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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5면/문학의 향기 (38)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5면 문학의향기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창비, 2022.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새드 해피 크리스마스 12월에는 크리스마스가 있고 한 해의 마지막을 고하는 달이고 새로운 해를 맞는 달이니까 선물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뒤적이다가 김금희의 연작소설 『크리스마스 타일』을 찾았다. 총 일곱 편의 소설이 느슨한 형태로 이어진 이 책은 크게는 MTN이라는 방송사의 예능국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인물들의 저마다의 사정이나 그들의 친구, 가족 등의 이야기가 독립적으 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각기 다른 사정을 지닌 인물들은 각 소설에서 저마다의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12월을 맞는 마음이라는 건 무엇일까. 지나간 시간의 마무리, 새로운 삶의 맞이, 소복이 내리는 눈, 반..
할머니와 손녀 토베 얀손, 안미란 옮김, 『여름의 책』, 민음사, 2019.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최근 ‘여성모계서사’가 역사성을 확보하는 방식에 대해 흥미로운 평론 한 편을 읽었다. 여성들이 만들어낸 할머니의 문학적, 회화적 이미지는, 많은 경우 그들이 목격한 할머니의 모방이기보다 억압 없는 모성 또는 사심 없는 자애의 환상이지 않을까. ( 황종연, , 문학동네, 2023년 여름호, 433~444면 ) 요약건대 한국 문학에서 모녀는 혐오적 관계 혹은 어머니적인 것의 계승과 부정을 동시적으로 보이는 양상을 보이는 데 반해, 조모손녀는 그것이 해소된, 이상화된 관계처럼 보인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이러한 재현의 관건은 모녀와 조모손녀 자체라기 보다는 그렇게 재현된 ‘까닭’을 헤아리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그냥 지나가는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며 문진영 (현대문학, 2023년 6월호)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때가 되면 온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다루는 대범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그렇기를 바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때를 기다리는’ 방식의 사유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든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표어가 베이비붐 세대에서부터 진작 삶의 지침이 되어왔음을 고려하면, 뭐든 ‘되게끔 만드는’ 만능의 신자유주의적 주체를 이상적 인간상으로 설정해오는 일은 진작 시작된 듯하다. 이렇듯 ‘새 시대에 맞은 옳은 인간상’에 대한 이데올로기화는 급변하는 매체에 맞물려 자기 표현이 극도로 자유로워진 시대를 표방하며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
심어진 것과 퍼져 나가는 것 -최은영, , , 문학동네 2023.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어제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매달 개최되는 백여섯 번째 304 낭독회에 참석했다. 8월의 낭독회는 〈둘 이상의 마음이 한 자리에〉라는 제목으로 안내되었고, 두 명의 낭독자가 한 팀을 이뤄 목소리를 한 데 모으는 일명 ‘듀엣 낭독회’로 진행되었다. 하나의 텍스트를 둘의 언어로 나누어 말한다는 것은, 잠깐 사이 깜빡 잊어버릴 수도 있을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눠 기억하는 일과 닮은 것 같았다. 아마 8월의 낭독회에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세월호 참사와 304 낭독회는 그들의 마음에 씨앗처럼 심어져 저마다의 기억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 어떤 고통스러운 일에 대한 기억은 고통스러운 것의 지속이..
할 수 없는 것 욕망하기: 오늘날 문학이 재현하는 계급적 욕망에 부치는 두 번째 이야기 선우은실 평론가 자신을 둘러싼 조건은 그 자신이 가장 넘어서고 싶은 무엇이며, 동시에 자신이 가진 것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능가하기 위한 가장 큰 동력이 되는 동시에 근본적인 제약으로 작동한다. 오늘날 계급이 주지되는 방식이자 그것이 욕망을 추동하는 방식이다. 과거, 이 ‘조건’의 많은 것을 결정짓는 것은 자본이라고 여겨져왔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자본이 나의 계급을 조건지우며, 나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투한다. 이런 속에서 인물은 자신의 계급 탈출에 대한 선망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세속적 성취가 근본적인 계급 탈출이 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자괴 혹은 세속적 욕망으로 그것을..
-정선임, 「무슨 말인지 알죠」,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산책방, 2022. “무슨 말인지 알죠?” 정선임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고 소설 내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 말은 확인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했을 때에도 사용된다. 이런저런 말의 자리를 많이 비워두었지만 당신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라는 의미로. 소설은 무엇에 대해 “무슨 말인지 알죠”라고 묻는가. 이를 따라가기 위해 소설의 구조를 먼저 짚는다. 이 소설은 크게 두 개의 시점(point of view)을 교차시킨다. 소설은 우선 안나의 1인칭으로 현재의 서사를 진행한다. 안나는 현재 병상에 누워 있는 노인 여성으로, 손녀 율리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현재를 떠올리고 과거를 회고한다...
여성의 탐미주의, 선구적 감각의 재편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백신애, (, 작가정신, 2023.) 여타의 다른 윤리적/도덕적/정치적 타당성을 설득하지 않고 오로지 아름답다는 사실만으로(혹은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는 사실 만으로) 존재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름다움은 인간을 기쁘게 하고 황홀하게 만들며, 인간에게 탐미란 거부할 수 없는 매혹처럼 느껴지곤 한다. 탐미주의는 예술의 정치적 정당성을 대타항으로 두고 예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자율성을 하나의 미학으로 주장하려는 반항적이고 전위적 시도 중 하나로 주창되었다. 탐미주의는 예술의 미학 한 가운데 놓인 정치성을 비판하되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그러한 기왕의 예술사조에서 멀어짐으로써 예술에 대한 새 미학적 기준을 제시하려고 한다는 ..
-이미상 (, 문학동네, 2022) 한 명의 인간이 ‘여성’으로 호출되는 세계에서 여성은 그러한 호명에 내재된 주체 박탈의 기획을 체화하는 동시에 그것에 저항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비-주체 여성과 주체 여성은 완전하게 분별되지 못한다. 억압의 호칭 속에서야 비-주체로 자신이 자리하고 있음을 자각하기에 그러하며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함에 바로 그 호명의 체계를 둘러 나가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비-주체로서의 명명을 자기 언어로 재구성하고 다시 발음할 때 기왕의 규율을 장악하고 있는 이의 자리는 내파된다. 기존 체제에 존속되어 그 언어적 규칙을 옹호하는 이의 권위는 그가 박탈하고자 하는 비-주체가 그 자신을 지칭하는 권위자의 언어를 회수해감으로써 박탈된다. 비-주체는 그런 방식으로 주체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