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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첫 경험의 기록, 어쩌다 보니 반성기 본문
‘수료 확정 안내드립니다’ 문자를 받은 지 며칠도 되지 않은 날이었다. 수료생이 되면 하루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 풀려났다는 홀가분함보다는 방목되었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던 때였다.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다음 학기에 경기도 모 대학에 전공 강의를 나가라는 전화가 왔다. 전공 강의라니, 그것은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못한 옵션이었다. 눈앞이 하얘지고 식은땀이 났다. 내 번호가 '모 대학'에 넘어가고, 형식적인 면접을 보고,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나는 '강사'가 되어 있었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보니 수료 3일 차인 나에게 연락이 온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모 대학 교수님이 연구년을 가셨고, 자리를 채우기로 한 선배는 다른 대학에 임용이 되었다. 내 분야는 전공자가 너무 적고, 선배들은 다 강의를 하고 있고. 서울에서 두 시간 거리 대학의 전공 강의를 딱 한 학기 채울 만한, '믿을 만하다면 아무나 빨리'는 나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 모 대학 모 학과의 다른 교수인, 이전에 딱 한 번 만났던 선배에게 많은 걸 얻어들었다. 선배는 이 학교가 모든 게 평균이라 했다. 학생들 성적도 평균, 학교 수준도 평균, 강사 대우도 평균(그 코만한 강의료가 ‘평균’이란 건 좀 놀라웠다). 세상 사는 경험이 좁디좁은 내가 '평균'의 공간에서 첫 경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건 참 행운이었다. 어딘지도 몰랐던 학교의 학생들이 생각보다 잘하고, 꽤 열정 있다는 것을 직접 겪어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그랬다.
단 한 학기, 고작 열다섯 번의 강의. 두 번의 과제와 두 번의 시험. 수강생 중에 동갑내기도 있고 몇 살이나 많은 늦깎이 학생도 있는, 젊디젊은 초짜 강사의 길고 긴 학기가 시작되었다. 몇 살이라도 나이 들어 보이겠다고 길던 머리를 싹둑 잘랐다. 강의가 끝나면 발이 퉁퉁 부어 절뚝거리면서도 늘 구두를 챙겨 신었다. 그러면서도 교생 선생님 같은 친근한 느낌은 내 보겠다고 강의 자료에 꼬박꼬박 유행하는 짤을 찾아 넣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중요하지 않았다. 수강생들은 앞에 선 강사가 누구든 강의 자료에 뭐가 들었든 아무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가장 어려웠던 건 나였다. 애들도 착하고 환경도 좋은데, 아는 건 없고 욕심은 많은 내가 제일 버거웠다. 나는 태생적으로 남 눈치를 빠르게 읽고, 신경 한구석에 담아두며 맞춰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몇 사람 이상의 기분과 상태를 레이더에 담는 게 피곤해 술자리는 늘 도망가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40명이 오로지 나만 보는 3시간이라니. 졸린 이와, 지루한 이와,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며 남은 시간을 재는 눈짓 하나하나가 모조리 신경 쓰였다. 강의하고 온 날이면 어색한 동창회에 다녀온 날처럼 축 뻗어버리곤 했다.
적당히 쉽고 적당히 어려운데 오류도 없고 묻는 바가 명확하며 채점하기도 쉬운 시험을 낸다는 건 논문 쓰기보다 어려웠다. 핵심이 빠진, 비슷비슷하게 엉성한 답을 보면서는 제대로 못 가르친 교수자 탓임을 알았다. 짤이나 찾아 넣었지, 어려운 내용은 눈치나 보며 넘어가 버린 내 탓이었다. 결국, 모두가 그럭저럭 괜찮은 성취를 내어버렸다. 미워하지 말아다오, 이의제기하지 말아다오, 마지막까지 눈치를 보며 모두에게 +를 붙여주고서야 무거운 마음을 조금 덜었다. 허둥대다 끝나 버린, 한참 부족한 강의였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느낀 어려움은 모두 내 욕심에서 비롯한 것이다. 젊고 산뜻하고 친절한데 학생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데다 잘 가르치고 성적까지 잘 주는 킹갓교수님으로 보이고 싶었던 괴로운 욕심 때문이다. 욕심대로 해내기엔 한참 모자란 내 밑천을 들킬까 봐 겉만 포장하며 늘 전전긍긍했다. 며칠을 긴장하다가 열어 보았던 강의 평가는 고작 다섯 명의 응답뿐이었다. 바라던 킹갓교수님 소리는 당연히 못 들었지만, 강의가 재밌었고 강의자가 열정적이었다는 몇 개의 선량한 평가가 마음에 위안을 줬다.
몇 년을 대학원생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초짜 강사가 되었다가, 매일 근심하는 수료생으로 다시 돌아왔다. 강의 전과 후의 내 처지는 변함이 없지만, 세상살이가 조금 진지해졌다. 모든 것이 평판으로 남고 그 평판이 나를 또 어느 기회로 이끄는 실전의 세계로 진입해버렸다는 서늘한 사실을 알게 됐다. 언제 또 어디에 불릴지 모르니, 공부로 밥 벌어 살고 싶다면 성실하고 진지하게 매달려야 함을 진심으로 느껴 버렸다.
스스로 밑천을 들켜버린 나는 더이상 예전처럼 해맑지 않은 것 같다. 우선 학위부터 갖추려 조급해하고, 다음 기회에는 조금 더 그럴듯한 강사가 되고 싶다는 못 버린 욕심에 고민하며 애쓰게 됐다. 고작 한 번의 경험에 한껏 진지해져 버린 게 오히려 해맑다면 해맑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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