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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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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강사 칼럼

아쉬움이 마지막에 닿을 때까지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12. 3. 23:54

  몇 해 전 학교 상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기프티콘을 준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응답했던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우울 수준이 높게 나왔으니 센터에 와서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다. ‘내가 상담 받을 정도는 아니지라는 셀프 진단을 내린 뒤 거절을 했고, 연구실 사람들에게 안 우울한 대학원생이 있어? 우울 수준 낮게 나온 대학원생 있으면 걔가 아웃라이어야라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그 심리검사의 결과는 당시 내 마음 한 구석을 정확히 조명했다. 나는 너무 우울했다. 흔히들 말하는 돈 되지 않는 과를 선택했기 때문에 대학원 과정 자체도 부담이었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내가 학교 밖으로 나간다면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아무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학위를 취득한 선배들의 팍팍한 인생살이를 보고 들을 때, 잊을만하면 한 번씩 고학력 실업자가 늘어나고 대학이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 기사를 접할 때, 시간강사법이 통과되며 강의 한 시수 얻기가 더 어려워졌을 때, 그리고 그 시간강사법이 취지와 다르게 시행되어 그나마 시간강사였다가 또, 아무것도 아니었다가를 반복할 때. 길을 잘못 선택했다는 패배감과 무기력감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시간이 흘러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이번 고비만 지나면 괜찮겠지, 뭔가 길이 열릴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는 현실을 바꿔주지 못했다. 취업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두룩한 해외 박사들, 논문실적이 좋은 사람들, 현장 경력이 많은 사람들과 경쟁 등의 상황은 점점 치열해져만 갔다. 이를 증명하듯 주변 동일전공 선배들의 계속 늘어나는 비전임 시기를 보고 있으면 이게 진짜 맞나?”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불안한 상황을 원망하고 탓한다고 해서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나를 더욱 채찍질할 힘도 동기도 남아있지 않고 그렇다고 더럽고 치사하다고 느끼는 이 바닥을 떠날 용기도 나에게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럴 때 나는 루시드폴을 떠올린다. 루시드폴을 알게 된 것은 유난히 발라드와 인디밴드 감성에 빠져있었던 여고시절이었다. 잔잔한 선율에 아름다운 노랫말도 좋았지만, 유수의 학교들을 졸업하고도 35살에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을 선택한 모습이 멋있었다. 당시에는 이 오빠는 노래도 잘 만들고 인생도 멋지네하며 노래를 흥얼거렸을 뿐이지만 이제와 비슷한 처지에 처해보니 학계를 떠난다는 결정은 보통 용기로는 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체감한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공부한 것이 아깝지 않았냐는 질문에 루시드폴은 충분히 열심히 했기 때문에 더 하고 싶은 것이 안 남았다. 어느 순간 딱 여기까지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대답한다. 이 답변에 나를 한 번 더 뒤돌아보았다. 세상이 말하는 정답이나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고 스스로 갈 길을 개척하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쌓아왔던 것들을 아까워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훌훌 떠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한 것이 아까워서라는 이유로, 혹은 다른 것을 할 자신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한 학기씩 겨우 버텨가는 내 삶의 태도가 부끄러워졌다. 처음 강의를 맡았을 때의 설렘, 작고 귀여운 월급을 받아도 좋은 강의 평가 한 줄에 느꼈던 보람, 학생들과 열심히 상호작용하던 수업시간, 어떤 질문에도 답해주기 위해서 논문과 책을 몇 권씩 뒤져가며 공부했던 열정, 이런 건 다 잃어버리고 현실을 탓하고 정규직이 된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급급했던 내가 우울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론 나도 루시드폴처럼 학계를 떠난다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제대로 된 끝을 경험하기 위해 다시 시작의 불씨를 되살려본다.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을만큼 끝까지 해본다면 이 지긋지긋한 바닥도 훌훌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우울한 나를 세상이 동정하고 구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충분히 열심히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돌아서도 괜찮아라는 마음을 한편에 품고서 논문이 필요하면 머리를 쥐어짜내 쓰고, 경력이 필요하면 밑바닥에서부터 일도 해보는 내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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