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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강의를 하면서 잃은 것과 얻은 것 본문
얼마 전 다음 학기 강의 개설과 관련하여 지도교수의 연락이 왔다. 지난 학기였다면 당장 감사하다고 어떤 과목이라도 맡겠다고 했겠지만, 이번에는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물론 내가 강의를 맡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고 해서 당장 그 과목이 개설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강의를 하면서 얻은 것만큼 잃은 것도 많았기 때문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박사학위를 받고 이제 겨우 경력을 시작한 초짜 강사다. 몇 개의 강의를 하며 훌륭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기쁨과 보람을 느꼈고 수업 준비를 하면서 내 전공 분야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는 점에서 스스로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경제적인 부분 역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아무리 얼마 되지 않는 강사 월급일지라도 그 월급 없이 일상을 버티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의 강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학교에 소속된 강사가 되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었다. 누군가에겐 고작 ‘강사’로 소속되는 것이 뭐가 대단하냐 혹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박사학위를 받고 소속 없이 사회에 내던져질 위기에 처해 있던 내게 소속을 적을 수 있는 어딘가가 있다는 것은 큰 의미였다.
반면에, 잃는 것도 많았다. 소위 ‘짬’이 없는 내 위치에서는 내가 희망하는 강의를 할 수 없고 주로 다른 교수자가 기피하는 강의 위주로 맡을 수밖에 없다. 이번 1학기 역시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고 누군가의 땜빵으로 맡은 새로운 과목을 급하게 준비하며 내가 정말로 우선순위로 해야 하는 일들을 거의 하지 못했다. 내게 강사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서 잠깐 스쳐 가는 자리여야 한다. 최종적인 교수임용까지 도달하기 위해 지나가는 위치인 것이다.
내 첫 강의는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제안받은, 내 세부 전공과는 거리가 먼 다른 분야의 계절학기 강의였다. 너무나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교수 경력이 하나도 없는 내게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라는 생각으로 나는 덜컥 그 강의를 맡았다. 물론 처음 하는 강의에서 좋은 학생들을 만나 즐겁고 보람찬 학기를 보냈지만, 신체적,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첫 학기였다. 그렇게 학기를 마무리하고 나는 강의보다 내게 중요한 일을 먼저 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다음 정규 학기가 시작되기 전 급하게 온 한 연락에 모두가 꺼리는 강의를 어쩔 수 없이 맡게 되었다. 내심 강의를 담당하게 된 것이 좋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론 학기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부담과 걱정이 너무나도 컸다. 그렇게 새 학기가 시작했다. 매시간 새로운 강의자료를 만들어야 했고 한 주가 끝나면 다음 주 강의를, 그리고 또 다음 주를 걱정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으며, 그사이마다 나의 일인 논문 작성과 프로젝트들을 하루살이처럼 해나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학기가 거의 끝나 있었다.
나의 단기 목표인 해외 박사후과정 진학과 최종목표인 교수임용을 위해서 내가 우선시해야 할 것은 좋은 논문을 쓰고, 해외의 좋은 연구실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학기 중 강의가 없는 시간을 피해서 3박 6일 일정으로 해외 학회를 다녀왔고, 논문도 열심히 썼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으로 내가 생각했던 만큼 원하는 곳에 충분한 시간을 쓰지 못했다. 많은 선생님께서 박사후과정 진학 준비를 위해 1~2개월 정도 충분한 시간을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내게 그럴 시간은 허용되지 않았고 결국 가고 싶은 연구실을 알아보는 것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강의 때문이라고만 핑계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강의 준비와 다른 일까지 모두 소화하며 그가 가진 시간과 자원을 더 잘 활용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장 다음 학기 아무런 소속 없이, 강사 월급 없이 삶을 버티는 것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여러 의미에서 내게 강사라는 직책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만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학기 강의에 매몰되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다짐했다. 다음 학기는 강의를 맡지 않기로. 그리고 내가 정말 우선순위로 두어야 하는 일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다짐했다. 물론 강의를 하면서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공부하고 연구했던 것들을 학생들에게 쉽고 정확하게 안내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이 배워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의미 있고 보람찬 경험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남들이 선택하지 않은 강의만 채워나가는 시간강사를 할 수는 없다. 내 최종목표는 내 연구를 수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래서 다음 학기는 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일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나를 위한 용기를 조금 더 내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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