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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어느 만학도 강사의 독백 본문
#1. 나는 만학도이다. 모든 이들의 학업 과정은 다양해 누구는 대학 졸업 이후 당연한 수순처럼 다음 단계로 진학하지만 나와 같이 결혼생활 이후 자기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석·박사과정을 밟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맞벌이 여성들이 그렇듯이 나도 직장과 가정의 업무(?)를 병행하며 겪었던 애환과 회의, 점차 나를 잃어가면서 느끼는 불안으로 30년 후 나의 암울한 미래 모습을 떠올리던 중 40대가 되어 학업을 감행했다. 처음부터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는 없었다. 수동적인 가정생활에 늘 목말랐던 즈음에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했고, 운 좋게 전공과 관련된 취업으로 재출발을 할 수 있었다. 공부를 시작한 것은 내 삶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임상과 학문이 겸비된 전문가를 꿈꾸며 걸어왔다. 그렇게 시작하고 매듭지어가며 활동한 나의 강사 생활은 65세를 맞이한 22년 1학기로 막을 내렸다. 완주였다. 이제 학교를 떠나 다른 기관의 특강과 기타활동으로 나의 인생 삼모작을 꿈꾸는 새로운 출발 시점에서 나의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2. 늦은 박사 논문 과정에서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거나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는 진담반 농담반의 풍문은 힘든 연구의 통과과정을 말해준다. 그러나 정작 박사 논문을 쓰는 일보다 더 어렵고 높은 문턱은 바로 대학 강사로의 진입이다. 아무리 높은 학문적 소양과 풍부한 경험을 갖춰도 특별나게 뛰어난 출신학교나 전폭적인 지도교수의 지원, 그밖에 소위 운때가 잘 맞아야 들어갈 수 있는 자리이다. 강사법 개정 이후에는 그 문이 더 좁아졌다. 당연히 함께 정보 공유하며 고생했던 1~2명 외에는 취업이 어렵다 보니 표정 관리가 요구될 만큼 그들에게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여서 여간 서로를 잘 알지 않고는 조심스럽고 솔직한 마음을 교류하기 어렵다. 지도교수들 간에도 제자들을 대하는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다는 소식을 귓등으로 들었다. 자신이 지도해 배출된 제자들이 학교현장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을 차치하더라도, 제자들의 욕구를 훤히 아는 터라 채용 안 된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 또한 안타까울 것이다.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적 속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런 현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단지 나만의 감상적 사치일까? 반문해본다.
#3. 강사법 개정 취지가 처우 개선이고 이후 교권도 확보되었다지만 강사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개정 이후 확실한 변화는 재직증명서를 발급받을 때 명칭이 ‘시간강사’에서 ‘강사’로 바뀐 것 외에 또 뭐가 있을까? 아울러 계약 기간이 만료된 상태에서 내가 그 학교에 남긴 흔적이 무엇일까?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어느 작가의 대학 강사 퇴직금 소송이 떠오른다. 1과목 3학점 3시간 강의에 기울이는 연구와 노력들, 분명 열정과 노력을 투입했어도 그 시간들을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강사로서의 위치성 또한 심각하다. 강사는 분명 학교 교직원으로 소속은 있지만 같은 학과 교수 간 주요 정보를 공유하는 홈페이지나 교수 회의에도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초기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방침과 시스템이 하루가 멀다 할 만큼 수시로 바뀌고 중요 전달사항이 공유되어야 했던 주요 시점에도 강사는 한 발짝 늦게 전달받았다. 결국 ‘목마른 자가 샘 판다’고 여기저기 아는 교수님에게 연락하여 정보를 모았다. 강사는 엄연히 학교 직원이면서도 소속감이 없는 주변인이다. 마치 성인 자격에 못 미치는 미성년자가 영화관의 ‘입장 불가’ 표지 앞에 서성이듯 말이다. 치열하게 연구한 분야의 학문을 후학에게 전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의 열정도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지속된다면 대학의 강사들이 설 자리는 과연 어디일까? 대학 강사의 노동권과 대우는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4. 로마의 현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저 『명상록』에서 “한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알고 그 본성을 따르는” 것, 그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나도 뒤늦게 나의 본성을 알아채고 늦게나마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나의 전공이 실용학문이기에 풍성한 임상과 실천에서 나오는 구체적인 사례가 멋지게 통합되면 연구는 펄펄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을 발휘한다. 강사가 알아채는 여러 신호 중 학생들의 몰입도와 많은 질문은 학문에 대한 동기 부여뿐 아니라 취업으로 연결되는 다리 역할도 담당한다. 오랜 숙련과 경험을 겸비한 강사들이 학생들에게 현실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강사의 취약한 위치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 법원에 강사 처우 문제들로 진행 중인 소송 건이 여럿 있다. 그리고 다수가 그 판결 결과에 관심 갖고 기다리고 있다. 비록 나도 이제는 그 제도 밖에 존재하지만 ‘이번에 안 되면 또 다음에….’ 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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