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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덕업일치 혹은 덕익덕업익업 본문
덕업일치 혹은 덕익덕업익업
어느 시간 강사
기성세대와 달리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의 의미가 퇴색된 요즈음이지만, 그럼에도 ‘덕업일치’라는 신조어만 보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것은 여전히 누구나 바라는 일인 듯하다. 그리고 나는 강의를 맡기 전부터 덕업일치야말로 직업으로서의 연구자가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좋아하는 분야를 연구하여 논문의 형태로 남기고, 다시 그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열정페이’를 감수할 만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강사들이 박봉에 시달리고 공부 시간의 부족을 호소하면서도 강의를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몇 푼 안 되는 강의료 때문이 아니라 덕업일치라는 업계 최고의 장점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어렴풋이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강의에서 『삼국지연의』를 다뤘던 것은 ‘덕업일치’의 환희를 체험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박사 공부씩이나 해놓고 아직도 ‘삼국지’ 얘기만 나오면 끝을 모르고 유치해지는 나에게, 유치원 시절부터 쌓아 온 생각들을 대학 강단에서 펼칠 수 있다는 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기회였다. 실제로 현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강의를 진행했던 것 같다. 나름대로 공들여 만들었던 자료는 거의 보지도 않았다. 본래 말하는 것을 아주 어려워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날은 말들이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아우성치는 것을 달래느라 더 힘들었다. 천행이었던 것은 기세에 눌린 것인지, 진심이 통한 것인지 학생들 또한 평소보다 훨씬 더 귀담아들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좋은 질문들도 이어졌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한 학생이 따로 찾아와서 “개인적인 질문이라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혹시 ‘삼국지’에서 누구를 제일 좋아하셨어요?”라고 물었을 때였다. ‘덕계못(덕후는 계를 못 탄다)’이라고 했던가. 적어도 내게는 해당 없는 말이다. 감히 말하건대 그 순간 나는 제일 좋아하는 아이돌을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팬보다도 더 행복했다고 확언할 수 있다. 그래서 너무나 섣부르게도, 나는 그때 이 강단이야말로 내가 평생 서 있을 곳이라는 확신을 느꼈다. 좋아하는 노래 가사처럼, 이렇게 한 번 크게 웃을 수 있다면 이 지난한 학문의 길에서 몇 번을 울어도 좋을 것 같았다(“たった一度笑えるなら何度でも泣いたっていいや”, Bump of chicken, <sailing day> 中).
스스로가 얼마나 섣불렀는지를 깨달은 것은 강의경력이 오래된 선배를 만나고 나서였다. 들떠서 환희의 경험을 자랑하는 나에게, 선배는 솔직한 부러움을 표하며 자기 고충을 이야기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압도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계약을 계속 유지하려면 원치 않는 강의를 맡아야 할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모든 대학에서 개설하는 <글쓰기> 강의나, 고려대의 <자유·정의·진리> 같은 필수교양 수업이 대표적이었다. 정합적이고 논리적인 글을 쓰는 법과 자신의 사고를 언어화하여 발화하는 법을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사람으로서, 학생들의 작문과 화법 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절대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꿈꿔왔던 일도 당연히 아니다. 수업 준비는 대부분 흥미로운 자료가 아니라 학생들이 억지로 쓴 글을 읽는 것이며, 따라서 교육자로서의 경험은 쌓을 수 있겠지만 연구자로서의 성장은 도모하기 힘들다. 강제로 들어야 하는 수업인 만큼 학생들도 열정적이고 빡빡한 교수자가 아니라 널널하고 성적 잘 주는 교수자를 원한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의욕이 꺾이는 구조이니 결국 그것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를 지급받는 ‘업’으로만 남게 된다.
선배는 요즈음 게임에 골몰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차피 덕업일치가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다른 ‘덕질’을 찾아 업의 스트레스라도 해소하고자 한 결과였으리라. 사실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는 또래 친구들은 이미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다. 취미는 취미대로, 일은 일대로 평행선을 달리는 ‘덕익덕업익업’의 극단 속에서 어떻게든 삶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나는 좋아하는 분야를 연구할 수는 있으니 상황은 늘 그들보다 더 나은 셈이다. 그러나 강단 위에서 덕업일치의 ‘환희’를 맛본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그것을 포기할 수 없다. 겪어보니 더 확실히 알겠다. 그것은 ‘업계 최고의 장점’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연구자와 강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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