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공공보건의료 #코로나19
- 보건의료
- 항구의사랑
- 죽음을넘어
- 국가란 무엇인가 #광주518 #세월호 #코로나19
-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염동규 #자본주의
- 518광주민주화운동 #임을위한행진곡
- 선우은실
-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 산업재해 #코로나시국
- n번방
- 임계장 #노동법 #갑질
- 쿰벵
- 심아진 #도깨비 #미니픽션 #유지안
- 김민조 #기록의 기술 #세월호 #0set Project
- 쿰벵 #총선
- 애도의애도를위하여 #진태원
- 수료연구생제도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n번방 #코로나19
- 권여선 #선우은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김승옥문학상수상작품집
- 5.18 #광주항쟁 #기억 #역사연구
- 한상원
- 코로나19 #
-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로나 콜른타이 #위대한 사랑 #콜른타이의 위대한 사랑
- 미니픽션 #한 사람 #심아진 #유지안
- BK21 #4차BK21
- 고려대학교언론학과 #언론학박사논문 #언론인의정체성변화
- 시대의어둠을넘어
- Today
- Total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체험과 소설, 위반하는 말하기 본문
-아니 에르노, 『사건』, 민음사, 2019.
선우은실
아니 에르노가 집필한 다수의 작품은 작가가 직접 체험한 일을 소설화했다는 특징을 지녔기 때문인지 작품에 대한 평가나 가치 판단이 곧장 작가의 삶에 대한 그것으로 직결되곤 한다. 그러나 앞서 자연인으로서 아니 에르노가 경험한 것이 글 쓰는 자아를 거쳐 소설로 제출되어있는 한, 그 연결 고리를 놓치지 않으면서 이 작품을 하나의 ‘문학 양식’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물론, 문학이므로 현실의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이분법에 빠지지 않으면서 말이다.
사실 아니 에르노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작품이 날카롭게, 그리고 날것의 현실을 소환하는 차원에서 충격적으로 읽히는 까닭은 (작가 그 자신과 완전하게 분리되지 않는) ‘글 쓰는 여성의 발화’에 있다. 아니 에르노가 청년 여성으로서 경험한 당시의 사건을 쓴다는 것은 여성의 삶 주변에 만연한 사회적 금기와 규율 안에서 그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며 나아가 여성에게 주어진 ‘금기’를 어떻게 관통해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른바 금기된 것의 위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은 『사건』이다. 이 작품은 1960년대 여대생의 임신 중지를 다루는 자기 고백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한 여대생이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1963년 10월부터 불법 임신 중지 시술을 두 차례 받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1964년 1월 사이에 있었던 일이 소설의 주 내용(서사A)이며, 소설의 처음과 끝 그리고 중간중간 괄호를 통해 1999년(또는 그에 준하는 먼 시점)에 그 사건을 회상하는 서술자를 등장시키는(서사B) 구조로 소설이 구성되어 있다.
일단 주목해야 할 것은 임신 중지를 필요로 하는 여성이 어떤 식으로 범법자가 되는 일을 피하면서 그것을 실행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르포적 탐색이다. 즉 서사A는, 여성을 임신/출산하는 몸으로 규정하고 법으로 통제하는 사회가 궁극적으로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율성 및 여성 그 자체로 존재하는 일을 억압함을 고발한다. 특히 여대생이 임신한 경우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 임신/출산에 따른 여성 계급의 고착화를 꼬집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예사롭지 않은데, 이는 ‘당시’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임신 중지가 합법화되고 여학생이 임신/출산/임신 중지를 함으로써 공부할 자격과 기회―이는 지식 자본을 갖춤으로써 지식인 계급으로 진출할 수 있는 자격과 기회로 연결된다―를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적어도 그런 형식이나마 존재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규범적으로 여성에 대한 억압이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그런데 이 모든 내용이 온전하게 화자의 과거로 돌아가 전개되지 않고, 불쑥불쑥 끼어드는 1990년대의 화자의 난입에 의해 전개되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위에서 일종의 주제이자 이 작품의 시사점으로 언급되는 ‘내용’은 정작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1970년대의 투쟁들―‘여성들에게 가해진 폭력’ 같은 것에 맞선―이 어쩔 수 없이 단순화한 문구들과 그런 집단적인 관점에 거리를 두면서, 내가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이 사건을 당시의 실재 속에서 과감하게 맞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임신 중절이 이제는 금지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 이들은 금고형과 벌금형을 받았다. ① 몇 건의 임신 중절 시술을 집도한 자. ② 의사들, 산파 전문의들, 약사들 그리고 임신 중절 시술을 추천하고 용이하게 한 이들. ③ 스스로 임신 중절에 나선 여성 혹은 그에 동의한 여성. ④ 임신 중절을 선동하고 피임을 선전한 자. 더불어 범법자들에게는 체류도 금지된다. (…)
『새로운 라루스 백과사전』, 1948년판.
1970년대 여성들이 투쟁한 끝에 임신 중지가 합법화되기까지 프랑스에서 여성의 임신 중절은 불법으로 치부되었으며 이와 연관된 모든 사람이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이 내용은 1960년대 당시의 기록을 되살피면서 그 ‘사건’을 회고하는 서사A의 중간중간 완전히 과거로 회귀하지 않은 채 ‘그 당시를 재현하는 현재적 나’로서의 서술자가 개입하는 문장들을 통해 제시된다. 어쩌면 이 때문에 독자는 과거로의 완전한 몰입에 방해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 장치, 과거에 적었던 노트를 제시하여 ‘사건’의 시점인 과거를 소설적 현재로 강력하게 끌어당기면서, 동시에 이것이 회고되어 재현되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서사B로부터의 개입이 지속된다는 것에 의해, 우리는 임신 중지라는 사건이 소설적 자아인 ‘나’의 사건인 동시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현실의 누군가의 것임을 혼종적으로 체험한다.
서사A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소괄호로 처리된 문장을 통해 화자와 인물 작가의 사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발화 방식, 소설적 과거에서 빠져나와 끊임없이 현재를 환기하는 이러한 기록 방식의 의의는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데 기여하는 셈이며, 이 세상에서 남성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란 서술자의 말에 요약되어 드러난다. 여성 당사자의 경험을 문학으로 써내는 일이 정당성과 정치성을 지닐 수 있는 까닭이다.
'5면 >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성의 탐미주의, 선구적 감각의 재편 (0) | 2023.04.15 |
---|---|
재현으로서 서사 문학의 형식과 주체의 자기 언어화의 역설 (0) | 2023.03.16 |
사랑이 필요함을 인정하기 (0) | 2022.11.05 |
소설의 결말, 인물의 결말 (1) | 2022.10.08 |
배신하(지 않)기 (0) | 2022.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