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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새드 해피 크리스마스 본문

5면/문학의 향기

새드 해피 크리스마스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12. 5. 23:48

5면 문학의향기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창비, 2022.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새드 해피 크리스마스

 

12월에는 크리스마스가 있고 한 해의 마지막을 고하는 달이고 새로운 해를 맞는 달이니까 선물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뒤적이다가 김금희의 연작소설 크리스마스 타일을 찾았다. 총 일곱 편의 소설이 느슨한 형태로 이어진 이 책은 크게는 MTN이라는 방송사의 예능국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인물들의 저마다의 사정이나 그들의 친구, 가족 등의 이야기가 독립적으

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각기 다른 사정을 지닌 인물들은 각 소설에서 저마다의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12월을 맞는 마음이라는 건 무엇일까. 지나간 시간의 마무리, 새로운 삶의 맞이, 소복이 내리는 눈, 반짝이는 거리가 만들어내는 간질거리는 마음.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기대와 희망으로 달뜬 마음을 품는다는 사실로부터 느끼는 안도감, 너그러움. 많은 사람들이 단지 12월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렐 수 있다는 것, 평소에는 바로 옆 사람의 마음조차 제대로 들여다볼 용기가 없지만, 그저 12월이라서 거리에 반짝이는 트리가 있어서 모두 조금은 벅찬 마음일 거라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게 12월의 기적이 아닐까. 인물 중 한 명인 소봄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왜 기다리냐는 지민의 말에 그런 말이 어디 있냐는 듯 눈을 둥그렇게 뜨며 황당해하는 것과 같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좋은 것을 보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허락되는 유일한 시간이듯.

선물 같은 이야기라면 행복한 인물의 따뜻한 이야기를 떠올리기 마련이겠지만, 사실 이 소설은 설렘에 대해 말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 상심에 젖어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유방암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다고 둘러대고 회사로 복귀한 작가 은하는 삶의 극적 변화는 결코 서프라이즈 축하 파티처럼 행복이 깃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식과 상관없이 스멀스멀 조용하게 은밀하게 불가피하게찾아드는 암세포같다고 느낀다(은하의 밤). 한편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선배를 우연히 조우한 한가을이 자신의 상한 마음이 선배로부터 느꼈던 수치심이었음을 받아들이거나(데이, 이브닝, 나이트), “시간이 흐른 뒤에도 왜 그렇게 됐는지를 이해할 수 없는 옛 애인이자 친한 친구인 현우와의 결별을 비롯해 온통 망가졌을 뿐이라고 느껴 중국 유학을 결정한 옥주의 방황(월계동 옥주)은 어떠한가. 아주 외로웠던 어린 시절, 품을 내어주었던 남자친구 주찬성과 관계가 틀어진 양진희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별안간 차갑게 구는가하며 슬퍼했던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나(하바나 눈사람 클럽), 간암으로 죽은 아빠에 대한 기억으로 아픔이 너울처럼 일렁이는 것을 느끼는 소봄의 그리움(첫눈으로), 부모가 이혼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들였던 강아지 설기가 죽고 난 뒤 세미가 느끼는 공허감(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 맛집 알파고가 된 대학 시절 남자친구 현우를 취재하게 된 예능국 피디 지민이 마주하는 오랜 배신감(크리스마스에는)은 또 어떤지. 이처럼 인물들이 정작 크리스마스에 느끼는 감정은 사람에 대한 미움, 회의감은 물론이고 자신이 사랑했던 존재에 대한 상실감, 애잔함, 슬픔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선물 같은 이야기가 12월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앞서 인물들이 삶과 관계와 감정에서 마주치는 고통스러움, 난처함, 불가해함을 소개했지만, 소설이 단지 그 고통을 서술하는 것만으로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인물들이 처한 현실이 마법처럼해결된 것도 아니지만 이들은 자신의 황망함을 들여다보면서 계속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 걸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자신의 사랑이 어떤 지향점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보답거나 응답받지 못한다고 할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은하가 부쩍 소원해진 것 같은 조카 겨레가 답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부재중 전화를 남겼고, 소봄이 아빠의 죽음을 되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생전 계단에서 술에 취해 울던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행위는 일종의 지민이 오랫동안 현우를 미워했던 마음을 품어오다가 마침내 그를 만남으로써 그에 대한 미움과 고통스러움으로부터 더는 도망치지 못해 옴짝달싹 못하게 된 바로 그 상황을 칭한 바와 같이 해원일지도 모르겠다. 해원, 속풀이. 결국 어떤 불안이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상황을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수밖에는 없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단지 12월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행복해한다는 것을 유독 믿을 수 없는 한 해였을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고, 뭔가를 되돌이키는 것은 물론 후회를 하기에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고 심지어 해원의 순간은커녕 앓는 시간이 채 지나가지도 않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혼자만의 힘으로 그날의 밤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이 잃은 사람에게 전해주던 그 기적 같은 입김들이 세상을 덮던 밤의 첫눈 속으로.” 아빠에 대한 상실감에 오래도록 젖어있는 소봄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이다. 지친 당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문장이 되기를 바라며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