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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지방대 출강을 통해 본 현실 본문

2면/강사 칼럼

지방대 출강을 통해 본 현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5. 23. 01:39

  올해 처음으로 지방대학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길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 긴데 괜찮겠냐는 걱정도 많이 들었지만 두 가지 이유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사립대의 강사료가 너무 적어 먹고 살 걱정이 시급했고, 둘째는 자대에서만 강의를 하다 보니 학교 밖 상황은 너무 몰랐었다는 점이다. 출강하게 된 지방대는 국립대다 보니 교통비를 제외하고도 강사료가 서울의 사립대보다 많아 첫 번째 걱정을 덜었고 무엇보다도 지방대 출강을 통해 현실을 더 직시하게 된 점이 가장 큰 소득이 아닌가 싶다.

  지방대 출강을 하면서 무엇보다 놀란 점은 학과 정원이다. 학과 정원이 20명 남짓이라 전 학년을 합쳐도 100명 문턱에도 못 미친다. 휴학생들을 제외하고 나면 70명대의 학생 수가 남는다. 그렇다 보니 4년제 대학에서도 시간표를 체계적으로 짜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수업을 듣게 하면서 폐강되는 교과목은 없어야 하니 전문대처럼 학교가 제시하는 시간표가 상당히 한정적이다. 이 문제는 학생의 선택권을 다양하게 보장할 수 없다는 점뿐만 아니라 나 같은 시간강사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교과목 개설에 제한이 생기다 보니 과목 수가 줄고 전임교수가 채워야 하는 학점 수를 제외하고 나면 강사에게 돌아오는 강의 수는 몇 개 안 남는다.

  둘째, 입시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한 학과들은 해외 유학생들을 받아 정원을 채운다. 내가 출강하는 지방의 경우 과거 화교 출신 사업가들이 많이 있었던 이유로 중국 유학생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유학생의 다수가 한국어 실력을 검증받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 심각한 문제이다. 그 학생들이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도 큰 타격을 준다. 특히 2020년 이후 코로나로 중국 내에서 온라인 수업을 했던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은 그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원활한 소통의 부재로 인해 교수자와 학생 모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완화되기보다는 점차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니 그 점이 더 큰 문제다. 

  이유는 지방대 폐교의 문제가 정말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2023학년도 입시에서 정시 지원자가 0명인 학과가 14개 대학의 26개 학과에 달했다. 지원자조차 없었다는 이야기다. 올해 고3의 수는 역대 최저라고 하니 내년 대입에서 나타날 정원 미달 사태는 정말 심각하다. 그런데 지방에 출강을 해보니 왜 다들 수도권 대학을 가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고 내가 서울에 살면서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매 수업을 시작할 때 학습자 흥미유발의 관점에서 전공과 관련한 다양한 최근 이슈나 책, 영화, 전시 등을 소개하며 수업을 시작한다. 학생들이 보면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만한 좋은 전시가 많은데 거의 대부분 서울에서 열려 지방에 있는 학생들에게 소개할 내용이 없다. 굳이 서울에 있는 전시를 소개해봐야 학생들에게 교통비와 시간을 들여서 꼭 보라고 할 수도 없을뿐더러 한두 번도 아니고 수업시간 마다 이야기하자니 내가 그 지역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 같아 꺼려진다. 전시 뿐만 아니라 영화를 제외한 뮤지컬, 음악회, 연극 등 공연예술도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는 격차가 크다.

  이러한 격차가 과연 전시와 같은 문화생활에서만 일어나고 있을까? 두 번째로 느낀 문제는 대중교통 시스템이다.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어디는 갈 수 있었던 수도권 생활을 굳이 자차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지방대 강의를 나가보니 왜 사람들이 운전을 해서 강의를 다니는지 몸소 체험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갈 때는 오히려 괜찮았다. 고속철도를 타고 가고 역 근처에는 교통편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방과 지방을 오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났다. 너무 드문 배차간격, 이른 시간에 끊기는 대중교통, 버스와 기차를 여러 차례 환승해야만 갈 수 있는 장소 등 실제로 가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을 오가며 많이 느끼는 중이다. 

  거점 지방 국립대를 중심으로 한 통폐합 관련 기사를 많이 접해 보았지만 실제로 지방대학 출강을 하면서 느낀 점은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있는 발전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지방 도시들이 서울 같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벚꽃 피는 순서로 폐교한다 했던가… 올해 벚꽃은 저 남쪽 지방도 서울도 동시에 피더이다. 지방대의 폐교는 지방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수도권 대부분의 대학에 큰 타격을 가져올 것이고 당연히 강사의 생존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