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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재현으로서 서사 문학의 형식과 주체의 자기 언어화의 역설 본문

5면/문학의 향기

재현으로서 서사 문학의 형식과 주체의 자기 언어화의 역설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3. 16. 11:58

-이미상 <티나지 않는 밤>(<<이중 작가 초롱>>, 문학동네, 2022)

 

한 명의 인간이 ‘여성’으로 호출되는 세계에서 여성은 그러한 호명에 내재된 주체 박탈의 기획을 체화하는 동시에 그것에 저항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비-주체 여성과 주체 여성은 완전하게 분별되지 못한다. 억압의 호칭 속에서야 비-주체로 자신이 자리하고 있음을 자각하기에 그러하며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함에 바로 그 호명의 체계를 둘러 나가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비-주체로서의 명명을 자기 언어로 재구성하고 다시 발음할 때 기왕의 규율을 장악하고 있는 이의 자리는 내파된다. 기존 체제에 존속되어 그 언어적 규칙을 옹호하는 이의 권위는 그가 박탈하고자 하는 비-주체가 그 자신을 지칭하는 권위자의 언어를 회수해감으로써 박탈된다. 비-주체는 그런 방식으로 주체의 자리를 찬탈한다. 이미상의 소설에 비추어 볼 때 그간 비-주체로 호명되어 온 이가 주체의 자리로 이행하는 일은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307면)이라는 표현으로 드러난 바 있다. 비-주체인 여성에게 강제적으로 주어진 외부적 수행성임을 정확하게 마주하면서, 싫은 채 그것을 수행하는 인물에 의해 비로소 주체의 언어는 쥐여지는 것이다.

이때 ‘주체’로의 전환은 ‘새로이 거듭나는-’의 의미가 아닌, 주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일종의 기대 층위를 스스로 끊임없이 배반(당)함으로서야 얻어지는 불확실하고 모호한 것임을 이미상의 <티나지 않는 밤>은 보여준다. 소설은 이 전언을 서사의 형식을 원리로 삼아 재현한다. 소설은 수진을 초점 인물로 삼은 3인칭으로 전개된다. 소설은 수진을 따라가며 여성이 언어를 획득하고 사용하고 장악하는 세 단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준다.

병원의 안내 데스크 직원으로 일하는 수진은 “고졸”의 “젊은 여자”로 같은 근무자이자 스스로를 “초대졸”이라 말할 줄 아는 수미와 분별된다. 외부로부터 자기를 설명할 언어를 그러모으던 당시의 수진은, 자기를 설명하는 일말의 언어를 지닌 수미를 어쭙잖게 생각하는 원장의 시선에는 차라리 나은 비-주체이자 그만큼 가소로운 존재로 여겨진다. 원장이 화초에 물을 뿌리다 말고 “종종 수진과 수미의 얼굴에 분무기를 뿌렸다”는 한 줄의 진술은 이를 뒷받침한다.

한편 수진은, 전 애인으로부터 사생활 침해로 고소당하고 자신을 “예술가”라고 주장하는 남자와 동거하다가 그녀가 축적해온 언어를 조롱당한다. 무일푼으로 얹혀살던 남자는 수진이 베란다 한구석에 겨우 두 발 디딜 만큼의 공간에서 남몰래 쓴 소설을 발견하고는 “킥킥 웃었다”. 그녀는 남자와 결별을 선언하고 병원 또한 그만둔다. 이후 수진은 이제 세계의 언어를 수집하고 학습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그 언어로 자신의 서사를 써내려간다. 언어를 사용하는 단계다. 그럼 그 다음은? 수진이 곧 세계의 언어를 자기의 질서 속에서 재배열하고 온전한 자기 언어화 하는 주체로서 거듭나기를 기대하게 되는 시점이다.

이후 서사는 수진의 소설 투고로 국면을 전환한다. 수진이 매년 소설을 투고했던 K출판사에는 어떤 원고에라도 성실하게 답변을 보내오는 편집자가 있었다. 원고 아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숫자가 나열되어 있기는 했지만. 몇 해 전부터 회신을 받지 못한 수진은 출판사에 찾아갔다가 해당 편집자의 사망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원고에 적힌 숫자가 소설을 읽고 답변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초 단위로 셈한 ‘노동 시간’임을 알게 된다. “한때 그것은 그에게 신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이 아닌 건 아니었다”는 문장으로 일축되는 이 장면은, 타인의 언어를 살피는 일이 일말의 신념과 결부되었음에도 불가피한 자기 훼손으로서의 노동과 겹쳐져 있음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이 상황에서 수진이 알게 된 것을 헤아리는 일이 중요하다. 자신의 발화―마침내 주체의 자격으로 언어화하는 것으로서 소설 쓰기―가 얼마나 주체적일지언정 타인에게 가닿는 과정에서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로서 해석됨을 이해한다는 것, 이것이 수진이 수행한 주체의 언어화의 결말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세계의 언어를 획득하고 사용한 끝에 그것을 장악하여 주체-되기에 이르는 서사를 기대하는 독자로서 이는 아쉽게 여기고 말 결말인가? 이와 관련해 서사 속 특정한 형식의 문장/진술에 대해 덧붙여본다. 이 서사는 3인칭을 사용하되 소설 내외부 경계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듯한 서술을 틈입시킨다. 굵게/기울임 처리된 문장들은 서사 초반에 수진이 수집하는 언어와 관련한 환청으로 제시되었다가, 나중에는 바로 앞 문장을 지시/장악하는 것으로 등장한다(“반전으로서의 창조행위, (...) 클라크 켄트의 비밀. 명사로 끝내기의 낯간지러움.”, 170면). 이것은 누구의 진술인가? 경계의 목소리가 소설 내외부의 경계를 흐림으로써, 독자가 읽고 있는 이 소설 자체가 이미 수진에 의해 쓰인 소설일 가능성을 작품은 드러낸다. 즉 수진이 주체의 언어로서 제출한 것이 바로 <티나지 않는 밤>이고, ‘주체로 거듭나 언어를 장악하는 일’이 이런 식의 자기 모순과 언어의 붕괴를 동시적으로 발생시키는 일임을 이 소설로서 재현하는 것이다. 이는 ‘소설’이란 형식을 통해서라야 주체 언어화를 원리적으로 재현하는 것인 바, 이미상의 소설이 서사 문학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식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