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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스승의 굴레 어느 시간강사 강사의 ‘사’는 선비 사(士) 자가 아니라 스승 사(師) 자이다. 강사란 강의(講)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니, 일반적으로 직업을 가리킬 때 쓰는 선비 사 자를 써도 단어의 지시적 기능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강사의 ‘사’는 스승 사 자이다. 강의도 어쨌든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인데 굳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필 문학을 전공하여 언어의 힘을 매일 통감하는 입장에서, 이제 막 강사의 길에 들어선 나에게 저 ‘스승’이라는 두 번째 글자는 너무 무겁다.어려서부터 아는 체하는 것을 좋아했고, 마땅히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리라 생각했었다. 가르치는 것이 직업이라면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아는 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
덕업일치 혹은 덕익덕업익업 어느 시간 강사 기성세대와 달리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의 의미가 퇴색된 요즈음이지만, 그럼에도 ‘덕업일치’라는 신조어만 보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것은 여전히 누구나 바라는 일인 듯하다. 그리고 나는 강의를 맡기 전부터 덕업일치야말로 직업으로서의 연구자가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좋아하는 분야를 연구하여 논문의 형태로 남기고, 다시 그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열정페이’를 감수할 만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강사들이 박봉에 시달리고 공부 시간의 부족을 호소하면서도 강의를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몇 푼 안 되는 강의료 때문이 아니라 덕업일치라는 업계 최고의 장점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어렴풋이 믿고 있..
프로페셔널이자 프롤레타리아로서 어느 시간강사 처음 강의료가 입금되었을 때 들었던 솔직한 생각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정기 수입이 많지 않은 인문학 연구자에게 있어 강의료는 살림에 쏠쏠한 보탬이 될 만한 돈이었다. 그러다가 시급이 얼마인지 들은 지도교수께서 10년 전 금액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하셨을 때에야 비로소 그게 많지 않은 돈이란 것을 알았다. 대체 나는 얼마를 생각했던 것일까? 말로만 듣던 강사의 급여가 드디어 나의 급여가 되었을 때, 어떻게 그것이 생각보다 많다고 느낄 수 있었을까? 강의에 임하는 내 생각의 그릇은 그토록 작았던 것일까? 야구는 잘 모르지만, “돈을 받는다는 것은 프로라는 것”이라는 김성근 전프로야구감독의 유명한 말은 어느 분야에서나 통용될 수 ..
많이 배웠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아마도 내가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이래 가장 많이 사용한 인사말일 것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배우는 것이 직업이었으니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인사말이라 하겠다. 그리고 가르치는 것 또한 직업이 된 지금은 오히려 일방적으로 배울 때보다도 더 자주 쓰게 되는 말이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꺼내기에는 전혀 새롭지 않은 말이지만, 그럼에도 가르치는 일에 있어 만고불변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는 ‘교장어학(敎長於學)’, 즉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보다 더 많이 성장한다는 법칙을, 나는 강의를 나갈 때마다 새삼스레 확인하곤 한다.이번 학기에 내가 맡은 강의는 서사이론을 통해 소설과 영화를 ‘읽는’ 수업이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
오래된 미래 어느 시간강사 학자의 ‘스테레오타입’이란 어떤 모습일까? 대개의 직업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전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불길에 맞서 호스를 꼭 쥐고 있는 소방관이라든지, 환자의 배에 청진기를 대고 있는 의사라든지, 책상을 탁 치며 일어나 재판장을 부르는 변호사라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스테레오타입에 기대어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인 형태로 상상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상상해 온 학자의 스테레오타입은 연구실에 처박혀 위대한 역사적 발견을 하고 감격의 미소를 짓는 모습보다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자신이 평생을 바쳐 얻어 낸 지혜와 지식을 아낌없이 가르치는 모습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강단에 ..
소통의 이면과 진정성 어느 시간강사 오랫동안 학업을 같이 해온 동료와 대학 강단에 서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가 말해준 것 중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은 수업 시간 학생들의 태도와 집중력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이버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나에게 학생들의 실질적 수업 태도는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요소이다. 그동안 전혀 고민의 대상조차 될 수 없던 사항이라서 그랬는지 왠지 모르게 더 관심이 갔던 듯하다. 그는 나처럼 처음으로 강단에 선다는 설렘과 걱정을 동시에 안고 있는 초임 강사이다. 수도권을 멀리 벗어나야만 하는 통근을 감수하면서까지 야심차게 시작된 첫 강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 모든 일이 생각만큼 이상적일 수는 없지 않은가. 열심히 준비한 강의도 누군가는..
강의의 시차와 본질 어느 시간강사 생애 첫 대학 강의를 사이버 대학에서 맡게 되었다. 예전부터 상상해오던 강단에 선 내 모습과는 꽤나 괴리감이 드는 현실이다. 처음 마주하는 학생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긴장이 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나의 수업은 커다란 카메라를 바라보며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순간적으로 버벅거리지 않기 위해, 5초 이상 침묵이 이어지지 않기 위해, 말의 빠르기를 적당히 유지하기 위해 등등 소위 크고 작은 방송 사고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생각보다 사전 준비가 많이 필요했다. 모든 주차의 강의용 PPT를 학교에서 제공해준 형식에 맞춰 제작을 해야 했으며 예·복습 코너를 필수로 삽입해야 하는 등 무조건 준수해야만 하는 사항도 많은 편이었다...
내가 만난 학생들 강사로서 겪는 구체적 경험은 다양하고 경험의 성격에 따라 만나는 사람도 달라진다. 공개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쓰는 일이나 채용 결정 이후 계약서를 쓰는 일, 학사일정에 따라 성적을 처리하는 일 등을 할 때는 조교와 마주하게 되고, 강의 앞뒤로 뜨는 시간에 휴게실에 앉아 있다 보면, 동료 강사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역시 강사가 가장 자주 많이 만나게 되는 사람은 학생들이다. 이 글에서는 내가 만난 학생들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강사를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와 관련해 흉흉한 소문을 꽤나 많이 들었다. 그중에는 젊은 여성 강사를 으레 무시하는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고, 학생들이 강사와 교수를 구분해 강사에게 ‘강사님’이라고 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잔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