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강의의 시차와 본질 본문

2면/강사 칼럼

강의의 시차와 본질

Jen25 2024. 3. 9. 14:43

강의의 시차와 본질

 

어느 시간강사

 

생애 첫 대학 강의를 사이버 대학에서 맡게 되었다. 예전부터 상상해오던 강단에 선 내 모습과는 꽤나 괴리감이 드는 현실이다. 처음 마주하는 학생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긴장이 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나의 수업은 커다란 카메라를 바라보며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순간적으로 버벅거리지 않기 위해, 5초 이상 침묵이 이어지지 않기 위해, 말의 빠르기를 적당히 유지하기 위해 등등 소위 크고 작은 방송 사고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생각보다 사전 준비가 많이 필요했다. 모든 주차의 강의용 PPT를 학교에서 제공해준 형식에 맞춰 제작을 해야 했으며 예·복습 코너를 필수로 삽입해야 하는 등 무조건 준수해야만 하는 사항도 많은 편이었다. 그래도 그 일련의 과정 덕택에 나의 언어가 반드시 함양해야 할 무게감과 책임감을 절감하게 된 것이 가장 귀중하게 얻게 된 수확이라 할 수 있다.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아무런 리액션이나 피드백을 강제로조차 얻어낼 수도 없을 때, 나의 마음가짐과 자기 확신만이 교수자와 학생 사이를 온전하게 이어줄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경험이 나중에 일반 대면 강의를 진행하게 될 순간에도 중요한 성찰의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라 믿어 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딱 절반가량의 강의를 촬영하였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직접 수강한 주차는 아직 없다. 개강 전 강의 사전 제작이 이루어지기 때문인데, 이 방식은 살짝 독특한 시차를 형성하곤 한다. 계속 새로운 주차를 찍는 입장에서 아직 내 강의를 들어본 적 없는 수강생을 만나고 있는데, 과연 나의 진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계속 궁금한 상태에 빠져 버리곤 한다. 물론 그 간극이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저 나의 방식을 꾸준히 자신감 있게 고수하는 것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학생들은 3월에 개강한 이후부터 매주 1주차씩 오픈된 강의를 수강한다. 그리고 다른 대학과 동일하게 6월 중순 경 마지막 주차 수업을 받고 기말고사 시험에 응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대학에서는 교수자에게 복장에 관해 세심하게 주의시키고 있다. 다른 계절에 촬영된 강의를 들을 때 느끼는 위화감 자체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 계절감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일반적 착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촬영 시기가 노출될 수 있는 시사적인 언급까지 몽땅 제한해 버린다. 예컨대 지난주에 개봉한 <파묘>라는 영화가 참 재밌더군요라고 말해버린다면 추후에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겐 지난주가 아니게 되는 것처럼 모종의 간극이 형성되어 버리는 것이다. 여러모로 학생들이 혹여나 느낄 수도 있는 불편을 차단하기 위해서 무언가 나라는 사람과 나의 강의 자체가 시간적으로 구애받지 않는 형이상학적 보편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돌고 돌아 나의 학생들에 대해 더욱 호기심이 생긴다. 심지어 내 강의는 디지털 대학의 특성상 일반 대학과는 달리 다양한 계층과 나이대의 사람들이 수업을 수강하는 편이다. 얼마 전에 대학 측으로부터 전달 받은 정보로는 총 80여명의 수강생 중 나이 분포가 20-70대까지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었고, 거주지도 전국 팔도가 다 존재할 만큼 다양하였다. 20대가 10여명, 30대도 10여명, 70대는 5명 정도, 대부분이 4-50대에 분포된 각양각색의 수강생들을 대해야만 하는 초짜강사인 나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내 강의를 받아들일지도 더더욱 궁금한 지점이 많다. 그럼에도 그들이 내 수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는 건 거의 기말고사 답안지를 받을 때쯤일 텐데 그땐 모든 강의 촬영이 종료된 지도 몇 달 뒤일 것이라 더욱 중층적이고 싱숭생숭한 느낌을 줄 것 같기만 하다. 아마 최종 채점을 다 마치고도 내 수강생들의 얼굴을 못 보고 지나갈 확률이 더 높을 듯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내 첫 대학 수강생인건 본질적으로 변함이 없을 것이다. 무언가 조금 더 내적으로 특별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에겐 아직 절반 정도의 강의가 남아 있고 당장 얼마 후에 또 촬영장으로 가야만 한다. 물론 학생들이 오리엔테이션 수업을 들을 시간은 조금 더 남았지만 말이다. 다시 또 준비를 해야겠다. 가장 가까운 주차 수업이 여태까지 촬영했던 강의 내용보다 스스로 가장 자신 없는 분야이기도 해서 당장 더 공부해야겠다. 강의를 한번 촬영하면 일반적으로 3년 정도까진 재사용을 한다고 하던데, 3년 후에 내 수업을 듣고 있을 어떤 학생을 위해서도 또 한 번 책상에 앉아야 한다. 그 강의의 다양한 시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어진 기회는 항상 지금밖에 없다.

 

'2면 > 강사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된 미래  (1) 2024.05.03
소통의 이면과 진정성  (1) 2024.04.04
내가 만난 학생들  (2) 2023.12.05
“줄까말까식 연구·강의 환경 뿌리채 뒤엎자!!”  (0) 2023.11.07
함께 쉬는 것의 어려움  (2) 2023.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