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답을 찾아야 한다. 반드시.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한다. 반드시.
세상이 시끄럽다고 말하기도 입 아픈 요즘이다. 한 국가의 대표가 권력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며 여론을 조작하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순진하고 모질지 못한 탓’이라며 감싸는 기만적인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차별과 억압을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가면으로 가려왔던 바다 너머의 먼 나라는, 소수자들을 더욱 억압할 것을 공개적으로 예고하며 이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흉내 내는 최소한의 양심조차 사라진 듯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니, 제대로 가고 있던 적이 있기는 했던가. 세상을 향한 분노가 인간에 대한 환멸과 좌절까지 가기 전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이런 세상 속에서 나는 왜 인문학의 길을 택했던가. 인간이, 인간이 만든 세상이 뭐가 예쁘다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지.
우스갯소리처럼 말하곤 하지만, 나는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애정을 그다지 느끼지 않는 편이다. 인간이 위대하다거나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라는 낙관적이고 순진한 기대와는 달리, 나에게 인류애란 오히려 인간과 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파헤치고 그 안에서 억압되어왔던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일 테다. 따라서 인문학을 업으로 선택한 데에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던 것 같다. 몇 달 동안 공부한 것을 당장 결과물로 낼 수는 없더라도, 인간에 대해 배우고,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나아가는 것이 내 인생, 내 주변 사람들, 그리고 언젠가 우리 사회까지도 물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인문학은 인간 사회와 내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자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나를, 그리고 인류애를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의 위기’가 지적된 지도 어언 20여 년. 정부에서도 학교에서도 ‘미래 지향적인’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기술교육만이 중요하고 인문사회에는 시간과 예산을 투입할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인문학은 반드시 채워야 할 소양이 아니라, ‘굳이’ 시간이 남는다면 탐구할 만한 무언가일 뿐이라는 듯이. 이처럼 인문학을 홀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이미 너무나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는 동시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디지털 성폭력과 기술 윤리의 공백, 그보다 더 깊이 흐르는 교육의 위기까지. 거대하고 튼튼한 배를 빠르게 만들어낼 능력을 키우고 있지만, 정작 그 배를 어디로,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를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필수 교양 과목에서 인문학을 배제해버린 학교의 교양 교육 재편 결정을 두고 모 교수는 일인 시위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신입생들에게는 교양 교육을 지켜내지 못해 미안하다며, 대학원생들에게는 점차 강단에 설 기회가 없어질 상황이 미안하다며. 민주주의가 역행하고 차별과 혐오가 다시금 부상하고 있는 요즘, 인문학은 그저 유식해 보이기 위한 사치품 따위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인생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탐구하고 갖추어야 할 교양이다. 거대하고 튼튼한 배가 망망대해에 속절없이 빠져버리고 전복되지 않게 하려면,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 한다. 온갖 문제들로 소란스러운 지금, 그 해답은 다시 인문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