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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 ‘3대째 운영 중’ 같은 홍보용 문구를 발견하거나, 여러 매스컴을 통해 몇 대째 가업을 이어 한 분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접한다. 방송용이든 진심이든 그들은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는 국내 굴지의 자동차 그룹에서 채용 문제가 있었다. 노조 측에서 정년 퇴직자와 25년 이상 근속자 자녀의 우선채용을 사측에 요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현대판 음서제’의 부활이라고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사를 접한 나의 첫 마음은 “얼마나 만족스러우면 자식에게도 물려줄 생각을 할까”였다. 나는 현재 실용 학문을 가르치는 강사면서 그 학문의 현장에 종사하고 있는 직장인이기도 하다. 연기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가 되었을 때 ‘무대에..
2021년 1학기, 생각지도 못한 우연한 기회로 교수자로서의 내 이름을 건 첫 강의가 개설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맡았던 수업은 다양한 실험·실습을 진행하는 강의로 수업을 시작하기 전 준비할 사항이 많았다. 매 차시 진행되는 실험에 필요한 시약, 기구 등 물품을 구매해야 하고 사전에 예비 과정을 통해 수업에 필요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일련의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박사과정 막바지에 수업을 맡았고, 대학원 과정 중 수년 간 단련된 조교 경험으로 해당 실습비의 지출 결의 등 필요한 과정을 잘 알고 있어 준비를 위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실습 수업의 경우 대부분 수업조교의 도움을 받지만, 디테일하게 지시할 경우 암묵적으로 까다롭다는 교수자로 인식되어 조교의 눈치를 보는 경우도 종종 보았기에 나처럼 경험이 없..
몇 해 전 학교 상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기프티콘을 준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응답했던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우울 수준이 높게 나왔으니 센터에 와서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다. ‘내가 상담 받을 정도는 아니지’라는 셀프 진단을 내린 뒤 거절을 했고, 연구실 사람들에게 ‘안 우울한 대학원생이 있어? 우울 수준 낮게 나온 대학원생 있으면 걔가 아웃라이어야’라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그 심리검사의 결과는 당시 내 마음 한 구석을 정확히 조명했다. 나는 너무 우울했다. 흔히들 말하는 돈 되지 않는 과를 선택했기 때문에 대학원 과정 자체도 부담이었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내가 학교 밖으로 나간다면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아무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지도교수님이 “왜 본교 출신 학생들의 대학원 진학이 적을까요?”라고 물었다. “글쎄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대답은 따로 있었다. “본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친 제 현실을 보면 애들도 생각이 있는데 대학원을 오고 싶을까요?”라고. 내 현실은 다른 인문사회계열 박사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힘들다. 공부가 힘든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문제인가를 처참히 깨닫게 했다. 나이 서른 넘어 공부하는 주제에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 석·박사 과정 중에는 계속 과외를 했다. 과외비로 용돈도 하고 학비도 보태며 수료했고 수료 후에는 매 학기 시간강사로 한 과목씩 맡아 강사료로 돈을 벌었다. 간혹 다른 대학 강의도 동시에 하면 그래도 월 100만 원 남..
대학원도서관 앞 벤치를 지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그곳의 풍경은 대학원생이었을 때, 수년간의 유학생활 이후 다시 찾았을 때, 시간강사로 오고가는 지금까지 달라진 것이 없다. 그곳의 유의미한 변화는 도대체 언제쯤 있었을까. 한국담배인삼공사가 KT&G라는 이름으로 바뀌며 느닷없이 학교 곳곳에 빨갛고 예쁜 쓰레기통을 놓아주었을 때였을까. 여러 신분을 거치며 대학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참, 변하지 않는구나’ 싶은, 이런 장소가 하나쯤 있을 것이다. 대학이란 그런 곳이다. 매년 수천 명이 들어오고 떠나고, 신축과 리모델링 공사 중에 지형이 바뀌고, 새로운 단체와 기관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한편에서, 문을 두드리면 언제나 그곳에서 만나지는 사람이 있고, 80년대 학번부터 기수를 따지는 단체를 심심치 않게 ..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학교에 머무는 사람들끼리 대화하면, 우린 항상 답답함으로 시작해 자기비하로 끝나게 된다. 우리끼리 울화통 터뜨려가며 난리 친다 한들, 안타깝게도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역시 ‘잘못’이라고 단정 짓긴 아직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생각 역시 어리석구나 하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언제, 어디서부터 난 불안했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들어 부쩍 더 많이 한다. 혹시라도 대학원에 진학해서 꿈을 펼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현실적인 조언 혹은 꼰대의 잔소리 등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나의 과거를 되짚어보았다. 강사 칼럼에 기고한 많은 박사들처럼 나 역시 본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입학 때부터 대학원 ..
가정의 달, 가장 가까운 폭력을 멈추자 어느 시간강사 연구자에게 봄과 가을은 참 바쁜 시기이다. 봄에는 개인 연구, 연구소, 학과, 단과대학의 프로젝트 계획서를 공모하고, 가을에는 그 결과물을 제출하느라 정신이 없다. 봄의 공모 과정은 연구의 이름을 띠었지만 ‘행정업무’일 때가 많다. 두 달간 각종 계획서 작성, 공모, 기관 계약에 치이다 보니 4월이 끝났다. 캠퍼스에서 중간고사에 지친 학생들 얼굴을 보며, “너도 힘드냐, 나도 힘들다” 속으로 외치다 보니 5월이 성큼 다가왔다. 바쁜 일정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지친 마음은 주변에 날선 말로 흩어진다. 학생들이 팀플을 하다 싸우듯 연구자들도 협업을 하다 삐걱대는 일이 꽤 있다. 강한 위계와 어른스러운 척 때문에 터지지 않을 뿐이다. 공모를 잘(?)..
-어느 시간강사 한국을 벗어나 독일의 작은 대학 도시에 흠뻑 빠져 6개월 정도 휴식을 취하던 무렵이었다. 작은 도시였지만 은퇴자들이 이사 올만큼 햇빛이 많고 사회 인프라와 치안이 갖춰진 도시였다. 조금만 걸어도 그림에나 나올 법한 숲과 너른 들판이 펼쳐진 곳이었다. 인구의 절반은 대학생 또는 대학 종사자였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이곳을 독일의 보편적인 모습이라 생각하지는 마. 여긴 대학 도시라서 외국인에게도 우호적이니까”라는 말을 해주곤 했다. 이런 현실적인 조언조차 즐길 만큼 도시는 내게 안정과 평화를 건네고 있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이곳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상찬하고 그들의 대학생활이 부럽다며 철부지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수업시간에도 날카로웠던 한 학생이 답했다. “그건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