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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타인에게 공감한다는 것 연극 김나볏 연극평론가 공감이란 타인의 상황이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짐짓 헤아려 알 수 있을 때 우리는 ‘공감한다’고 말한다. 흔하게 쓰는 말이지만 곱씹어 볼수록 어려운 말이다. 타인에 대해, 타자 마음의 문제에 대해 내가 과연 얼마만큼이나 같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까. 타인의 일에 진심으로 공감한다면 이후 행동 또한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며 나서는 경우는 나를 포함한 주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다. 무대로 눈을 돌려보자. 여기 8년째 침대에 누운 채 타인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비(Bea)’가 있다. 꽃다운 청춘의 나이인 20대를 지나고 있건만 비는 타인의 도움 없이는 침대 밖은커녕 스스로 몸을 뒤집기조차 어려운..
인터넷은 어떻게 젠더 편향을 강화하는가? 심혜린 과학칼럼니스트 “무의식적 편견은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다.” 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인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무의식적 편견을 형성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커서가 깜박이고 있는 화면 속 검색창일지도 모른다. 검색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왔다. 지난 2022년 국제학술지 PNAS에 게재된 연구 결과 역시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알고리즘에 의한 검색 결과에는 각국의 성 불평등 상황이 반영되어 있었다. 연구팀은 58개 국가의 구글 서버에서 각국의 언어로 ‘사람’을 검색한 뒤 나타나는 이..
고려대학교 축구부 100주년, 작년이 아닌 올해로 봐야 고려대학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석사과정 조형일 한국 스포츠에서 축구란 제1회 아시안컵 축구대회 우승컵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만큼 다른 종목과는 구별되는 특수한 지위를 인정 받고 있다. 한국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창단은 고려대학교 체육사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사에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시작이 언제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은 2021년 ‘보전 깃발이 날리는 곳에’ 전시에서 고려대학교의 전신 보성전문학교 축구부의 창단을 1922년으로 설명하였다. 반면 『고려대학교 100년사』를 비롯하여 고 인권환 교수의 『고대유사』 등 고려대학교 출판부..
하루만 침묵하겠습니다 정재훈 기자 준비하는 사람도 참여하는 사람도 집에 가고 싶어만 할 것 같은 예비군 훈련은 몇 번을 경험해도 적응하기 어렵다. 물론 여기에서 훈련의 구조적 문제를 규명하고 싶지는 않다. 물리적으로 참을 수 없는 정도의 고통이 있지도 않았고, 정신적으로 큰 압박을 경험할 일도 없었다. 저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훈련 자체가 필요한 이유도 있으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모두 똑같은 옷을 입은 채 입장 순으로 받은 번호표를 목에 걸고 나란히 열을 맞추어 같은 행동을 반복함을 지켜보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각자의 작은 ‘다름’을 관찰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마주한다면 더욱 그렇다. 예비군들은 저마다의 불만을 감추며 전투모를 착용하고, 지급되는 장비를 모두 같은 위치..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다. 살아 숨쉬는 그림자들.. 무엇이 무엇의 그림자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 그토록 뚜력한 그림자들인데도 너울너울.” -박시하, 「롤로와 메이의 책」
‘단순함’에 현혹되지 않기 아프면 병원에 간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이 당연하지 못한 일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다는 이유로 의사들이 모든 욕심을 버린 채 오로지 인류애만을 발휘하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주변에만 해도 예정된 수술일 단 며칠 전에 수술을 진행할 수 없으며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통보받은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의료계가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그 어느 직군보다도 막대하다는 것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그런데 현 사태를 보다 보면 기본적으로 파업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 이를테면 정작 중요한 배경과 이유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그저 파업의 주체를 악마화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고민하지 않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