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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다름’이라는 두려움을 돌파하는 홀로그램 본문
‘다름’이라는 두려움을 돌파하는 홀로그램
김성중, 『새로운 남편』, 창작과비평 2024년 가을호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차례상을 차리는 일은 매번 명절 때마다 찾아오는 불편한 행사다. 차례상을 차리는 사람과 그 상을 받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는 남편 쪽 조상을 기리는 제식으로서 차례상이 차려지지만 그 밥상을 차리는 사람은 어쩐 일인지 혈연 가족조차 아닌 외부인인 경우가 다수다. 남의 집 자녀를 연고도 없는 조상의 차례상 차림에 부역시키는 것인데, 이러한 제식의 수행자와 준비자 사이의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차례상 차리기는 두고두고 회자될 이슈일 수밖에 없다.
이 제식을 그만둘 수는 없을까? 밥상 차리기의 불균형한 부역 문제가 차례상을 요구하는 쪽과 상을 차리는 쪽이 불일치하기에 벌어지고, ‘요구’하는 쪽이 상차림에 부역하지 않으면서 생기는 일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부역을 거부하면 이 제식도 사라질 수 있는 건 아닐까? 또는 요구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차례상도 없어지지는 않을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주변을 돌아보면 시댁의 강권이 없어진 이후 혹은 차례를 지내려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기혼 여성들은 ‘간단히’나마 차례상을 차리곤 한다. 어쩌면 오래도록 ‘돌봄 노동’의 제도적 굴레에서 착취당하던 이에게 제식의 지속이란 그 자신조차 부당하다고 여겼음에도 빠져나올 길 없어 헌신해야만 했던 바로 그 ‘수고로움’을 뒷받침하는 ‘결실’처럼 여겨지는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온전히 그 자신의 ‘하지 않음’에 달린 문제로 상차림이 전환되는 시점에 이르러서도 쉽게 그 ‘헌신의 역사’는 폐기되지 않는다. 이를 ‘돌봄’과 ‘헌신’에 작동하는 성정치의 일례로 본다면, 우리가 어떤 종류의 ‘억압’에서 벗어난 ‘다른 삶’을 꿈꾸는 일은 ‘새 삶’을 꿈꾼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수는 없다. ‘새로움’이 기존의 억압과는 ‘다른 새로운 억압’을 포괄한다면 ‘다름’이란 억압이 아닌 것을 지향하는 까닭이다.
김성중의 소설 『새로운 남편』은 이러한 ‘다름’과 ‘새로움’의 미묘한 결에 주목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홀로그램으로 재현되는 ‘새로운 남편’을 부부 심리 상담 치료의 일환으로 도입하게 된 시점, ‘나’는 부부 상담 케이스 가운데 남편과의 분리 이후 ‘인공지능 남편’을 도입한 여성 내담자들에게 유의미한 결과를 발견한다. ‘새로운 남편’ 홀로그램은 본래 배우자와 동일한 외모를 하되 ‘해서는 안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고 다정하게 대한다. 치료 일환의 5개월간의 프로그램을 마친 이후 고무적인 성과로서 어떤 여성들은 남편 자체에서 해방된다. 분리되었다가 돌아온 남편의 행동거지가 거의 변화하지 않은 데 비해, ‘새로운 남편’과 지냈던 여성들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참고 견뎠는지” 깨달음에 따라 결혼 파기를 선언한다.
그러나 ‘유의미한 결과’란 이러한 케이스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담자 가운데 명선, 경희, 보라는 각각 알코올중독자, 악성 민원인, 사이비종교 신도인 남편을 둔 여성이었다. 이들의 ‘새로운 남편’은 그녀들과 5개월간의 생활 끝에 ‘원래 남편’과 같은 모습이 되거나 더 나쁜 형태로 변해버린다. 이는 “남편의 수발을 들던 강력한 수동성이 인공지능 남편에게도 그대로 유지”됨에 따라 벌어진 일이다. ‘나’는 ‘남편’이 바뀌었음에도 그를 대하는 아내의 태도가 바뀌지 않은 이유로 두려움을 짚는다. 상황의 변화(즉 ‘다름’)가 좋은 방향이든 그렇지 않든 ‘지금’과 달라지는 변화 자체를 여성 내담자가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따른 구속은 비단 몇몇 내담자의 것만은 아니다. ‘나’ 또한 남편과 이혼한 뒤 프로젝트의 신빙성을 빌미로 ‘인공지능 남편’을 집에 들였다. 그녀 또한 남편 ‘없는’ 삶에 새로이 적응하는 것을 두려워한 까닭이다. 그녀는 ‘변화 없는’ 삶, 즉 변화된 상황에 적응할 필요 없는 삶에 만족한다. 그녀는 인공지능 남편을 마네킹과 결합하여 육화시키기까지 하지만, 그가 로봇 청소기에게 언어를 가르치면서 고등한 버전의 로봇처럼 느껴지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거나, 그녀를 무심코 ‘주인’이라 여기는 것을 눈치채고는 그와 불화한다. ‘나’는 ‘인공지능 남편’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전남편과 ‘다름 없는’ 재현물을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불화 끝에 디바이스를 끄고 오랫동안 혼자 생활하던 ‘나’는 이윽고 요양원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죽기 직전 디바이스를 켜 ‘새로운 남편’과 화해한다. 이 장면에 이르러 비로소 ‘나’는 ‘새로운 남편’이 아닌 ‘다른 남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만 같다. 불편한 두려움을 초래하는 기존 남편의 부분을 삭제하고 관성적으로 이어지는 존재로서 ‘새로운 남편’을 필요로 했다면, 불편한 부분을 리셋한 ‘새로움’이란 또 다른 ‘다름’ 즉 변화를 태동하며 종내 그러한 ‘달라진 것’을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임종 직전 ‘달라진 남편’을 통해 본다.
소설은 인공지능 남편을 통해 생물학적 남성을 대리할 ‘완전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떤 ‘새로움’의 형식을 빌렸든, 돌봄과 희생, 의존과 반복이라는 굴레에 머물러 있다면 그 새로움조차 손쉽게 익숙한 것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달라지는 상황’을 상상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진실, 그것을 ‘홀로그램’과 같은 소설을 통해 비춰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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