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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올해 처음으로 지방대학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길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 긴데 괜찮겠냐는 걱정도 많이 들었지만 두 가지 이유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사립대의 강사료가 너무 적어 먹고 살 걱정이 시급했고, 둘째는 자대에서만 강의를 하다 보니 학교 밖 상황은 너무 몰랐었다는 점이다. 출강하게 된 지방대는 국립대다 보니 교통비를 제외하고도 강사료가 서울의 사립대보다 많아 첫 번째 걱정을 덜었고 무엇보다도 지방대 출강을 통해 현실을 더 직시하게 된 점이 가장 큰 소득이 아닌가 싶다. 지방대 출강을 하면서 무엇보다 놀란 점은 학과 정원이다. 학과 정원이 20명 남짓이라 전 학년을 합쳐도 100명 문턱에도 못 미친다. 휴학생들을 제외하고 나면 70명대의 학생 수가 남는다. 그렇다 보니 4년제 대학에서..
‘수료 확정 안내드립니다’ 문자를 받은 지 며칠도 되지 않은 날이었다. 수료생이 되면 하루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 풀려났다는 홀가분함보다는 방목되었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던 때였다.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다음 학기에 경기도 모 대학에 전공 강의를 나가라는 전화가 왔다. 전공 강의라니, 그것은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못한 옵션이었다. 눈앞이 하얘지고 식은땀이 났다. 내 번호가 '모 대학'에 넘어가고, 형식적인 면접을 보고,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나는 '강사'가 되어 있었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보니 수료 3일 차인 나에게 연락이 온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모 대학 교수님이 연구년을 가셨고, 자리를 채우기로 한 선배는 다른 대학에 임용이 되었다. 내 분야는 전공자가 너무 적고, 선배들은 다 강의를 하고 있고. 서울..
나에게 대학원신문의 강사칼럼은 현재 내가 처해있는 이 상황에 대한 약간의 합리적인 불만을 표시하고, 원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갈 수 있는 장이었다. 하지만 이번 의뢰에는 선뜻 글을 써 내려갈 수 없었다. “최종심의 결과, 선생님을 2023-1학기 ○○대학교 신규 임용자로 확정하였습니다.” 아... 나에게도 왔구나. ‘설마...’하는 생각에 비나이고 비나였지만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지칠 대로 지쳐 강의에 대한 열정도 논문에 대한 의욕도 사라졌었다. 우체국 박스 한 가득 채워 증빙자료를 제출하고도 떨어지기 일쑤였다. 공개 강의 및 심층면접을 위해 날밤 새워가며 준비했지만 늘 누군가의 들러리 역할이었다. 최종면접 전날 내가 지원한 학과의 교수초빙이 손바닥 뒤집듯 취소되기도 했다. BK 연구단..
인문사회계열의 대학 강사라는 직업은 주변의 많은 사람을 걱정시킨다. 본업을 가진 사람이 겸직으로 대학에서 강의한다면 꽤나 근사한 모습으로 비추어지기도 하지만, 대학 강사가 업이 되면 빛 좋은 개살구 취급을 받기 일쑤다. 예전과 달리 정보공개청구라도 받은 양 이 직업의 신비주의가 모두 벗겨진 지금, 빛 좋은 개살구도 되지 못하고 땅바닥에서 구르며 짓이겨진 개살구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대학 강사의 전형적 모습이 ‘아직’,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직업적 안정을 얻지 못한 데다가 사회적 나이에서도 뒤처진 탓이다. 여느 직종과 다를 바 없이 대학 내 교수자의 고용 형태 역시 점차 세분화되었고, 사회적 특권층의 대표적 직종 가운데 하나인 ‘정교수’로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더 제한되고 있다. ..
열정페이, 배움의 기회인가? 나는 박사급 연구원이다. 꽤 오랜 기간 강의를 해오고 있고 아직도 비전임을 벗어나지 못해 연구원으로 남아있다. 어쩌다 내가 박사까지 공부하게 됐을까를 생각해보니, 초‧중‧고 시절에는 꽤 공부를 잘했고 그래서 남들 다 가고 싶다던 SKY에 장학금 받고 갔고, 학부를 졸업하고 보니 주변에 석사 공부를 시작한 동기나 선배들의 모습에서 내 안의 새로운 학구열이 스멀스멀 올라와 불을 지폈다. 그렇게 석사를 했다. 근데 거기까지는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거기까지만 했어야 했다. 석사를 마치고 바로 박사 진학을 하지 않고 사회로 나가 다른 일을 하면서도 박사에 대한 생각은 계속 나를 흔들었다. 그렇게 박사 유학을 고민하며 여기저기 발을 걸치고 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때 다른 일을..
#1. 나는 만학도이다. 모든 이들의 학업 과정은 다양해 누구는 대학 졸업 이후 당연한 수순처럼 다음 단계로 진학하지만 나와 같이 결혼생활 이후 자기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석·박사과정을 밟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맞벌이 여성들이 그렇듯이 나도 직장과 가정의 업무(?)를 병행하며 겪었던 애환과 회의, 점차 나를 잃어가면서 느끼는 불안으로 30년 후 나의 암울한 미래 모습을 떠올리던 중 40대가 되어 학업을 감행했다. 처음부터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는 없었다. 수동적인 가정생활에 늘 목말랐던 즈음에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했고, 운 좋게 전공과 관련된 취업으로 재출발을 할 수 있었다. 공부를 시작한 것은 내 삶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임상과 학문이 겸비된 전문..
비나이다 비나이다 저명한 발달심리학자 에릭슨이 말하길, 청년기 발달과업은 자아 정체감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청년기에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 사람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들보다 확고한 정체감을 일찍 획득하여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였고, 적어도 진로 정체감에 있어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졸업은 할 수 있을까, 졸업하면 자리는 잡을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오고 이 불안감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면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괜히 시작했나?’ 하는 생각을 수천 번도 더 했을 것이다. 그럴 때 옆에서 잘하고 있다고,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고 토닥여주는 선배가 있다면 다행..
대학 강의실에서 처음 학생들을 만났을 때 나는 서른 중반이었다. 가르치는 내용도, 가르치는 방법도, 가르침이라는 행위도 아직 내 것이 아니었던 때였다. 배워본 적 없는 그 일들을 터득해가는 과정은 짜릿하기도 했지만 매우 고된 노동이었다. 그래서 첫 학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이 나에게는 없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강의 교재를 읽거나, 강의 자료를 만들거나, 머릿속에서 강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앉아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고, 무엇을 생각하고, 이 강의실에서 무엇을 즐거움으로 느끼고 무엇을 곤혹스럽게 느끼는지 알고 싶었다. 그들을 알고 나면 가르침이라는 행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