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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우리의 노동이 우리를 배신하지 않기를 본문
대학 강의실에서 처음 학생들을 만났을 때 나는 서른 중반이었다. 가르치는 내용도, 가르치는 방법도, 가르침이라는 행위도 아직 내 것이 아니었던 때였다. 배워본 적 없는 그 일들을 터득해가는 과정은 짜릿하기도 했지만 매우 고된 노동이었다. 그래서 첫 학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이 나에게는 없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강의 교재를 읽거나, 강의 자료를 만들거나, 머릿속에서 강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앉아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고, 무엇을 생각하고, 이 강의실에서 무엇을 즐거움으로 느끼고 무엇을 곤혹스럽게 느끼는지 알고 싶었다. 그들을 알고 나면 가르침이라는 행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홀로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위축감이었다. 나는 권위적이지 않은 교수자가 되려고 무던히 애썼고, 기계처럼 강의 내용을 입력시키는 교수자가 아니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 ‘사람’으로 그 자리에 서고 싶었다. 가르침이라는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로 나를 인식하는 다수 앞에서 홀로 사람으로 존재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두려움은 곧 연기처럼 흩어졌다. 내가 그들에게 적응한 결과도 아니었고, 가르치는 역할에만 충실하기로 교육관을 바꾸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나를 사람으로 대해주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가르치는 내용과 ‘나’라는 사람을 분리시키기 않았다. 내가 가르치고자 애쓰는 것 안에서 나라는 사람을 찾아냈고, 나라는 사람을 통해서 내가 가르치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나는 사변적인 언어로 인문학적 사유에 관해 논했지만, 이미 인문학적 세계관 안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 덕분에 나의 결점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나의 결점을 메우거나 회피하려는 노력 대신 그것을 적확히 인식하고 인정하였고 학생들이 나의 결점을 채워 주리라 믿고 기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결점을 채워주는 학생들에게 깊이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내가 그렇게 관계 맺었던 학생들은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사회인으로 살아가면서 그들이 직업적으로 수행하는 역할과 자신을 분리시킨다. 과거의 나처럼, 나는 그들이 조금은 안쓰러웠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고, 대체로 이해가 되었다. 그들에게 과거란 그 무엇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않는, 반짝이는 별과 같은 총체적 세계였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의미하는 상징물로 나를 고정시켜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다른 이들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를 견디기 위해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그들은 자신이 행하는 노동과 그 결과물이 자신의 연장선 위에 있지 않아서 괴로워하고, 그것을 일치시킬 방법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 덕분에 내가 누릴 수 있었던 행운은 그들 자신의 몫이 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행운을 누리기보다 스스로 개척한다. 사회가 그들의 직업과 노동으로부터 그들을 분리시키지만, 정작 그들은 그 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총체적인 세계를 보존하기 위한 고뇌를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조금 먹먹했고, 조금은 동병상련을 느꼈고, 대체로 응원했다. 때때로 그들은 나에게서 위로와 격려의 말을 기대하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의 세계에 남은 낡은 이정표이거나 고된 여정의 휴식처가 되는 것 같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닌 나의 옛 학생들에게, 나는 과거로부터 건져 올린 추억, 위로, 격려, 응원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그들이 어떠한 길로 나가든 나는 그들에게 일시적인 존재이며 영원한 과거이다. 나는 이제 마흔을 넘겼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학생들에게서 다른 종류의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에게는 내가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점을 알기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동안 나를 가르친 학생들 덕분에 나는 한 뼘 성장했고, 내가 가르치는 것에 대해 더욱 확신하게 되었지만, 내가 가르치는 것이 안락함을 보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들이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되었을 때 견뎌야하는 것들을 요령껏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지도 않는다. 나는 그들의 안락한 미래를 위해 강의하기보다, 나와 그들의 바로 ‘지금, 여기’에 대해 강의하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각자의 현재를 충실하고 묵묵하게 직면하는 연습을 한다. 우리는 가끔 과거로부터 위안을 얻지만, 과거를 현재화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학생들에게 강의하기 위해 끊임없이 점검하고 되뇌며 나 역시 바로 지금 내 삶의 이정표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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