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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스승의 굴레 본문
스승의 굴레
어느 시간강사
강사의 ‘사’는 선비 사(士) 자가 아니라 스승 사(師) 자이다. 강사란 강의(講)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니, 일반적으로 직업을 가리킬 때 쓰는 선비 사 자를 써도 단어의 지시적 기능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강사의 ‘사’는 스승 사 자이다. 강의도 어쨌든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인데 굳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필 문학을 전공하여 언어의 힘을 매일 통감하는 입장에서, 이제 막 강사의 길에 들어선 나에게 저 ‘스승’이라는 두 번째 글자는 너무 무겁다.
어려서부터 아는 체하는 것을 좋아했고, 마땅히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리라 생각했었다. 가르치는 것이 직업이라면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아는 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꿈이었던 적은 없다.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의 삶을 함께 살아 나가며 그 방향을 제시해 주는 ‘스승’이(어야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겠지만, 학생인 내게 교사들은 대개 어마어마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매년 수십 명의, 무궁무진하지만 그렇기에 불안정한 삶들을 떠맡는 것이 업이라니. 어쩌면 대학원에 들어와 연구자이자 대학 교원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지극히 타협적인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물지 않은 나이로, 충분치 않은 경험으로 남의 삶을 떠맡고 싶지 않았다. 소박하다면 소박하게도, 당장은 그저 강단에서 마음껏 아는 체할 수 있다면 족했다.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맡는 것은 아주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를) 먼 미래, 훌륭한 학자이자 존경할 만한 어른이 되는 언젠가로 미뤄두면 그뿐이었다.
그리고 내 안에서 나름대로 뚜렷했던 이러한 ‘강(講)’과 ‘사(師)’의 구분은, 실제로 ‘강사(講師)’ 일을 맡게 되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내가 스승으로서의 준비가 됐건 안 됐건, 그 업에 부담을 느끼건 느끼지 않건,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스승을 필요로 했고, 나는 그들에게 스승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대학생이라면 미성년 학생들보다 훨씬 더 명확한 삶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괜한 간섭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민망할 정도로 철저한 오산이었다. 그들은 이제 갓 성년이 되었을 뿐 여전히 학생이었고, 마땅히 이 세상에 먼저(先) 온(生) 어른, 그렇기에 믿고 따를 수 있는 ‘스승’을 원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질문을 받다 보면, 수업 내용에 대한 질문이 어느새 진로상담이 되고, 진로상담은 순식간에 인생상담으로 비화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훌륭한 학자는커녕 아직 학자조차 아닌 나에게, 존경은 고사하고 경어를 듣는 것조차 아직 어색한 나에게, 그들은 자신의 삶을 털어놓고 그 방향성을 물었다. 알아서는 안 될 듯한 가정사까지 들어주다가 결국 다음 수업에 늦어 1층에서 5층 강의실까지 한달음에 뛰어올라간 어느날이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상태로 출석을 부르던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스승이 무엇인지.
나는 결코 스승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간절하게 스승이 되고 싶었다. 다만 그 막대한 책임감에 상응하는 형태로, 완벽한 준비를 갖추었을 때 스승이 되고 싶었다. 내가 스승으로서의 역할에 부담을 느낀 것은 그 존재를 너무나 이상적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스승은 그런 것일 수 없었다. 스승은 내가 원하는 완벽한 모습으로 시작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스승은 학생들이 그것을 찾는 순간, 모자란 형태로나마 그 자리에 있어 주어야만 하는 무언가였다. 그들이 나를 불렀을 때, 나는 준비되지 않았을지언정 그들에게 기다리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미 그들의 스승이었다.
아직도 양심은 나를 쿡쿡 찌른다. 네가 누군가의 스승을 자처할 만한 인간이냐고. 그러면 반대편에서 욕심도 나를 충동질 한다. 네가 받은 얄팍한 강의료에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지는 값도 포함되어 있느냐고. 여전히 가벼운 나의 마음에 스승이라는 말은 너무 무겁다. 그러나 그 무거운 ‘스승의 굴레’가 이미 내게 씌워진 것을 어찌 하겠는가. 너무 무거워서 주저앉더라도 일단은 나의 학생들이 부른 곳까지 우직하게 걸어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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