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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그래도 되긴 되나보네’ 본문
나에게 대학원신문의 강사칼럼은 현재 내가 처해있는 이 상황에 대한 약간의 합리적인 불만을 표시하고, 원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갈 수 있는 장이었다. 하지만 이번 의뢰에는 선뜻 글을 써 내려갈 수 없었다.
“최종심의 결과, 선생님을 2023-1학기 ○○대학교 신규 임용자로 확정하였습니다.”
아... 나에게도 왔구나.
‘설마...’하는 생각에 비나이고 비나였지만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지칠 대로 지쳐 강의에 대한 열정도 논문에 대한 의욕도 사라졌었다. 우체국 박스 한 가득 채워 증빙자료를 제출하고도 떨어지기 일쑤였다. 공개 강의 및 심층면접을 위해 날밤 새워가며 준비했지만 늘 누군가의 들러리 역할이었다. 최종면접 전날 내가 지원한 학과의 교수초빙이 손바닥 뒤집듯 취소되기도 했다. BK 연구단에서 짤려 실업급여를 받게 될 위기의 압박감도 경험했다. 그간의 일들을 어떻게 한줄 한줄 다 적을 수 있겠냐만, 어찌 되었건 이제는 일단락되었다.
과연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내 글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물론, 나의 자기소개서, 연구계획서, 공개 강의 및 총장면접 질문들이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 수도 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선배들에게 연락 한 번만 한다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이다. 그래서 나는 많은 고심 끝에 나의 마지막 강사칼럼에 희망을 남겨두기로 했다.
2월 24일, 친한 후배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오랜만에 학교 앞을 지나갔다. 여느 해와 다름없이 수많은 학생들이 학사모를 던지며 해맑은 얼굴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물론 그 사이사이로 오늘만큼은 웃고 있는, 양팔에 석 줄의 띠를 두른 박사님들도 볼 수 있었다. 행복한 날은 분명하지만 사실, 이 시점부터 레이스가 시작되는 것 같다.
우리의 레이스는 마치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는 것인데, 전체 거리를 알 수 없고 남은 거리도 표시되지 않는 터널이라는 게 이 레이스의 함정이다. 터널 속에서 우리는 심장 터지도록 뛰기도 했고, 두 눈 질끈 감고 쉬지 않고 걷기도 했으며, 입구로 되돌아가 보기도 했고,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털썩 주저앉아있기도 했다. 우리 모두 방향은 다르지만 비슷한 강도의 괴로움을 겪었고 지금도 진행 중임에는 틀림없다.
얼마나 어떻게 괴로운지는 저마다 다르지만, ‘존버’는 승리할 수 있다. 물론 털썩 주저앉아서 가만히 있는 게 존버는 아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그냥 하루하루 묵묵히 앞으로 걸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터널의 끝이 교수 임용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장담하건대, 우리는 적어도 터널의 70%는 통과했다. 조금만 더 용기를 쥐어짜 내서 걸어 나가면 출구의 빛이 보일 텐데, 되돌아가려 하거나 주저앉아서 신세 한탄만 하지는 않길 바란다. 악으로 마음이 꽉 차 있거나, 모든 것을 체념하고 초월한 경지에 있어도 상관없다. 그냥 그 상태로 쭈욱, 단 1mm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내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있고, 운이 안 좋다고 생각될 때도 있으며, 하필 이 시기에 다른 일들이 겹쳐서 내 앞길을 막을 때도 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 최선을 다해 미친 듯이 질주한다면 좋겠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나 기회는 주어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충분히 열심히 살았고 많은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학계에 꽂아줄 빽 하나 없고, 기부금 낼 돈 한 푼 없는 나에게도 끝내 기회는 왔다. 스쳐 지나가듯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래도 되긴 되나 보네’라는 생각을 한 번만이라도 하면 좋겠다. 그렇다면 가끔 여기에 글을 쓰며 속 시원해졌던 나의 과거가 더욱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럼 나는 이제 강사 칼럼을 졸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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