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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내가 만난 학생들 본문
내가 만난 학생들
강사로서 겪는 구체적 경험은 다양하고 경험의 성격에 따라 만나는 사람도 달라진다. 공개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쓰는 일이나 채용 결정 이후 계약서를 쓰는 일, 학사일정에 따라 성적을 처리하는 일 등을 할 때는 조교와 마주하게 되고, 강의 앞뒤로 뜨는 시간에 휴게실에 앉아 있다 보면, 동료 강사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역시 강사가 가장 자주 많이 만나게 되는 사람은 학생들이다. 이 글에서는 내가 만난 학생들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강사를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와 관련해 흉흉한 소문을 꽤나 많이 들었다. 그중에는 젊은 여성 강사를 으레 무시하는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고, 학생들이 강사와 교수를 구분해 강사에게 ‘강사님’이라고 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잔인한(?) 학생들은 아직까지는 만나본 적이 없지만,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심하게 왔다갔다하는 등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성의 없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그래도 꽤 있었다. 불성실한 학생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학생들의 불성실을 내 탓으로 돌리게 된다. 부족한 수업 준비, 재미없는 강의 내용 등 학생들이 강의를 대충 들을 수밖에 없는, 나로 인한 요인은 제법 많다. 그래도 선배 강사들의 조언과 모든 수업에 불성실했던 내 대학 시절을 떠올리며, 학생들의 불성실에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아주 당연하게도 불성실한 학생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발표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이번 학기에는 얌전하게 수업을 듣던 학생이 매우 인상적인 발표를 했다. 문예창작학과 수업에 들어온 공학과 학생이었는데 문화 콘텐츠 제작 기획안을 써서 발표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전공 지식을 발휘해 실제 게임 그래픽을 구현해 보여줬다. 방학 때 한 학생에게 장문의 메일을 받은 적도 있다. 수업시간에 예로 든 영국 SF 드라마 <닥터 후>를 방학 때 다 몰아서 봤다며 몹시 격앙된 어투로 쓴, 과제글보다 더 길게 쓴 감상문을 메일로 공유해주었다. 여흥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뒤이어 메일 한 통을 더 보냈다. 해당 메일에는 유튜브 영상 링크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는데 한화 응원가로도 유명한 ‘나는 행복합니다’를 부르는 윤항기 무대 영상이었다. <닥터 후> 팬으로서도 강사로서도 몹시 유쾌한 경험이었다.
기억에 남는 학생 중에는 어르신 학생도 있다. 내가 강의를 나가는 학교에는 나이가 많은 지역 주민분들이 입학할 수 있도록 설계된 별도의 입학 전형이 있다. 처음 강의를 나갔을 때는 그런 전형이 있는 줄 몰랐던 터라 어머니뻘 되는 분들이 강의실에 앉아 있는 광경이 당황스러웠다. 지금은 처음의 당황스러움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예상치 못한 문의를 받게 될 때가 있다. 어르신 학생들은 눈이 잘 안 보여서 과제로 내준 텍스트를 읽기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하시기도 하고,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다며 과제를 손으로 써서 제출하시기도 한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하는 조별 발표를 어려워하셔서 발표 수업을 진행하거나 성적을 낼 때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어르신 학생들 덕분에 나도 다시 한번 가르침과 배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학생상과 학생에 대한 태도도 점검해보게 되었다.
“학생은 선생을 선택할 수 있지만, 선생은 학생을 선택할 수 없다.” 한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다. 이상하게도 이 말이 놓였던 맥락과 교훈은 기억에서 사라진 채 말만 남아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곱씹게 되는 말이다. 그동안은 매일 마주하게 되는 학생들의 성실함과 불성실함에 일희일비하지 않기 위해,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이 말을 떠올렸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이 말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누군가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에 관한 문장처럼 느껴진다. 강의비만으로는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 그리고 학회 발표와 논문 등을 위한 공부를 하다 보면 강의 준비에 소홀해질 때가 생긴다. 그런 때에는 강의 시간을 채우는 데에만 몰두해 내가 학생들과 마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선택도 예상도 할 수도 없었던 학생들을 만나게 될 때면, 학생들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영향 관계를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이번 학기와 다음 학기에는 앞서의 문장에 ‘나는 내가 하지 않은 선택에 열려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덧붙여 되새김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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