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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줄까말까식 연구·강의 환경 뿌리채 뒤엎자!!” 본문

2면/강사 칼럼

“줄까말까식 연구·강의 환경 뿌리채 뒤엎자!!”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11. 7. 20:31

“줄까말까식 연구·강의 환경 뿌리채 뒤엎자!!”

어느 시간강사

 

이번 칼럼 제목은 듀선생님 웹툰 125화 제목에서 가져왔다. 나에게 현재 인문학계 최고의 슈퍼스타는 듀선생님이다. 듀선생님은 최근 오랜 박사 수료 생활을 마치고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문학 연구자이다. 2021310일부터 현재까지 DBpia 인스타그램에 매주 한 편씩 연구자로서의 일상을 그린 듀선생님의 웹툰, <듀선생의 인생 제반 연구소>가 업로드되고 있다. 제목을 빌려온 125화는 지난 816일 업로드된 웹툰으로 비정규직 강사의 강의 환경과 관련된 여러 문제 중 폐강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었다.

그림체나 대사는 대체로 유머러스하지만, 내용은 씁쓸하다. 개강 전, 강의를 3학점밖에 받지 못해 지옥에 빠진 듀선생6학점을 추가로 받게 되어 순식간에 천국행 급행열차에 탑승하지만, 수강신청 기간이 지나고 2개 과목이 수강생이 적어 폐강 위기에 놓인다. 그리고 개강 전 매번 이렇게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무한히 반복하게 되는 비정규직 강사들이 법정을 연다. 이 법정에서는 비정규직 강사가 아닌 대학이 폐강의 책임을 지도록 한다. 그 결과 수강생 규모에 따른 폐강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강사료를 지급하게 된 대학은 모든 강의를 무조건 개설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수강신청 결과에 따른 갑작스러운 폐강은 듀선생님 웹툰에서 이전에도 다뤄진 주제이다. (202232일 자 폐강을 막아라!’, 2022331일 자 폐강 탈출 남바완편 등) 이들 웹툰에서 듀선생님은 폐강이 현재의 관행처럼 비정규직 강사가 아닌 대학의 문제여야 함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학기 시작 전 학교에서는 시간강사들을 찾는다. 그리고 이전 학기 말, 늦어도 (1학기 기준) 2월에는 새 학기 강의와 강의자가 모두 정해지고, 그에 따라 시간강사는 학교와 1년짜리 계약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듀선생님 웹툰에 잘 나타나 있듯 수강신청 결과에 따라 이 계약은 쉽게 무효가 된다. 수강신청 결과는 학기 직전에 나오거나 심지어는 정정에 따라 학기 초에 나오기도 한다. 맡기로 한 과목이 폐강되면 강사는 시기적으로 당연히 다른 강의를 구할 수 없게 된다. 개강을 앞둔 방학에 세워뒀을 시간강사의 6개월짜리 생활 계획은 이렇게 쉽게 어그러진다. 강의 하나가 없어진다는 것은 예상 소득이 큰 폭으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수강신청 결과에 따라 강사의 생활은 또 쉽게 막막해진다.

아마도 누군가는 그렇다면 시간강사들이 폐강을 고려해 미리 넉넉하게(?) 강의를 구하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문학의 경우 전체 강의 자리가 그렇게 있지도 않거니와 다른 사정이 있는 연구자들도 있다. 연구재단의 프로젝트성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전임연구인력, 즉 연구교수의 경우 보통 주당 6시간(=학기당 6학점)으로 강의 시간이 제한된다. 연구교수의 연봉이 높지 않기에 대부분의 연구교수는 6학점을 꽉 채우려고 한다. 이때 강의료로 들어오는 돈은 제법 소득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귀중한 돈이 된다. 연구교수의 경우 폐강을 고려해 강의를 더 얻는다는 선택지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셈이다.

나는 그동안 폐강에 따른 결과를 시간강사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책임지는 이러한 상황을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운이 나쁜 상황으로 여겨왔다. (대체 왜 그랬을까?) 폐강은 강사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또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듀선생님의 만화를 보고 알게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고 그 방법이 더 옳다는 것도 만화를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칼럼은 듀선생님의 만화를 인용하는 것으로 마치고 싶다. 아래의 인용문은 2022831일 자 폐강탈출 남바완!’편에 달린 댓글에서 따온, 816일 자 줄까말까식 연구·강의 환경 뿌리채 뒤엎자!!’편에 실린 비정규직 강사 법정의 판결문이다.

개설된 강의는 대학당국이 책임지고 열어야 한다. 또한 계약된 교원의 노동을 대학 당국이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아래와 같이 주문한다. 수강생 수가 1명이라도 폐강할 수 없다. 40명이 넘으면 무조건 분반한다. 수강생 0명으로 개설이 안 될 시에는 폐강에 대한 휴업 보상으로 본강사료의 60%를 지급해야 한다.”

듀선생님과 함께 폐강을 강사가 아닌 대학이 책임지는 세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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