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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무엇이 인생을 이끄는가 -최민우 「단순한 문제」, 『창작과비평』, 2024년 봄호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어딘가 수상쩍은 자기계발서의 제목 같지만, 살면서 뭔가 인생이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 누구나 한 번씩은 꺼내볼 법한 질문이다. 멋쩍게도 제목 바로 아래 첨언된 ‘단순한 문제’라는 제목이 꼭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처럼 읽힌다. 우리의 인생을 이끄는 것은 아주 복잡한 어떤 것이거나 꼬일대로 꼬여버린 우연과 필연의 실타래가 아니라, 아주 단순한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것 말이다. 또는 우연과 필연의 사건들로 삶의 복잡성을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인간이 많은 것을 우연적 요소에 기대고 있으며 필연적인 방식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니, 공허한 결론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삶을 좌지우..
신화가 되어버린 아버지와 길을 개척하는 딸 정용준 (《릿터》 2023. 12~2024. 1)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남성 영웅이 길을 떠나 모험을 하고 자신의 신(神)적 기원 혹은 왕의 후계자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아 회귀하는(그 행보가 꼭 ‘해피앤딩’은 아닐지라도) 근대 이전의 원형적 신화 플롯에서, 평범한 출생의 ‘문제아적 주인공’이 자신을 제약하는 사회 구조와 대결하여 마침내 패배하는(루카치의 잘 알려진 문장 ‘길은 시작되었으나 여행은 끝났다’를 떠올려보라.) 근대 소설의 플롯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면 그 수행자가 대부분 남성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러할까? 최근 한국 서사 가운데 모계 인물을 중심으로 오랜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사를 다시 쓰기 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
5면 문학의향기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창비, 2022.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새드 해피 크리스마스 12월에는 크리스마스가 있고 한 해의 마지막을 고하는 달이고 새로운 해를 맞는 달이니까 선물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뒤적이다가 김금희의 연작소설 『크리스마스 타일』을 찾았다. 총 일곱 편의 소설이 느슨한 형태로 이어진 이 책은 크게는 MTN이라는 방송사의 예능국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인물들의 저마다의 사정이나 그들의 친구, 가족 등의 이야기가 독립적으 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각기 다른 사정을 지닌 인물들은 각 소설에서 저마다의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12월을 맞는 마음이라는 건 무엇일까. 지나간 시간의 마무리, 새로운 삶의 맞이, 소복이 내리는 눈, 반..
할머니와 손녀 토베 얀손, 안미란 옮김, 『여름의 책』, 민음사, 2019.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최근 ‘여성모계서사’가 역사성을 확보하는 방식에 대해 흥미로운 평론 한 편을 읽었다. 여성들이 만들어낸 할머니의 문학적, 회화적 이미지는, 많은 경우 그들이 목격한 할머니의 모방이기보다 억압 없는 모성 또는 사심 없는 자애의 환상이지 않을까. ( 황종연, , 문학동네, 2023년 여름호, 433~444면 ) 요약건대 한국 문학에서 모녀는 혐오적 관계 혹은 어머니적인 것의 계승과 부정을 동시적으로 보이는 양상을 보이는 데 반해, 조모손녀는 그것이 해소된, 이상화된 관계처럼 보인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이러한 재현의 관건은 모녀와 조모손녀 자체라기 보다는 그렇게 재현된 ‘까닭’을 헤아리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그냥 지나가는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며 문진영 (현대문학, 2023년 6월호)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때가 되면 온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다루는 대범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그렇기를 바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때를 기다리는’ 방식의 사유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든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표어가 베이비붐 세대에서부터 진작 삶의 지침이 되어왔음을 고려하면, 뭐든 ‘되게끔 만드는’ 만능의 신자유주의적 주체를 이상적 인간상으로 설정해오는 일은 진작 시작된 듯하다. 이렇듯 ‘새 시대에 맞은 옳은 인간상’에 대한 이데올로기화는 급변하는 매체에 맞물려 자기 표현이 극도로 자유로워진 시대를 표방하며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
심어진 것과 퍼져 나가는 것 -최은영, , , 문학동네 2023.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어제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매달 개최되는 백여섯 번째 304 낭독회에 참석했다. 8월의 낭독회는 〈둘 이상의 마음이 한 자리에〉라는 제목으로 안내되었고, 두 명의 낭독자가 한 팀을 이뤄 목소리를 한 데 모으는 일명 ‘듀엣 낭독회’로 진행되었다. 하나의 텍스트를 둘의 언어로 나누어 말한다는 것은, 잠깐 사이 깜빡 잊어버릴 수도 있을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눠 기억하는 일과 닮은 것 같았다. 아마 8월의 낭독회에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세월호 참사와 304 낭독회는 그들의 마음에 씨앗처럼 심어져 저마다의 기억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 어떤 고통스러운 일에 대한 기억은 고통스러운 것의 지속이..
할 수 없는 것 욕망하기: 오늘날 문학이 재현하는 계급적 욕망에 부치는 두 번째 이야기 선우은실 평론가 자신을 둘러싼 조건은 그 자신이 가장 넘어서고 싶은 무엇이며, 동시에 자신이 가진 것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능가하기 위한 가장 큰 동력이 되는 동시에 근본적인 제약으로 작동한다. 오늘날 계급이 주지되는 방식이자 그것이 욕망을 추동하는 방식이다. 과거, 이 ‘조건’의 많은 것을 결정짓는 것은 자본이라고 여겨져왔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자본이 나의 계급을 조건지우며, 나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투한다. 이런 속에서 인물은 자신의 계급 탈출에 대한 선망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세속적 성취가 근본적인 계급 탈출이 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자괴 혹은 세속적 욕망으로 그것을..
-정선임, 「무슨 말인지 알죠」,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산책방, 2022. “무슨 말인지 알죠?” 정선임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고 소설 내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 말은 확인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했을 때에도 사용된다. 이런저런 말의 자리를 많이 비워두었지만 당신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라는 의미로. 소설은 무엇에 대해 “무슨 말인지 알죠”라고 묻는가. 이를 따라가기 위해 소설의 구조를 먼저 짚는다. 이 소설은 크게 두 개의 시점(point of view)을 교차시킨다. 소설은 우선 안나의 1인칭으로 현재의 서사를 진행한다. 안나는 현재 병상에 누워 있는 노인 여성으로, 손녀 율리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현재를 떠올리고 과거를 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