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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최선의 공공성과, 약자성 본문

5면/문학의 향기

최선의 공공성과, 약자성

Jen25 2024. 9. 10. 14:28

 

최선의 공공성과, 약자성

 

조우리 당신의 자랑이 되려고, 읻다, 2024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시 주관 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 성비에 따른 차등 시상하겠다는 공지를 봤다.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로 나누어진 코스에서 중장거리에 해당하는 경우 각각 여성 3위까지, 남성 5위까지 시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단거리의 경우 여성과 남성 모두 동일하게 3위까지 시상하기로 되어 있었다. 중장거리 마라톤에서 성비 차등하게 시상을 하겠다는 이유를 알아본 바, 중장거리의 경우 실제 참여자 성비가 각각 남녀 5:1 비율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 단거리의 경우 참여자 성비가 동일해서 동일 비율로 시상하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언뜻 문제될 것 없어 보이는 답변이었는데도 영 개운치가 못했다. ‘시민이라는 자격을 조건으로 신청을 받았는데도 신청자 성비에 따라 차등 시상을 하겠다는 건 결과를 불평등하게 조정함에 따라 기회의 평등조차도 불평등으로 전회시켜버리는 결말인 건 아닐까? 시민 전체를 참여 대상자로 설정해두고는 남성 참가자에게 세금을 더 수혜하겠다는 것을 단지 참여자 성비라는 근거로 납득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참여자 성비에 따른 공적 재원의 합리적 분배로 치자면, 공무원 뽑을 때 능력 평가 기준 결과 여성 합격자가 더 많다고 해서 임금을 성비 차등하게 주는 것도 아니면서…….)

스포츠계에서 이러한 논쟁은 남성의 신체 조건이 우월하다는 근거를 중심으로 흘러가곤 한다. ‘신체 조건 좋은남자 100명 중 1등과, ‘그보다 못한여자 10명 중에 1등이 같다든지 하는 이유로 성비에 따른 차등 시상이 정당하다는 논리로 결론지어진다. 하지만 젠더 차에 따른 신체 조건의 차이를 하나의 능력으로 간주하거나 그에 따른 차등을 주장하는 사례에서 우리는 차별을 목격한 지 오래다. 약하니까, 열등하니까, 수가 적으니까 하는 이유가 젠더와 같은 사회적 차이에 따라 차등한 방식으로 적용되는 게 더 문제였다는 것도, 우리는 이미 보아왔다. 하물며 시 홍보 및 시민 체육 생활 증진을 목표하는 공공성을 띠는 대회에서, 여성 마라토너의 수가 적은 사회적 이유를 조사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으면서, 성비에 따른 결과의 평등을 표방하는 것에 동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공공성의 실현이란 소수자성을 지닌 정책, 계층 등에 초점화되어 있을 때 가장 성공적이다. 조우리의 장편 당신의 자랑이 되려고는 공공성과 소수자성, 약자성의 관계에 다정하게 접근해나간다. 이 소설은 가상의 소도시, 동천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로, 공공 정책의 변화에 따라 허물어지기도 하고, 유연하고도 강력하게 유지되는 공공성에 대해 다룬다.

소설은 보궐선거로 동천시에 새 시장이 선출된 이후, 동천시 주재의 한 영화제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화제의 본질은 영화라는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누는 데”(64) 있지만, 이전 공직자의 성과 지우기에 급급한 현 시장은 수익 적자를 근거로 들어 자립을 요구하면서 전액 삭감을 지시한다. 영화제에 투입된 많은 관계자는 중지를 모은다. 영화제를 지속시킬 수는 없을까?

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서로 다른 동천시의 세 가지 마스코트를 전국마스코트자랑콘테스트에 내보내고자 한다. 지역발전을 근거로 동천의 복숭아밭을 밀어버리려는 공공성에 저항하는 의미로 복동이, 금기를 저지른 한 나무꾼이 한 마을은 물론 자신의 아내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자 그 액막이를 위해 나무꾼의 이 대신 바쳐져 선녀가 되었으며 효녀라 불렸다던 설화를 차용하여 역대 동천 선녀를 선발하는 데 기인해 만들어진 마스코트 동천 선녀, 동천 호수를 서식지로 삼는 오리를 대표하는 도리를 지지한다. 이 세 캐릭터 중에 한 캐릭터만 전국마스코트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그 상금으로 영화제를 어떻게든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이들의 마스코트 지지 활동의 목적은 한 회차의 영화제 개최에만 머물러있지 않다. 이들의 행보는 현 시장이 이전 시장의 성과를 지우고자 마스코트를 탄압하는 일에 저항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스코트의 존속을 지키는 일은 대대로 동천시 주민들에게 하나의 동천시 공공성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해준 바로 그 마스코트를 수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개발 논리 대신 자연경관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환경과 공생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만들고(도리), 도시 유입 인구의 급감은 물론이고 점차 고령화되어 가는 거주민 실태에 기반하여 그들의 살아온 방식을 유지할 수 있게끔 협조하며(복동이), 근본없는 설화에 기반하여 미인대회를 개최하는 등 성차별주의를 가뿐히 뛰어넘어 역대 동천선녀로서 마을의 복지를 위해 자발적으로 힘쓰는 여성들의 프라이드를 지켜나가는 일 같은 것.

자연 공생, 과수업 유지, 약자 기반의 호혜적 봉사 실천과 같은 것은, 수익과 발전 그리고 유능함과 같은 논리 위에서 제일 먼저 겨냥되는 약자성을 띤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력하다는 뜻은 아니다. 차별주의를 은폐한 자본과 합리성의 논리에 대항하는 것은 동천의 프라이드, 동천의 마스코트. 그들은 자신에게 겨냥되는 바로 그 약자성을 무기로 하여 시민 공공의 삶을 성취하고자 애쓴다. ‘약자성의 포부란 이처럼 광범위하고 대단하다. 그러니 약자성을 지향할 때 최선의 공공성이 발현되지 않겠냐며, 조우리의 소설은 슬며시 말을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