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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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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강사 칼럼

다시 태어나도 박사를 할까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11. 13. 21:52

언젠가 지도교수님이 왜 본교 출신 학생들의 대학원 진학이 적을까요?”라고 물었다. “글쎄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대답은 따로 있었다. “본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친 제 현실을 보면 애들도 생각이 있는데 대학원을 오고 싶을까요?”라고. 내 현실은 다른 인문사회계열 박사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힘들다. 공부가 힘든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문제인가를 처참히 깨닫게 했다. 나이 서른 넘어 공부하는 주제에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 석·박사 과정 중에는 계속 과외를 했다. 과외비로 용돈도 하고 학비도 보태며 수료했고 수료 후에는 매 학기 시간강사로 한 과목씩 맡아 강사료로 돈을 벌었다. 간혹 다른 대학 강의도 동시에 하면 그래도 월 100만 원 남짓 벌었지만, 한 학기 동안 3학점짜리 한 과목만 맡았을 때는 200만원 정도로 방학을 포함한 6개월을 생활해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박사를 졸업했는데 닥친 현실은 더 처참했다.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시간강사법이 그 취지와 다르게 시행되면서 강사로 설 수 있는 자리마저 잃었다. 그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학과가 큰 연구사업에 선정되면서 박사급 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박사급 연구원이라는 직업이 생긴 건 다행이지만, ‘박사라는 직위를 가진 내가 받는 월급이 최저시급에 겨우 맞춘 정도라는 점이 불행했다. 박사 과정 중에는 현실이 힘들어도 졸업하면 나아질 거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는데 그 기대가 얼마나 철없던 생각이었는가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졸업한 학과에서 자신들이 배출한 박사에 대한 처우가 최저시급이라는데, 외부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또 최저시급에 맞춘 박사급 연구원 자리도 1년짜리 계약직이고 후배들을 위해서 빨리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무섭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여기 남아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갈 곳이 없다. 최근 내 전공 분야의 교수 임용은 급변하는 세태를 반영한 세부 전공을 뽑는 중이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공고에는 해당 강의경력이 있는지, 관련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지 등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는 학사, 석사, 박사를 통틀어 그 내용을 배운 적이 없다는 점이다. 내 역량 부족이다. 그래서 학원을 다니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대학과 대학원에서 배운 적 없는 내용을 공부하고 있다. 공부는 끝이 없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박사학위를 받고도 학원을 다닐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게 내 역량 부족이라고만 치부할 일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학부부터 박사까지 십여 년의 시간은 내가 실력을 쌓기에 턱없이 부족했는가? 나는 이 대학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노력했는데, 왜 이 대학이 요구하는 인재가 되지 못하는가? 이는 우리 대학의 교수 채용까지 의문 들게 했다. 내가 졸업한 대학은 유학파 박사를 교수로 채용하면서 왜 본교생에게 대학원을 오라고 하는가? 영어강의 가능자와 해외 저명 학술지 실적이 많은 사람. 결국, 미국으로 유학 다녀온 사람이 우위에 설 수밖에 없는 잣대를 내밀면서 말이다.

 

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가 마침내 알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해서는 안팎에서 새끼와 어미가 서로 쪼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 스스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하고 외부의 결정적인 도움이나 호응도 함께 이루어져야 비로소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스승과 제자 간에 벌어지는 일화로 설명하기도 한다. 나와 같은 수많은 국내파 박사들은 오늘도 알 안에서 열심히 부리로 쪼며 ()’하고 있을 것이다. 3학점짜리 강의의 강사료를 받기 위해 스무 시간 이상 준비를 하면서, 연구실 잡무를 처리하면서, 영어로 논문을 쓰면서, 새로운 이론을 익히면서 말이다. 그럼 학교는 어떤 ()’을 하고 있을까? 시간강사 덜 뽑고 겸임교수 더 뽑는 거 말고, ·박사학위자를 몇 명이나 배출했는지 그 숫자로 학과나 교수의 성과를 가늠하는 거 말고, 미국 박사의 위상을 더 높이는 임용기준 만드는 거 말고.

 

나는 오늘도 박사를 하지 않았다면 내 연봉과 커리어는 지금쯤 어땠을까라는 의미 없는 기회비용을 생각하며, 신세 한탄을 하며,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논문을 쓰며, 하이브레인넷을 뒤진다. 어쩌면 알바천국을 뒤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