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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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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면/문학의 향기

심어진 것과 퍼져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9. 4. 15:02

심어진 것과 퍼져 나가는 것

-최은영, <파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문학동네 2023.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어제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매달 개최되는 백여섯 번째 304 낭독회에 참석했다. 8월의 낭독회는 둘 이상의 마음이 한 자리에라는 제목으로 안내되었고, 두 명의 낭독자가 한 팀을 이뤄 목소리를 한 데 모으는 일명 듀엣 낭독회로 진행되었다. 하나의 텍스트를 둘의 언어로 나누어 말한다는 것은, 잠깐 사이 깜빡 잊어버릴 수도 있을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눠 기억하는 일과 닮은 것 같았다. 아마 8월의 낭독회에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세월호 참사와 304 낭독회는 그들의 마음에 씨앗처럼 심어져 저마다의 기억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

 어떤 고통스러운 일에 대한 기억은 고통스러운 것의 지속이며, 동시에 고통스러운 것에 대처하는 어떤 마음의 개입을 떠올리게 한다. 심어지고 자라나고 퍼져나가는 것. 때로 그것이 삶의 고통으로 경험되는 것이라면, 불가피하게 심어진 고통의 씨앗은 어떤 것을 자라게끔 하는가. 이 질문을 쥐고 최은영의 <파종>을 읽는다.

 <파종>에는 일찍이 엄마의 죽음을 경험한 남매가 등장한다. 열다섯 살 차이가 나는 민주와 그녀의 오빠 민혁은, 투병 중인 엄마가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갖은 이유로 민주에게 폭언했고 그녀의 매맞음을 대신하듯 민혁을 때렸다. 민주는 너 같은 게 살아서 뭐하느냐는 아버지의 말이 내면의 목소리가 되어서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녀를 따라다녔다고 여기며 그녀의 삶이 곧 아버지의 폭력이 자신의 삶에 뿌리내린 결과라 믿는다. 가령 아버지로부터 파종된 폭력은 민주 자신으로 자라남으로써 이혼이란 결과로 드러났고, 딸 소리를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성숙하게 키우는 방식으로 퍼져나갔으며, 같은 고통과 슬픔의 시간을 경유한 민혁에게 미안한 마음이 듦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나버린 일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 믿고 고통을 공유하는 민혁을 미워하는 방식으로 지속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고통의 대물림을 달리 대하는 인물은 민혁과 소리다. 이혼한 민주가 소리를 데리고 민혁의 집에 머물기로 결정하면서 이들은 함께 지낸 적이 있다. 이때 민혁은 소리를 좀더 어린애답게 키우고자 했고, 소리는 그런 민혁에게 조용히 자신을 의탁했다. 그것이 얼마간 균형을 잡고 자리를 잡아가던 중에 민혁이 병으로 급사하게 되면서 잠깐의 단란한 관계는 끝나고 만다. 그러니 그녀의 주장처럼 절망의 파종은 결국 절망을 낳을 뿐인 걸까?

 이 소설이 3인칭을 사용하여 민주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그녀가 민혁을 회상하면서 때때로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비치는 구절에 그녀의 진심이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녀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 민혁이 자신과는 다르게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져도 (...) 여전히 그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리라고 믿는 그 낙관이 부러웠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그녀 역시 엄마가 죽은 이후, 집에서 하교한 자신을 맞는 엄마를 상상한 적이 있다. “그런 상상으로 그녀는 자신이 느껴야 했던 마음을 영원히 유예했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사람들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녀 또한 민혁과 같은 낙관을 마음에 심었던 것이리라. 그것이 종내 불가능한 재회와 끝나지 않는 그리움으로 자라났을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것을 되돌이키게 하는 것이 민혁의 죽음과 부재라 한다면, 이는 깊은 그리움 그러나 그것으로 지속되는 살아감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고통스러운 사건이 파종된 결과 수확된 그녀의 이런 마음이, 분명 감당하기에 너무 어려운 슬픔임에도 불구하고, 이는 벗어날 수 없는 불행이기만 할까. 민혁이 죽은 뒤, 그녀는 민혁을 그리워하는 소리를 통해 서로에게 파종된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이 꼭 같은 고통으로만 수확되지는 않음을 본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이야기되듯, 소리는 민혁과의 이야기를 써서 학교에 발표한 적이 있다. 민주는 자신이 애써 잊고 묻어두고 싶었던 기억이 소리에게는 그리움과 동시에 자신에게 지지가 되는 기억으로 남아 있음을 목격하고, 파종된 것이 다르게 성장해나가는 것을 본다. 민혁의 집에서 지내던 시절, 민혁이 바닥에 둔 호미를 잘못 밟아 소리가 정강이를 꿰맸던 사건도 그렇다. 그때 남은 흉이, 민주에게는 어떤 공유된 시간 속의 상처는 결국 영영 되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심어지고 또 자란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되돌이키는 사건이라 여겨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누구에게도 마음 붙이기 어려웠던 그 고된 시간을 함께 통과하는 동안, 소리는 그 상처로나마 민혁과 있어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상처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어떤 고통이 마음에 파종되었을 때, 그것을 잊지 않고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파종된 것의 수확물이라면, 그 결과의 일부는 고통일 것이고 다른 일부는 그것을 함께 견딘 이의 곁일 것이다. 지난 일은 아무리 돌이켜봐야 소용없음이 변치 않는 불행한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 심은 것에 꼭 그러한 무기력만 남는 것은 아님을,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이기에 알아볼 수 있는 슬픔이 있고 그만큼 마음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퍼져나가는 것도 있음을, 그런 식으로 고통은 고통뿐만 아니라 이해 또한 퍼뜨려나갈 수 있음을, 이 고통과 슬픔의 서사는 우리에게 파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