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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생을 이끄는가 본문
무엇이 인생을 이끄는가
-최민우 「단순한 문제」, 『창작과비평』, 2024년 봄호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어딘가 수상쩍은 자기계발서의 제목 같지만, 살면서 뭔가 인생이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 누구나 한 번씩은 꺼내볼 법한 질문이다. 멋쩍게도 제목 바로 아래 첨언된 ‘단순한 문제’라는 제목이 꼭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처럼 읽힌다. 우리의 인생을 이끄는 것은 아주 복잡한 어떤 것이거나 꼬일대로 꼬여버린 우연과 필연의 실타래가 아니라, 아주 단순한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것 말이다. 또는 우연과 필연의 사건들로 삶의 복잡성을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인간이 많은 것을 우연적 요소에 기대고 있으며 필연적인 방식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니, 공허한 결론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삶을 좌지우지하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박경자의 인생이 실망으로 방향을 틀었을까? 정하기는 어려웠다. 몇년 전 최종면접에서 탈락한 뒤 이제 비정년 트랙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할지 모르겠다는 자각이 어렴풋이 들었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온라인 법률상담 서비스에서 조언받은 대로 경찰에 잘 대답하고 왔으니 아무 문제 없을 거라며 남의 일인 양 태평한 소리를 늘어놓는 아들 옆에서 망연자실하여 앉아 있다가 제대로 된 변호사를 수소문하러 뛰쳐나갔을 때부터였을 수도 있다. 남편이 처가 돈까지 끌어다 구입한 건물에 하나둘 공실이 늘고 대출금리까지 천정부지로 뛰었을 때부터라면 어떨까. 하나같이 쟁쟁한 후보였지만 경자는 어쩐지 좀더 깊고 근본적인, 단순하고 명확하며 선택도 변경도 불가능한 하나의 궁극적인 지점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논문 준비 중에 읽었던 누군가의 이론에 따르면 인생이 바뀌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계기 같은 건 없다고, 삶이란 그저 하나의 공백에서 다른 공백으로 건너가는 공허한 시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달랑, 그런 헛된 노력만이 있을 뿐이었다. (267~268)
최민우의 소설 「단순한 문제」 속 주인공 경자는 자신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는데, 짐작되는 너무나 수많은 요소가 있어서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이 전부조차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있다. 그러나 분명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이 떠밀려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중이다. 위의 인용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듯 경자는 근래 여러 가지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불현듯 집합되고 삶을 성찰하도록 만든 것은 흥미롭게도 아주 ‘단순한 문제’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아마 그녀가 학회에 발표를 하러 갔다가 들은 어떤 말 때문일 것이다. 경자는 지역국립대학에서 열린 학회에서 ‘전화영’이라는 작가에 대해 발표한다. 경자는 전화영이 이른바 통속소설을 썼고 활동 경력이 길지는 않더라도, 당대 사회적 주제를 서브컬쳐적인 방식으로 전개했다는 점에 의의를 꼽고자 한다. 이후 식사자리에서 한 교수는 경자에게 “달랑 장편 하나”로 연구하려는 게 우려된다고 첨언한다. 경자는 ‘달랑’이라는 말에 상처받는다. 어떠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시도가 그 의미화 하는 대상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며 그러한 시도 속에서 의미화를 시도하는 이의 노력 또한 가치 있는 것이라 믿는 것, 이것이 어쩌면 경자가 삶을 견인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닌가. 그런데 그것이 ‘달랑’이라는 표현으로 갈음되었다고 생각하면, 경자가 자신의 인생을 틀어버린 수많은 사건을 회고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과연 그 학회에서의 사건이 경자를 이러한 성찰로 이끄도록 만든 ‘단순한 사건’일까?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선행된 사건에서 비롯되었던 것은 아닐까? 경자는 학회 장소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상념에 빠졌다가 간발의 차로 사고를 피하게 된다. 어쩌면 죽을지도 몰랐다는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매달리는” “떨쳐지지 않는 의심과 불안을 지고” 다니다가 큰일을 겪을 뻔한 사실이 경자를 지배한 것이 ‘단순한 문제’였던 건 아닐까? 또는 이것은 어떨까. 학회에서 자신의 주제에 관심을 표한 권도훈과 대화를 나누며 적절히 세간의 인정을 받고 꼬인 데 없이 말끔해보이는 그의 삶의 루트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그런 그가 경자가 자리를 비운 간밤의 뒤풀이에서 연구 주제를 두고 가타부타하는 교수의 비위를 맞춘다고 역성을 들었음을 알게된 것은?
학회로 출발해, 학회에서 행사를 치르고, 숙박을 하고 권도훈과 함께 자신의 승용차로 집에 돌아오게 된 경자의 이 짧은 여행에서, 의외로 이 모든 것에 대한 집약적 성찰을 조망하게 하는 것은 쥐다. 경자는 권도훈에게 호의를 베풀어 자신의 차로 그를 근처까지 데려다주기로 한다. 상경하던 도중 들른 휴게소에서 쥐 한 마리가 커피를 마시던 경자의 몸을 오르내리면서 소란이 벌어진다. 쥐는 경자의 몸을 빠져나갔고, 휴게소 직원은 그녀에게 사과했으며, 이후 권도훈을 인근의 역에서 내려주었고, 경자는 집으로 돌아왔다. 즉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경자가 결말부에 생존해 있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러 아까 그 쥐가 경자를 통과해나가지 않고 자신을 물어뜯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는 경자에게 소설은 다음과 같이 삶의 한 진실을 누설한다.
상상은 존재하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며, 그런 것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단순한 문제였다. (276)
삶을 이끄는 수많은 것들은 사실에 기초하여 하나의 서사와 상상으로서 의미를 획득하고 그것은 그렇게 됨으로써 현재의 ‘현상’으로서 가시화되지만 다만 그것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이 구절을 다시 읽어볼 수 있을까. 그 어떠한 사실들도 그것이 ‘중요한 것’으로 채택되기 전까지는 그저 하나의 풍경에 불과하고, 어떤 것을 중요한 것으로 가시화하는 상상조차도 그것을 중요한 것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 이 모든 작용이 자신을 괴롭게 만들 수는 있어도 두려운 실체는 아니라는 ‘단순한 문제’를, 경자와 독자 두 손에 소설은 슬몃 남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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