 유전자 교환을 어렵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종자의 양이 감소하고 품질이 저하된다. 조기 개화가 꿀의 품질이나 꽃의 향기, 색, 기관 발달 등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또한, 식물로부터 꿀 등 먹이를 얻는 꽃가루 매개자의 생존에도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지난 4월, 경기도농업기술원은 배꽃 개화 시기가 앞당겨짐에 따라 개화기 이상저온 피해에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다. 지난 4월 기온이 높아지며 일반적으로 4월 중순 이후 개화하는 배꽃이 평년 대비 8일에서 10일까지 빠르게 개화하는 현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은 개화 이후 다시 온도가 낮아지는 경우를 대비해 보온 대책을 세우고, 매개 곤충의 활동력 저하로 수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인공 수분을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기후 변화에 따른 식물의 개화 시기 변동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채롭게 피어나는 봄꽃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높은 기온이 애기장대의 개화 조절 경로에 미치는 영향. 빨간 선은 억 제, 초록 선은 촉진을 의미한다.

ⓒ Tun, Win, et al. “Influence of Climate Change on Flowering Time.” Journal of Plant Biology 64.3 (2021): 193-203.

 

 

 

※해당 글의 참고 문헌은 온라인 버전에서 공유합니다.

 

그림 설명

  • 그림 1. ▲기후 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봄꽃 개화 시기 Ⓒ기상청
  • 그림 2. ▲높은 기온이 애기장대의 개화 조절 경로에 미치는 영향. 빨간 선은 억제, 초록 선은 촉진을 의미한다. 

 Ⓒ Tun, Win, et al. "Influence of Climate Change on Flowering Time." Journal of Plant Biology 64.3 (2021): 193-203.

 

 

참고 문헌

- 국립수목원, <기후변화와 한국 산림의 식물계절>, 2019

  • 기상청 보도자료, 온실가스 감축 없으면, 21세기 후반 봄꽃 2월에 필 수도(2022.03.17.)
  • Tun, Win, et al. "Influence of Climate Change on Flowering Time." Journal of Plant Biology 64.3 (2021): 193-203.
  • Corbesier, Laurent, and George Coupland. "The quest for florigen: a review of recent progress." Journal of experimental botany 57.13 (2006): 3395-3403.
  • Turck, Franziska, Fabio Fornara, and George Coupland. "Regulation and identity of florigen: FLOWERING LOCUS T moves center stage." Annu. Rev. Plant Biol. 59 (2008): 573-594.
  • Zohner, Constantin M., Lidong Mo, and Susanne S. Renner. "Global warming reduces leaf-out and flowering synchrony among individuals." Elife 7 (2018): e4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