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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앎과 삶 본문
앎과 삶
-클레어 키건, 홍한별 역, 『이처럼 사소한 것들』, 다산북스, 2023.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1996년까지 아일랜드에서 있었던 여성 및 아동 착취와 관련한 사건을 다룬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소설에 나오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같은 이름과 명분의 여러 시설 가운데 하나”로,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설립했으나,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을 한 여성, 고아, 학대 피해자,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이 있는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서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130~131면)”을 모두 시설에 수용해 착취했다. 모두의 묵인 속에 세탁소는 거의 두 세기 동안 운영되며 수많은 아동과 여성을 살해했다.
소설에서 이 사건은 펄롱이라는 인물의 삶을 거쳐 전개된다. 펄롱은 미혼모인 어머니 슬하에서 어머니의 이름 ‘빌리’를 물려받아 성장했다. 어머니는 미시스 윌슨의 저택에서 가사 일꾼이었고, 미시스는 임신으로 인해 곤경에 빠진 필롱의 어머니를 그 저택에서 계속 머물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직장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필롱은 성장하면서 때때로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사실 때문에 또래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으나, 그가 대저택에 기거하고 있다는 사실로 하여금 심하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500 피스 지그소 퍼즐을 받는 대신 낡은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과 보온 물주머니를 받고는 실망해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보온 물주머니는 그에게 밤마다 따스함을 선사했고, 책을 모두 읽은 뒤 이듬해 맞춤법 대회에서 수상하며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다”닌다(37면).
소설은 펄롱이 어른이 되어 아일린와 결혼한 뒤 딸 다섯을 낳아 일가를 이룬 시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여전히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미시스 씨의 은혜 그리고 같은 집 식구이자 어머니의 동료였던 네드의 호의와 어머니의 보살핌에 의해 비교적 무탈하게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다섯 딸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바라보면서 문득 가슴이 서늘해지곤 하는 펄롱은 “한번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으며 “각자에게 나날과 기회가 주어지고 지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는 거(36면)”라고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런 펄롱의 삶의 목표는 마을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을 무사히 세인트마거릿 학교에 보내며 가정에 헌신하는 것이다.
어느 날 펄롱은 석탄을 납품하고 대금을 받으러 갔다가 수녀원의 한 창고에 방치되어 있는 여자 아이를 발견한다. 펄롱에게 수녀원으로부터의 탈출과 죽음을 소망하는 그 아이는 출산 경험이 있었고 지속적 학대에 시달려온 듯이 보인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수녀원장을 만난 펄롱은 이 모든 일이 수녀원과 관련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펄롱은 결코 ‘위대한 소설적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그러한 학대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지금껏 몰랐고, 알게 된 이후에도 쉽게 그 책임을 묻지 못한다. 그는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쉬이 아이의 손을 잡고 나서지 못했고, 나서는 순간에도 ‘해야만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다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외면하지 않는다. 필롱은 진정 후회하는 것은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 아이를 내버려두고 와서는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99면)”이다.
‘실질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일의 범주’에 대해 냉정하게 충고하는 아일린이나, 펄롱이 해를 입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수녀들과 척지지 말기를 충고하는 마을 사람들의 말에는 나름의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타당성이 어디에 바쳐지는 것인지를 외면할 때 인간은 폭력의 방관자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나 다름 없다. 펄롱은 안온한 삶에 대한 욕망을 외면하지 않지만, 동시에 그가 어머니 슬하에서 이만큼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이 다른 이들의 도움 때문이었음을 잊지 않는다. 저택 주인 미시스가 어머니를 외면했다면 어머니 또한 펄롱이 우연히 발견했던 그 아이와 다를 바 없이 죽어갔을 것이고, 미시스 및 저택의 일꾼 네드의 도움과 보살핌이 없었다면 펄롱은 지금과 같이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펄롱은 선택한다. 자신이 고려한 행위의 ‘타당함’이 폭력과 부정의(不正義)에 바쳐지지 않도록,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옹호하는 ‘숭고한 가치’와 반대되는 삶을 산다. 무엇이 나은 것인지를 ‘알고 있음’에도 정작 자신이 뭘 말하고 어떻게 사는지 모르는 사람은 권위적 위선을 내뿜고, 이는 명백히 다른 사람의 삶을 훼손하는 데 가담한다. 소설 속 펄롱은 자신이 행복한 순간에 왜 마음이 서늘해지는지 ‘모른다’. 자신의 삶의 진실에 대해서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정확히 바라본다. 우리의 삶 또한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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