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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비나이다 비나이다 본문
비나이다 비나이다
저명한 발달심리학자 에릭슨이 말하길, 청년기 발달과업은 자아 정체감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청년기에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 사람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들보다 확고한 정체감을 일찍 획득하여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였고, 적어도 진로 정체감에 있어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졸업은 할 수 있을까, 졸업하면 자리는 잡을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오고 이 불안감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면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괜히 시작했나?’ 하는 생각을 수천 번도 더 했을 것이다. 그럴 때 옆에서 잘하고 있다고,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고 토닥여주는 선배가 있다면 다행이고,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간다는 오기가 있다면 기특하고, ‘죽겠네 죽겠네’ 하다 보니 끝나간다면 고생 많았다고 박수쳐주고 싶다.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지치고, 기억을 되새기는 것조차 진 빠지는 박사과정을 마친 몇 해 전 여름 당당하게 학사모 던지며 사진을 찍었고, 한 해 두 해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흘러갔다. 그러면서 합리화가 시작되었다. 강의하면서 경력을 1~2년은 쌓아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서는 연구교수를 하면서 경력을 1~2년 쌓아야 할 것이라고. 또 그리고 나서는 국가사업 정도는 1~2년 해봐야 할 것이라고. 이 시간이 헛되이 가지는 않았다. 많은 강사들이 싫어하고 자신 없어 하는 연구방법론 강의만 주구장창 하다 보니 통계 역량이 향상되었고, 학교에 오래 있다 보니 대학에서 하는 각종 사업 및 과제들이 돌아가는 체계를 빨리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제안서와 보고서 작성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 다만,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나의 업적이 될 수 없었고, 잘해야 본전인 일들로 남게 되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5년이 되는 해가 되자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 우리 학교 밖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니, 지방대 전임교원 임용을 위해서는 인문계 기준 논문실적이 기본적으로 1000점은 넘어야 했다. 사실 무조건 양적으로 찍어내는 논문들을 비하한 적도 있었지만, 내심 자신 있었다.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그동안 해왔던 모든 일에 비하면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논문을 쓰는 일은 너무나도 신나고 생산적이었다. 6개월이라는 시간에 10편 정도의 논문을 쓰니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그 순간 내가 살아있음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뒤의 일은 모두가 상상하고 있는 그대로였다. 지도교수의 온갖 미움을 받아야 했고, 한동안 연구실적을 한 편도 낼 수 없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그때의 실적으로 여러 대학의 전임교원 임용 서류 심사를 쉽게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사졸업 후 교수임용 세계에 있어서 여기까지가 최소한의 실력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진짜는 이제부터이다. 40여 년간 내가 가지고 있던 삶의 가치관이 있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나는 하느님을 믿기도 하고, 예수님을 믿기도 하고, 부처님을 믿기도 해야 했다. 단순히 “믿습니다!” 이 한 마디로는 부족했다. 특정 종교인의 추천서가 필요하기도 했고,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기도 했다. 또 나의 교육 및 연구 계획에 종교의 사상이 반영되어야 했고, 내가 마치 독실한 사람인 것처럼 연기도 해야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세상에 나쁜 신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교수만 될 수 있다면 어떠한 종교에서도 신실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의지 정도는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치관 혹은 사상의 문턱을 넘자 정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교수임용은 딱 1명을 뽑는 경쟁이다. 이 경쟁에는 지원자의 실력 외에 인사에 관여하는 수많은 사람의 의견이 모두 반영된다. 교수가 된 선배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괜히 다 알아서 속 아파하지 말아라”였다. 도대체 뭐가 있길래 저렇게까지 말할까 싶었는데, 막상 이런저런 일들을 당해보니 알려주고 싶지도, 알아보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 이 부분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럼 나의 지나간 청년기, 방황하는 청년기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내린 정답은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된다. 누군가는 그 한 명에 뽑힌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고, 기댈 사람 없다지만 그래도 적어도 내가 나 자신은 믿고 살아야 우리의 이른 선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간절히 바라며 해도해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이 쌓여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비나이다, 나무관세음 보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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