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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오래된 미래 본문
오래된 미래
어느 시간강사
학자의 ‘스테레오타입’이란 어떤 모습일까? 대개의 직업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전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불길에 맞서 호스를 꼭 쥐고 있는 소방관이라든지, 환자의 배에 청진기를 대고 있는 의사라든지, 책상을 탁 치며 일어나 재판장을 부르는 변호사라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스테레오타입에 기대어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인 형태로 상상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상상해 온 학자의 스테레오타입은 연구실에 처박혀 위대한 역사적 발견을 하고 감격의 미소를 짓는 모습보다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자신이 평생을 바쳐 얻어 낸 지혜와 지식을 아낌없이 가르치는 모습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강단에 선다는 것은 내가 이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기다려 온 미래 중 가장 ‘오래된 미래’였다.
그 미래가 현재가 된 것은 지극히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미래가 기대했던 모습 그대로냐고 누군가 나에게 물어봐 준다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해 주고 싶다. 강의는 첫 단계부터 삐걱거렸다. 이것을 읽혀야만 한다는 사명감과 그에 상응하는 과도한 애정으로 말미암아 교재로 채택된 고전(古典)은,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고전(苦戰)을 면치 못할 시험 범위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쉽게 설명할 책임이 있는 내게는 안타깝게도 그 책임을 이행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고심한 강의계획서에 감격하여 떨리는 마음으로 오리엔테이션에 들어온 학생들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수강신청에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듣게 됐다는 다른 전공의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은 대개 책도 펴놓지 않고 스마트폰을 하거나 엎드려 잤다. 그런 학생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끌어보고자 목소리를 높이고 ‘억지 텐션’을 끌어내 봐도, 남는 것은 3학점은커녕 12학점 정도를 연달아 강의한 듯한 막대한 피로감이었다. 초보 교수자의 어려운 수업인데도 열심히 들어주는 학생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학생들이 더 많은 편이다. 그러나 나의 신경을 지배하는 것은 들어주는 학생들에 대한 고마움이 아니라, 듣지 않는 학생들에 대한 거슬림 쪽이었다. 스테레오타입이라는 말이 가진 부정적 함의에 걸맞게도 예상대로 잘 풀리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정말이지, 나의 첫 강의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완벽한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쓴다는 것은 가능성을 좁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주제를 구체화하고, 연구대상을 주제에 적합한 것으로 선택하여 한정하고, 가능한 관점을 예각화하여 대상을 분석하고, 빈틈없는 논리와 적확한 문장을 통해 분석한 바를 서술하는 것. 그게 연구자로서 지금까지 훈련받은 기초적인 논문작성법이었다. 석사과정 때만 해도 광대한 학문의 바다를 헤엄치며 예상에서 벗어나고 길을 잃을 때마다 설렘과 즐거움을 느꼈지만, 박사과정을 거치며 자료나 해석이 조금이라도 개요와 달라지면 짜증부터 느끼게 됐다. 공부뿐 아니라 인생도 그랬다. 나이가 들면서 지금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주제나 분야에 새롭게 매달리는 일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갔다. 내가 예상하고 계획해 두었던 내 삶을 살아내기에도 급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아직 별달리 이룬 것도 없으면서 관성에만 의지하여 삶의 가능성을 착착 줄여가고 있던 나에게 있어, 예상과는 전혀 딴판인 학생들의 모습은 미래(未來)라는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명색이 미래라는 녀석이 예상한 것과 똑같다면 삶이 무슨 재미일 것인가. 내가 기대해 왔던 모습은 오래되었을지언정 미래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편이 내가 자각하지 못했던, 완벽한 의미에서의 ‘오래된 미래’였다.
앞으로도 평생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며 살게 될 것이다. 아무리 치열하게 교수법을 고민해도, 아무리 많은 강의 경력이 쌓여도, 그들은 언제나 내가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온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도래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능성을 좁히는 방법을 훈련받아 온 나는, 이번에는 매 순간 새로워질 그들의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 전전긍긍해야만 할 것이다. 이 부당함에 어떻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당장 다음 학기에 지쳐 나가떨어질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이 무한한 미래를 일단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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