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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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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현장 스케치

‘온 마을이 학교다’, 진천 마을학교 방문기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0. 10. 13. 11:28

 

▲진천군 작은 도서관 마을학교 학생들과 마을활동가 및 교육지원청 관계자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의무교육 영역에서까지 비대면 수업이 일반화되면서, 소득·지역·계층에 따른 교육격차 문제가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특히 이전부터 지적돼왔던 수도권-비수도권 간의 교육 자원·인프라의 차이로 인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지역별 교육격차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지역 차원에서 자체적인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하여 교육격차를 해소하려는 시도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충청북도에서는 10여 개의 시·군 교육청이 공동으로 행복교육지구를 운영하여, 지역 주민들이 함께 아이들을 돌보는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 중 진천행복교육지구에서는 온 마을이 학교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역 내 교육청·지자체·지역사회 등 다양한 교육 주체들이 마을 아이들을 자체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이번 10월호에서 진천군의 마을학교를 소개하고 아이들과 함께 지역만의 특별한 교육을 만들어가려는 이들의 열정과 노력을 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기자들이 직접 충천북도 진천군 마을학교 현장을 방문하였다.

 

먼저 진천군 교육청에서 마을학교 프로그램의 기획·운영자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후에 진천군의 마을학교 현장인 작은 도서관 마을학교로 이동했다. 기자들이 도착한 곳은 작은 도서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인근 아파트단지 내 왜소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문 너머로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다채로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협소한 교실 한쪽에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책상이, 반대쪽에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취재 기자들을 향한 아이들의 시선 속에는 약간의 호기심, 그리고 마스크를 뚫고 나올 듯한 장난기와 웃음이 담겨 있었다. 신나게 그림을 그리면서 영어 단어를 읽는 초등학교 1~3학년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은 현재가 코로나 시국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들 정도였다.

 

()·()·()이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학교

진천교육지원청은 지역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기반으로 행복교육지구 협의체제를 구축하고 마을교육 활동가를 양성하여 교육공동체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이른바 교육생태계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든 진천행복교육지구 사업은 진천군, 진천교육지원청 그리고 지역사회의 협력하에 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교육뿐만 아니라 상시 돌봄 프로그램도 함께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연합한 민··학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그러나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이 마을학교 운영을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현장에 직접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에서 진행하는 방과 후 수업만으로는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계속 행복교육지구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던 저로서는 아이들을 위한 상시 돌봄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영자, 생거진천교육발전공동체 사무국장)

 

수도권-지방 간의 교육 자원과 인프라 격차로 인해 진천교육지원청 쪽에서도 학교만으로 교육과 돌봄 수요에 응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에 도서관이나 주민센터와 같은 지역 내 시설을 활용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게 되었다. 실제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마을 주민들의 협조가 필요했는데, 마을 주민들은 우리 아이를 우리가 함께 돌보자는 의식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현재 작은 도서관 마을학교와 같은 교육공동체는 마을교사가 된 주민들의 재능기부를 통한 영어, 수학 등 교과 공부뿐만 아니라 진천군의 특성을 충실히 반영한 역사·문화 스토리텔링과 미술과 공예 등 예술 체험 활동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진천교육청에서 마을교사를 모집한다는 공고 보고 취지가 너무 좋아서 다른 학부모님들과 함께 지원하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학교 끝나고 동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놀 수 있고,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볼 수 있다는 취지에 깊이 공감했거든요.” (김민지님, 마을학교 놀이 담당 활동가)

 

마을교사이면서 학부모이기도 한 김민지 활동가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재능기부를 하며 공동육아를 해왔다. 그러던 중 마을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장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해주었고, 교육청에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했으며, 여기에 직접 교육을 담당할 활동가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삼박자가 딱 들어맞게아이들의 입학 시기에 맞춰 마을학교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넉넉하지 않은 예산 내에서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우려와는 달리 중도에 그만둔 아이가 현재까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수요도 많고 잘 운영되고 있다. 김민지 활동가는 좋은 기회를 열어준 이장님과 교육청 관계자분들, 함께 참여해주시는 다른 학부모님들께 그리고 누구보다 열성으로 배워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을학교 기획과 운영상의 어려움

물론 정부, 학교,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는 마을학교가 처음부터 원활하게 운영된 것은 아니었다. ··학의 연계, 예산 그리고 시설 운영 등 여러 차원에서 어려움이 따랐다.

 

초반에 어려웠던 것은 민··학의 협력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사업에서 민은 상주(常住)하지만 관·학은 언제 담당자가 바뀔지 모른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저희의 목표는 관이 빠져도 자생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행복교육지구 프로그램이 지속가능한 형태로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죠. 그 작업을 지금 4년째 진행하는 중인데, 주민분들이 워낙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전망이 밝다고 생각합니다.” (박재우, 파견교사)

 

 “예산이 넉넉하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정부쪽에서도 이 사업의 중요성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어 상당히 많은 예산을 책정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수요가 예상보다 워낙 크고 코로나 국면으로 인해 더 커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이영자, 생거진천교육발전공동체 사무국장)

 

그밖에도 기획·운영 측과 현장 활동 측 모두 공간 부족과 시설 미비에 따른 어려움이 가장 크다는 것에 입을 모았다. 상시 돌봄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데 비해 진천군 내 교육공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시설은 여전히 열악하다. 특히 냉장고와 같은 비품은 예산 내에서 처리할 수 없어, 아이들에게 간식을 제공할 때 마을교사나 학부모님들이 직접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들고 오는 등의 불편이 비일비재하다.

 

안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놀고 싶어요.” (마을학교의 한 학생, 8)

 

한편, 코로나 사태로 인한 활동의 제한이 아이들에게도 큰 문제로 체감되는 듯했다. 이전 마을학교에서는 학교에서 하기 힘든 우드 버닝, 자연 체험물 만들기 등 지역의 자연환경을 체험하는 활동도 다양하게 제공했는데, 현재는 아이들의 안전을 우려해 단체 야외활동을 줄이고 만들기 등의 실내 활동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교육 환경을 제공하여 장기적으로 코로나19와 교육격차에 대응하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원격수업이 진행되면서 아이들의 교육격차 심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마을학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학습의 어려움과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시골이다 보니 좋은 독서실이나 스터디 카페가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부터 조성해가야 하죠. 덕산중학교의 경우 처음에는 학교 옆에 아이들이 와서 간식을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는데, 점차 아이들이 몰려들면서 이제는 거기서 시험공부를 합니다. , 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참 감사하게도 초반에는 마을교육가들께서 밤까지 계시면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살펴주셨어요. 지금은 교감 선생님께서 자원하여 아이들을 돌봐주고 계십니다. 올해 시작한 돌봄 프로그램인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효과적이고 자생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가고 있어서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신경미님, 진천교육지원청 행복교육지구 장학사)

 

코로나 사태로 인해 프로그램 운영에 차질을 겪고 교과 공부보다 아이들의 돌봄이 더욱 시급해진 상황에서 교육격차 해소 효과를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그러나 덕산중학교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먼저 물리적 기반과 환경을 조성해 가다 보면 장기적으로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게 되고, 그곳에서 재능기부와 자원봉사를 통한 보충과 심화학습이 충분히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아이들이 편하게 모여서 숙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정도지만, 향후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면서도 교육격차를 없애기 위한 수업이나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며 관계자들은 분명한 방향성과 함께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마을학교는 코로나 시대에 학력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장기적인 수단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현재 교육 환경이 비접촉(untact)으로 바뀌었고, 2019년 이전의 환경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모두가 알고 있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접촉(contact) 환경에서만 배우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돌봄 교실과 같은 공간이 꼭 필요해요. 교육격차 역시 이런 부분적인 접촉 환경을 통해서만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진천과 같은 지방에서는 말이죠.” (이아영, 마을학교 영어 담당 활동가)

 

 치열한 고민, 자발적 참여, 배려와 이해가 한 데 모여 가능했던 진천 행복교육지구 마을학교. 앞으로는 청소년 상담센터와 연계하여 심리상담이나 민주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교육 등 다양한 분야로 교육 프로그램을 확장할 예정이다. ··학의 협력으로 기획되고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지속되는 진천행복교육지구는 이상적이라 할 정도로 그 목표를 잘 실천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 교육격차 등 어른들의 고민은 뒤로하고 친구들과 공부하고 노는 게 재미있어서학교를 나와 마을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비록 수도권의 입시 위주의 체계적인 교육은 아니지만, ‘진천만의 교육을 받으러 아이들은 오늘도 마을학교에 간다.

 

 

 

최서윤 기자 seoyoon2290@daum.net

이영서 기자 youngseo51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