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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직업의 순위 본문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 ‘3대째 운영 중’ 같은 홍보용 문구를 발견하거나, 여러 매스컴을 통해 몇 대째 가업을 이어 한 분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접한다. 방송용이든 진심이든 그들은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는 국내 굴지의 자동차 그룹에서 채용 문제가 있었다. 노조 측에서 정년 퇴직자와 25년 이상 근속자 자녀의 우선채용을 사측에 요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현대판 음서제’의 부활이라고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사를 접한 나의 첫 마음은 “얼마나 만족스러우면 자식에게도 물려줄 생각을 할까”였다.
나는 현재 실용 학문을 가르치는 강사면서 그 학문의 현장에 종사하고 있는 직장인이기도 하다. 연기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가 되었을 때 ‘무대에 선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 업계에서는 현장에서 근무한다는 말을 ‘필드’에 있다고 표현하곤 한다. 이 단어를 다른 분야에서도 사용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 글을 읽는 동종 업계 분이 있다면 지금 내가 어떤 학계와 업계에 있는지 눈치채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이 칼럼에선 굳이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31살 무렵 첫 강단에 섰을 때 이 수업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 어떻게든 잘 마무리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보다 3시간은 엄청나게 길고 학생들의 집중도는 그리 길지 않다. 필드에서의 경험을 수업에 적절히 녹여내어 재미있고 현장감 있는 수업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그 부분도 미숙하기 짝이 없었던 거 같다. 특히 수업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만학도들도 몇 명 있어서 그 학생들을 어떻게 대할지도 살짝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사소한 것도 처음에는 장애물로 작용하기 마련인 거 같다.
강의를 진행하고 현장의 생생함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줄수록 생각의 골은 깊어진다. 학생들이 나의 자식도 아닐뿐더러 아직 미혼인 내가 자식에게 뭔가 권하고 싶은 그 마음은 알 길이 없지만, 먼저 이 길을 걸은 선배로서 미래의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점점 이 필드로 인도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정말, 이 직업이 추천해줄 만한 직업인가?” 하는 의문 역시 많이 든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고용정보원 등과 같이 직업에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에서는 매년 앞다투어 직업 만족도 리서치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조사기관마다 조금씩의 차이를 보이지만 판사, 도선사, 교장 선생님, 대학교수(시간강사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의사, 변리사 등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 직업 만족도는 사회적 평판, 고용안정, 발전 가능성과 근무조건, 전반적 직무 만족, 급여 만족 등 여러 가지 평가 요소로 순위를 매기게 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무심코 읽었던 직업 만족도 조사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에 의문이 간다.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거기서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가면 행복한 삶이 아닌가? 진정 남이 얼마나 자기 직업에 만족하는지 파악하는 평가를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인가? 그럼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직업들은 위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다 만족스럽다는 것인가? 우리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있는 현실에서 그 유토피아 같은 세계가 실제로 이뤄진다는 사실이 부럽기 짝이 없다. 이런 연구들 때문에 나의 직업에 대한 고민이 늘어가는 건 사실이다. 심지어 나는 이 직업으로 학생들을 인도하고 있지 않은가?
내 학생들을 인도하고 나도 걷고 있는 이 필드에서 나는 여러 조건 중 한 가지를 중심으로 지금의 회사를 선택했다. 인생은 길고 경제활동은 멈출 수 없다. 우리 업계에서 드물게 ‘정년보장’을 보장해주는 곳이기에 그것을 1순위로 보고 선택했다. 나도 이런 회사가 있는지 많은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회사의 전반적인 직무와 사회적 평판은 나쁘지 않지만, 급여 만족은 진짜 모르겠다. 결국 가늘고 길게 가는 중이다. 내가 강사로서 그리고 먼저 필드에 나온 선배로서 강단에 설 때 꼭 하는 말은 많은 직업이 그러하듯 한 직업군에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여러 방면으로 연계되어있는 다양한 직업이 있다고 강조한다. 가끔 “이 분야에 이런 일도 있었어?”하는 직무도 있다. 현대 사회는 역시 정보 싸움이다. 결국 두 눈 부릅뜨고 잘 찾아야 한다. 심지어 모두가 알고 있는 직업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지 않은가? 생각보다 본인과 관련한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일깨워 주면서 내 학생들을 이 길로 인도하는 책임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고 한다. 우리 직업이 언젠가는 상위에 랭크되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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