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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8면/미니픽션 (16)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오랫동안 대학원 신문 8면에서 미니픽션을 써주셨던 심아진 선생님께서 고려대 인근 카페 지담에서 북 콘서트를 진행합니다! 대학원 신문 독자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안내 심아진 소설가, 동화작가 성준은 차휘랑의 하숙집이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다소 낡았으나 운치 있는 건물인 데다 월세가 비싸지 않고 무엇보다 식사가 제공되는 점이 흡족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임용고시에 도전하기로 한 성준은 혼자 밥을 해 먹거나 사 먹는 데 질려 있었다. 성준은 차휘랑이 자랑스레 보여준 빨래 건조기 앞에서 입주를 결심했다. 살짝 걸리는 건, 겨우 스물두 살인 젊은 남자가 집주인이며 다소 이상한 말투를 쓴다는 정도였다. 제날짜에 하숙비 입금하소. 그건 정말 중요하요. 차휘랑은 성준이 궁금해할 걸 이미 예상했다는 듯, 그런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다는 듯 내처 말했다. 내 말투가 할머니 말투요. 오래 같이 살던 할머니가 이 집을 물려주고 돌아가셨소. 말하는 걸 들어서인가, 머리숱이 ..

심아진 굴토끼 아토가 ‘게으르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아토는 다른 토끼들처럼 신선한 풀을 찾아 깡충거리며 뛰어다니지 않고 마지못한 듯 아주 조금씩만 이동합니다. 배가 고프니 어쩔 수 없이 먹기는 해도 먹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토는 어제도 먹었고 엊그제도 먹은 씀바귀, 질경이들을 오늘도 습관처럼 먹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기만 합니다. 어째서 풀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은 걸까요? 또 냄새 지독한 똥은 어찌 그리도 많이 나오는 걸까요? 그래도 아토는 동굴 속에 있기보다는 동굴 밖에 있는 걸 더 좋아합니다. 새끼를 만들거나 잠만 자는 동굴 속 생활보다야 동굴 밖 생활이 차라리 낫기 때문입니다. 컴컴하고 비좁고 질척거리는 동굴은 정말이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역겹기 짝이 없습니다...

만유의 기억 심아진 명민은 부지런히 명함을 주고받으며 악수를 했다. 열세 살 소년의 얼굴을, 20년 만에 만난 수염 거뭇한 남자 어른들에게서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도 여전히 친한 정욱이 불러내지 않았더라면 나오지 않았을 자리였다. 아, 예성이구나, 라고 말하거나 김철민, 몰라볼 뻔했다, 라며 놀라는 와중에 누군가가 명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반갑다, 서명민. 그러나 명민은 거구의 사내가 건넨 명함에서 이름을 읽고도 도무지 그를 기억해낼 수 없었다. 류지호라고?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으나 명민은 내색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학과장에게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하며 말을 꺼냈다가 따끔하게 혼이 난 이후로 여간해선 그리 말하지 않았다. 명민은 제 기억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겸손하게 전..

한 놈은 잡는다 심아진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3대, 아니 4대가 식당 앞에 모였다. 얼마 전에 여든 살이 된 할아버지를 평생 단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아버지 얼굴에 언제나처럼 체념이 서려 있었다. 나 역시 “내가 죽어도 한 놈은 반드시 제대로 잡는다.”는 식의 신조를 지닌 할아버지를 당해내지 못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핑계를 대보았지만, 음식을 포장해 집으로 오겠다는 말에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날이 어렵다고 하면 다른 날, 또 다른 날을 잡자고 매일 전화할 게 뻔하기도 해서였다. 방역 4단계로 식당은 4인까지만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런 지침쯤은 가볍게 무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족이라고 말 안 하면 누가 알겠냐며, 네 명, 세 명씩 따로 들어가자고 했다. “이 집이..

한 놈은 잡는다 심아진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3대, 아니 4대가 식당 앞에 모였다. 얼마 전에 여든 살이 된 할아버지를 평생 단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아버지 얼굴에 언제나처럼 체념이 서려 있었다. 나 역시 “내가 죽어도 한 놈은 반드시 제대로 잡는다.”는 식의 신조를 지닌 할아버지를 당해내지 못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핑계를 대보았지만, 음식을 포장해 집으로 오겠다는 말에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날이 어렵다고 하면 다른 날, 또 다른 날을 잡자고 매일 전화할 게 뻔하기도 해서였다. 방역 4단계로 식당은 4인까지만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런 지침쯤은 가볍게 무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족이라고 말 안 하면 누가 알겠냐며, 네 명, 세 명씩 따로 들어가자고 했다. “이 집이..

-심아진(소설가·동화작가) 오늘은 내 기필코……. 혜나가 얼굴에 덮었던 마사지 시트를 휙 벗기더니 분연히 일어선다. 옆집에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기 때문이다. 내 돈 갚기는 어렵고 생일잔치는 한다 이거지? 돈 5만 원을 받으러 나가는 혜나의 얼굴은, 언젠가 양다리 걸친 전 남친을 후려치러 갔을 때처럼 결연하다. 옆집 사는 여자가 몹시 곤란한 얼굴로 우리 집 문을 두드린 건 한 계절 전이었다. 그날 저녁 혜나는 방충망을 툭툭 쳐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매미 때문에 예민해져 있었다. 여섯 개의 다리를 쩍 벌린 채 꼬리를 떨며 울어대는 매미가 뻔뻔한 추행범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혜나는 “이 나쁜 놈아! 에잇, 이놈!” 해대며 매미를 쫓다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옆집 여자는 뜻밖..

일그러진 진주 심아진 (소설가, 동화작가) 바로크에 관한 박사 논문이 창 없는 집에 나를 가둬둔 지 두 해째였다. 라이프니츠의 작고 완벽한 세계에 하릴없이 웅크리고 있던 나를 끌어낸 것은 참석이 불가피한 장례식이었다. 나는 커다란 이민 가방에서 심하게 구겨진 검은 양복 한 벌을 찾아냈다. 이사 온 후 짐을 정리하지 않은 건 짐을 부릴 만한 가구도 공간도 없어서였다. 장난감처럼 가벼운 다리미는 작동을 멈춘 지 오래였다. 재개발 밀집 지구인 동네에 그렇게나 많은 세탁소가 있다니 놀라웠다. 기다렸다는 듯 뺨을 때리는 햇빛을 피하며 걸어가는 동안 발견한 세탁소만 십여 군데가 넘었다. 명품, 백광 등의 이름이 붙은 세탁소와 코인세탁소, 크린이나 클린이라는 단어가 붙은 무수한 세탁소를 거쳐 발을 멈춘 곳은 이름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