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면/학술동향

제2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

Jen25 2025. 3. 5. 00:12

제2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

▲ 제2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가 지난달 12-13일 개최되었다.

  지난달 12일부터 13일까지 성균관대학교에서 제2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가 개최되었다. 상허학회, 한국근대문학회, 한국극예술학회의 학술대회와 구보학회, 한국여성문학학회의 콜로키움도 함께 열렸으며 다양한 주제에 대한 발표와 토론, 토의가 이루어졌다. 더불어 포스터 발표와 좌담회 및 학술 포럼도 마련되었다. 2024년 10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문학사적 사건에 부쳐 한국근대문학회와 상허학회는 한강 소설에 대한 발표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극예술학회는 퀴어의 개념을 성적 정체성에 국한시키지 않고 젠더, 인종, 비인간 등의 차원으로 확장하여 논의했다. 구보학회는 비인간과 생태라는 주제에 집중했으며, 한국여성문학학회는 2000년대 여성 문학을 중심으로 발표하였다. 포스터 발표 세션에서는 디지털 내러티브와 관련해 발표를 기획했으며 교양교육으로서의 문학교육에 관한 좌담과 포럼이 진행되었다. 또한 대학원생 설문, 연구자 독서경향, 전국 세미나 소식, 국어국문학과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발표 가 이루어졌다. 고려대학교 현대문학 박사수료생 석희진은 한국현대문학자대회를 준비하는 현장이 마치 “집단 치유의 현장”과도 같았다고 회고했다. 현대문학을 연구하면서도 동시에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온전히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문학자대회는 치유의 세션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와 같은 문학자들의 치유의 장 속에서 이루어진 발표들 중 본지는 두 편의 포스터 발표와 두 편의 발표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디지털 내러티브의 안과 밖 

  

  2월 12일 오전, 한국현대문학자대회에서 '디지털 내러티브'를 주제로 포스터 발표 세션이 마련되었다. 오영진은 <기계와 함께 쓰기>라는 발표를 진행했다. 발표에서 소개된 『성수 사이버펑크 사가』는 인간과 GPT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소설이다. 미래의 성수동을 배경으로 하여 "최소한의 과학적 정합성"을 토대로 소설을 만드는 것이 조건이며, 사용자의 문장에 맞춰 GPT가 이야기를 생성한다. 이야기는 9번에서 12번 안에는 완결되고 맨 처음 GPT가 사용자에게 제시하는 짧은 도입부에는 캐릭터가 랜덤으로 등장한다. 현재의 생성인공지능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완전한 창조가 아니라 기존의 데이터를 이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이 같은 생성인공지능을 활용하기 위해 발표자는 "언어의 잠재공간"으로부터 인공지능에게 적절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작품의 개발자인 서울과학기술대 학생들은 스토리 자극을 고려해 인물들을 설정하였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 사용자의 역할이다. 인간 사용자는 기계에게 미시적 부분들에 대한 창작 노동을 맡기면서 구조적이고 거시적 차원에서의 추상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기계는 인간이 행해야만 하는 반복적 창작 노동의 일부를 대체해줄 뿐,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 적절한 '보간(Interpolation)'을 요청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이진송은 <망탈리테로서의 밈과 문학적변용> 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진행했다. '밈'이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비롯된 용어로, 현재는 인터넷에서 널리 확산되는 이미지나 문장을 가리킨다. 밈은 당대의 집단적 감수성과 지성을 반영하는 "총체적인 문화코드"로 "'다산성, '복제 정확도', '긴 수명'"이 핵심적 조건이다. 문학도 유머가 섞인 밈화되어 널리 퍼지고 있는데, 가령 '김첨지'나 '점순이' 등 유명한 소설 속 인물들,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이 밈에 사용되고 있다. 문학의 일부가 밈으로 변용되는 과정에서는 의미의 맥락이 함께 변화되기도 한다. 장류진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는 "노동의 가치가 폄하되고, '불로소득'이 미덕이자 선(善)이 되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나, 현재 인터넷 상에서는 과장된 감사함을 표현하는 문장이 되어 있다. 이러한 밈들은 현대적 도시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개별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연결을 전제한다. 앞으로 이러한 밈들의 "창조적 변형"을 기대해볼 만하다.

 

차이 속에서 ‘여성문학’을 재질문하기 

- 『채식주의자』의 읽기 어려움을 읽는 것으로서 젠더 번역

 

 

  상허학회의 고윤경은 『채식주의자』의 번역에서 비서구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간과된 지점에 주목했다. 발표자는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이 해당 텍스트의 ‘읽기 어려움’이라는 쟁점을 환기하며 읽기 어려움의 근본적 원인을 특수한 문화적 맥락에서 찾는다. 영국인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는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지난 2016년 한강과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했으며 극찬을 받았다. 스미스의 번역이 서구적 번역 규범을 따른다고 비판하는 논의들도 있었지만 이러한 논의들의 쟁점은 첨예화되지 못한 한계를 가졌다. 발표자는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이 서구적 개념을 전제한다고 보았다. 주인공 ‘영혜’가 놓인 상황과 그녀의 행위는 영문학적 ‘젠더 발달’ 및 개인주의적 정체성에 기반해 번역되어 있으며, 원문 소설이 포착한 한국의 특수한 젠더 형성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이와 같은 영역본에서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는 행동은, ‘비서구 사회의 비개인성과 가부장제에 대한 반대’라는 단순한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따라서 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접근을 통해 원문 소설이 포착해 낸 한국 사회 특유의 젠더 발달을 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스미스는 번역가의 재량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채식주의자』가 영미권에서 쉽게 수용될 수 있도록 원문 소설의 난해한 부분들을 생략했다. 이 과정에서 영미권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 문화의 특수한 맥락들은 없어졌다. 스미스는 『채식주의자』에 대한 한국 여성들의 이해가 영국 여성인 본인의 것과 유사하다고 보고 『채식주의자』가 개인적 권리를 획득한 현대 한국 여성들의 심리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실제 한국 여성 독자들은 스미스가 생략해버린 특수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들을 읽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친다. 스미스는 『채식주의자』를 ‘극단적이고 기괴하다’고 생각하는 한국 남성 독자들과 달리 한국 여성 독자들은 소설 속 여성의 저항적 행위에 매료되었을 것이라고 보았지만, 한국 여성 독자들에게 있어서도 『채식주의자』는 불편하고 어려운 텍스트이다. 다시 말해 스미스가 『채식주의자』 번역에서 상정한, 서구적 개념의 개인주의적이며 주체적인 여성성과 『채식주의자』에 드러난 여성성은 잘 부합되지 않는다.

  따라서 『채식주의자』는 매우 세심하게 독해해야만 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발표자는 스피박(Spivak)의 논의를 제시한다. 스피박은 벵골 여성작가 마하스웨타 데비(Mahasweta Devi)의 단편소설들을 영역하고 해석한 바 있다. 스피박은 서구중심적인 관점이 아니라 제3세계의 특수한 맥락을 고려하여 하위 주체 인도 여성이 겪은 젠더화 과정을 읽어냈다. 가령 그녀는 데비의 소설 『젖어미』에서 여성 인물이 젖가슴 제공 노동을 통해 반복적으로 하위 주체로 자리잡게 되는 모습을 포착했다. 이 과정에서 벵골 여성이 겪는 여성화 방식은 유럽적 여성 정체성에 기반해 읽히지 않는다. 이와 같이 다른 문화권 작품을 번역하고 해석할 때에는 해당 문화권의 맥락을 세밀하게 파악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서구 사회의 경우 가정은 사랑과 유대가 존재하는 공간이자, 주부는 “가정의 천사”로 여겨진다. 반면 한국은 식민지와 한국전쟁, 개발독재 등 굵직한 역사적 파고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가정의 생산과 재생산을 위해 “무자비하게 동원, 소모되어”왔다. 이를 통해 『채식주의자』를 볼 때, 영혜가 고기를 거부하고 성관계를 거부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더 이상 여성 주체성의 확립이나 가부장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읽히기 어렵다. 실제로 영혜의 남편은 지배적이고 위압적인 가부장이 아니라 무력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고윤경은 비서구 한국 사회만의 역사와 환경을 고려한 “젠더 번역”을 통해서 생산적 의미 도출이 가능하다고 본다. 

 

 2000년대 소설의 신자유주의적 에토스와 젠더화된 속물성

 

     

  현대문학자대회 두 번째 날, 한국여성문학학회의 김예니는 2000년대 소설에 나타난 신자유주의적 에토스와 젠더화된 속물성에 대해 발표하였다. 1990년대는 이른바 여성 문학의 전성기였으나 1997년 외환위기의 발생으로 이 흐름은 지속되지 못한다. IMF의 구제금융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따라 재편되고 생존의 문제가 제일의 문제로 부상하게 되면서 비판적 논쟁이 오가던 공론장의 활기는 시들고 말았다.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인적 자원으로서의 개인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경영’하게끔 만들었다. 인간은 물화되어 자발적으로 자신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데 이와 같은 행위는 ‘합리적’인 행위가 된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분투는 개인을 원자화하고 타자와 분리하지만,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작용은  생존의 불안에 의해 은폐된다. 즉,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은 합리적 개인이 경제적 가치 산출을 위해 자신을 경영하고 물화하게 만들지만,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의 구조적 힘은 은폐되고 모든 것이 자율적 개인의 선택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거대한 공적 질서와 폭력은 ‘사적 개인, 합리적이며 자율적인 개인’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인간 모델 뒤에 자신을 숨긴다.

  한편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억압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가혹하게 작동하였다. 개인의 자율성을 표방한 신자유주의는 남성 중심 노동시장과 공존하여, “‘고개 숙인 아버지’를 통해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면서 가장의 위기 담론을 확산”했다. 실제 노동 시장에서 남성의 실업률은 상대적으로 낮았으며 여성의 해고 가능성이 더 컸지만, 가장의 위기 담론은 이러한 사실을 지워 내며 여성에 대한 백래시(Backlash)를 추동하였다. 이에 따라 ‘역차별’론, ‘된장녀’ 담론을 필두로 여성 혐오적 담론들이 생성되었고 이는 ‘김치녀-꼴페미’라는 혐오 담론들로 이어지게 된다. 발표자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톺아보며, 본론에서 세 가지 장을 마련하여 2000년대 여성의 위치와, 소설 속에서 여성의 형상을 살핀다.

  발표자는 2장 <중산층 의식의 위기와 불황 속 생존전략의 수정>에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속물성이 합리적인 개념으로 선택된 현상을 살핀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물성이란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비판적 작업도 소설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가령 박완서는 중산층의 욕망과 허위의식을 폭로하고 비판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불황의 불안 속에서 속물성은 합리적인 가치이자 윤리로 제시된다. 개인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가꾸고 노력하는 주체가 되어야만 한다. 성공과 실패, 그에 따른 책임은 모두 ‘자율적 개인’ 각자에게 돌아가게 되었으며, “여성(성)은 자본주의에 맞춘 근대적 남성성을 기준으로 ‘자본화’”됨으로써 개인 간 성별의 차이는 소거된다. 특히 여성의 해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여성의 빈곤 위기는 심해지고 여성은 자신의 여성성을 경제적 가치로 치환하여 생존하고자 한다. 여성은 물화되고 자본화된다.
  3장 <신자유주의적 에토스와 여성의 자본화>에서 발표자는 2004년 출판된 김경욱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남성 작가의 시선에서 본 당대의 탈낭만화된 사랑을 그린다. 소설 속 남성 인물은 은행을 다니다가 그만두려는 아내의 의도를 진지하게 헤아려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아내가 은행 유니폼을 입지 않아 더 이상 성적으로 매력이 없어질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낀다. 그는 아내와 헤어지고 나서야 자신이 아내를 대상화한 것을 깨닫는다. 소설 속에서 “매력 자본을 잃”고 대상화된 여성, “자본화할 수 없는 여성의 문제”는 신자유주의라는 구조적 차원이 아닌 개인적이고 사적인 차원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한편 2002년 발표된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여성이 가진 중산층 의식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주인공 유리는 자신의 여성성-순결을 교환가치로 삼아 자기 경영을 하며 상승혼을 꿈꾼다. 유리는 속물성이 합리적 가치이자 도덕으로 자리 잡은 당대의 질서를 내면화한 인물이다. 유리에게 “이데올로기의 바깥은 없다.” 그러나 상승혼에 대한 유리의 꿈은 좌절되고 이를 통해 작가는 신자유주의 질서에 순응한 여성이 ‘여성성’으로 위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음 보여준다. 같은 작가의 소설 『트렁크』에서도 여성성이 자본화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경제적 위기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 주인공은 구직 활동을 하는데 직무 능력이 아닌 ‘쌍커플’ 덕분에 성형외과 병원에 취직하게 된다. 불공평한 경제적 위기 속에서 여성은 자신을 물화하여 이용할 때에만 경제적 성취를 이루어낼 수가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발표자는 4장 <젠더화된 속물성과 여성 없는 타자성>에서 속물성과 여성의 접합 지점을 살펴본다. 2000년대 ‘된장녀’ 담론은 경쟁에서 패배할 것을 두려워하는 남성들이 ‘소비’하는 여성을 혐오하는 매커니즘에 기반해 있다. 이러한 담론의 형성은 신자유주의적 에토스의 확산과 맥을 같이 한다. 이때 속물성은 여성이라는 성별로 젠더화되었다. 이와 같이 젠더화된 속물성에 대해 2000년대 소설은 일종의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윤성희의 『유탄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에는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원자화된 개인을 뛰어넘어 타자와의 연대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이현의 『트렁크』는 철저한 자기 경영을 행하는 여성 주인공이 나타난다. 그녀는 여성임에도 여성성이 소거된 시선, 남성 중심적 질서를 내면화한 시선을 통해 직장의 여성 인물들을 평가하고 그들이 가정과 직장에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분투하는 모습을 경멸한다. 어느 날 주인공의 트렁크에는 소외되어 살아가던 선미가 죽은 채 들어 있고, 주인공은 고립된 채 살아가는 개인의 고단함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에토스를 내면화한 여성이 소녀의 타자성을 발견한” 모습이다. 정이현의 『삼풍백화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다. 중산층인 ‘나’는 삼풍백화점에서 일하던 R과 한때 친하게 지냈다. 신문에는 삼풍백화점의 붕괴가 향락적 세태에 대한 경계를 의미한다는 글이 실리고 ‘나’는 이에 분개한다. 발표자는 이 소설이 소극적이라는 한계는 있으나 개인의 원자화를 넘어 타자와의 연대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본다. 또한 성별이 소거된 시선은 결국 남성 중심적 시선에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며 타자로서의 여성 서사에 대해 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 정리 : 정재훈 기자 wjd8889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