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향한 사랑–프란치스코 교황을 기억하며
모두를 향한 사랑–프란치스코 교황을 기억하며
손민호 프란치스코 신부(한국 외방선교회)
저는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06학번으로 입학하여 졸업한 후, 현재는 한국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로서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사목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한국 사회는 교회 안팎을 막론하고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습니다. 시민사회 단체들의 성명 발표와 추모는 그를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한 시대를 대표하는 ‘어른’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애도의 표현을 넘어서, 한국 사회가 그를 얼마나 폭넓게 수용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외국인이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놀라울 정도로 친근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는 그가 단순히 소박한 행보를 보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겪는 아픔과 갈등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이에 대해 연대와 화해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를 늘 곁에 있던 어른처럼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메시지가 세계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교사로서 포르투갈과 모잠비크에서 활동하며 경험한 바로는, 그의 메시지는 문화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불러왔습니다.
교황으로 선출되자 그는 아시시의 성인을 본받아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자기 삶의 방향성을 천명하는 선언이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십자군 전쟁 중 단신으로 이슬람 진영을 찾아가 평화를 호소하고, 술탄의 감동을 끌어내며 예루살렘 성지의 관리권을 얻은 것처럼,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갈등과 전쟁의 한복판에서 사랑과 화해를 외쳐왔습니다.
저는 2023년 리스본 세계 청년대회에 참가하여 그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동성애 성향의 가톨릭 청년들도 공식적으로 초대되었고, 일부 참가자들로부터 이들에 대한 배척이 일어나며 갈등이 격화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는 다음 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누구의 것입니까?” 이어서 그는 “모두(todos)의 것입니다. 다시 한번, 나를 따라 외쳐봅시다. 교회는 모두의 것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외침은 논리적 해명보다도 더 강력한 호소였고, 50만 명의 청년들이 함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후 교황청이 발표한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 지침은 포르투갈에서는 다문화 사회의 현실 속에서 일정 부분 받아들여졌지만, 아프리카에서는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카메룬 출신 성직자들은 전통적 성 관념과 공동체 문화를 무시한 처사라고 강하게 반발했고, 일부 아프리카 주교회의 등은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모잠비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에서는 여전히 생계 문제가 최우선이며, 성에 대한 인식은 공동체 중심의 오랜 전통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황의 진보적인 메시지가 큰 설득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어록은 한국에서도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말은 간결하지만, 깊은 통찰을 담고 있었고, 복잡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모잠비크에서는 그의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이는 드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좋은 사람’, ‘사랑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는 모잠비크를 실제로 방문했고, 복잡한 현실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따뜻한 태도와 미소로 사람들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존재 자체로 화해를 실천한 인물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마지막까지도 전례 없는 여정을 걸었습니다. 검소한 차를 타고 다녔고, 형식보다 본질을 중시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를 교회의 전통을 약화시킨 인물로 비판했지만, 더 많은이들은 그를 사랑과 관심의 상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가르침을 넘어서, 행동과 삶의 방식으로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새롭게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은 전임자의 기조를 계승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 ‘레오’는 전통적 교황의 계보를 상기시키며, 보수와 진보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 교황 역시 단순하면서도 진심 어린 메시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 진보냐 보수냐의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서, 실제로 사람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느냐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교회는 모두의 것입니다”라고 반복해서 외쳤습니다. 이 말은 교회 안의 포용을 넘어, 우리가 속한 사회의 분열과 배제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는 언제나 경계선에 서 있는 이들과 함께하려 했으며, 제도나 이념보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에서 출발했습니다. 그의 사목적 태도는 교리적 해석 이전에 인간의 고통과 상처에 응답하는 교회의 모습을 되살리려는 시도였습니다.
고려대학교의 한 동문으로서, 그리고 한국 사회의 시민으로서, 우리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를 위한 공간’, ‘모두가 환영받는 사회’를 꿈꾸고 실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먼저 다가가고, 귀 기울이며, 손을 내미는 작은 실천 속에서 시작됩니다. 사랑은 때로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손, 한 걸음 먼저 다가가는 발걸음, 조용히 머무는 시선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사랑은 우리 곁의 작은 자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말없이 고통받는 이웃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곧 이 시대를 향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 사회를 더 깊고 넓게 만들 것이며, 결국 우리 자신을 더욱 충만한 존재로 이끌 것입니다. 교회도 사회도, 그리고 인간의 모든 관계도 그 출발점은 결국 ‘사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