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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거인과 난장이의 사회 본문
인문사회계열의 대학 강사라는 직업은 주변의 많은 사람을 걱정시킨다. 본업을 가진 사람이 겸직으로 대학에서 강의한다면 꽤나 근사한 모습으로 비추어지기도 하지만, 대학 강사가 업이 되면 빛 좋은 개살구 취급을 받기 일쑤다. 예전과 달리 정보공개청구라도 받은 양 이 직업의 신비주의가 모두 벗겨진 지금, 빛 좋은 개살구도 되지 못하고 땅바닥에서 구르며 짓이겨진 개살구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대학 강사의 전형적 모습이 ‘아직’,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직업적 안정을 얻지 못한 데다가 사회적 나이에서도 뒤처진 탓이다.
여느 직종과 다를 바 없이 대학 내 교수자의 고용 형태 역시 점차 세분화되었고, 사회적 특권층의 대표적 직종 가운데 하나인 ‘정교수’로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더 제한되고 있다. 고용을 위한 최소 기준인 박사 학위 취득까지 가뜩이나 오랜 시간과 많은 자원이 투입되는 데다가 불안정한 고용 형태까지 겹치면서 개인의 생애 주기는 헝클어지기 쉽다. 그래서 대학 내 교수자는 이러한 불안정한 사회적 조건을 견딜 수 있는 여분의 자원을 손에 쥔 사람만이 도전해볼 수 있는 직종이 되어 가거나, 점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직종이 되어간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이렇게 교수 사회에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직업적 안정이란 사회가 개인의 삶에서 최우선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므로 대학 강사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염려는 타당하고 올바르다. 직업적 안정으로부터 인간은 존엄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자존감을 가지고 주체적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안정적 일자리의 의미를 안정적 소득 활동만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일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을 뜻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우리 자신을 조각해나가며, 우리는 일을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우리는 일을 통해 사회적 장으로 인도된다.
이러한 까닭에 직업적으로 불안정한 대학 강사에 대한 염려는 타당하지만, 동시에 당혹스럽다. 대학 내 교수자라는 직업은 그 어떤 다른 직업보다도 나 자신을 훌륭히 조각해나갈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될 수 있으며, 그 어떤 일자리에 있는 것보다 생동감 넘치게 타인과 교감할 수 있으며, 온전히 나의 장을 형성하는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노동, 작업, 행위를 균형적으로 스며들게 할 수 있는 직업들이 있다면, 대학 강사라는 직업은 가장 유력한 후보일 것이다.
‘직업적 안정을 확보하지 못한 채 나이 든 사람’을 보아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 직업적 안정을 향해 모든 것을 불사하도록 부추기며, 연령과 세대에 따른 행동 규범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것은 노동, 작업, 행위가 조화를 이루는 개인의 삶이 아니라 윤택한 삶을 보장해 주는 안정적인 돈벌이이다. 우리 사회는 화폐로 측정 가능한 생산 활동을 통해서만 개인이 사회에 기여한다고 여긴다. 인간의 창조적 작업과 정치적 행위가 사회에 기여하며, 그러한 작업과 행위는 때때로 화폐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점을 신중하게 살피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의 삶이 가진 결을 가만히 바라봐 줄 정성조차 기울일 여력이 없는 이들의 숨 가쁜 염려가 무례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의 염려가 진심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난감하기도 하다.
이제 모두가 대학 강사의 불안정한 고용 관계에 관해서 ‘안다’. 고작 그러한 불안정한 고용 관계를 맺기 위해서 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의 부조리함에 대해서도 ‘안다’. 그 사실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학위 과정과 연구 활동을 회피하는 삶의 경로를 선택한다. 이들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장이처럼 자신의 삶의 지평을 멀리 보고 삶의 경로를 정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 모든 사실을 알고 학위 과정과 연구 활동을 향해 직진한다.
직진하고 있는 당신과 나 역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있으므로 우리네 삶이 안고 있는 부조리와 불안정이 보이지 않을 리 없다. 다만 당신과 나는 그러한 부조리와 불안정을 직시한다. 그것을 직시하는 것이 인간과 사회에 관해 연구하는 당신과 내가 하는 작업이며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노동, 작업, 행위를 통해 이 사회에 발 딛고 서기를 선택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난장이보다는 거인에 가깝다.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 멀리 보는 난장이는 거인이 될 수 없다. 땅을 딛고 있지 않으므로. 더 멀리 보는 난장이와 땅을 딛고 서서 난장이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거인 모두 이 사회를 이룬다. 이 사회가 거인과 난장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품을 가질 수 있길, 그래서 난장이도 거인에게, 거인도 난장이에게 무례하지 않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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