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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배신하(지 않)기 본문
배신하(지 않)기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삶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 전개되는 현장으로 드러날 때, 그런 현실을 반영하는 소설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해지는(또는 그 인식을 배반하는) 어떤 ‘틈’을 재현한다. 이를테면 옳음의 문제에서 그것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수행되지 않는 삶의 모순을 서사화하는 식이다. 김멜라의 「링고링」은 이러한 주제 의식에서 톺아볼 때 더욱 흥미롭다. 이 소설에는 많은 것으로부터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나’가 등장한다. 역설적이게도 ‘나’가 부단히 배신당하지 않으려고 촉각을 곤두세우는 까닭은 자신이 이미 배신당했거나 배신했기 때문이다. 즉 ‘배신하지 않기’라는 일종의 금기는 이미 배신했거나 배신당한 것으로부터의 교훈이다.
‘나’가 처음 배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삶의 기준으로 삼게된 것은 중학생 때 ‘실수’를 저지르면서부터다. ‘나’는 “머리카락이나 팔을 쓰다듬”어가며 친밀감을 표했던 짝이 ‘여친’을 사귀고 있음을 알고 이렇게 반응한다.
“웩, 너무 이상하다.”
나는 그 여자 선배의 모습을 내 멋대로 상상하며 타이르듯 그에게 말했다. 설마 남자처럼 하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지? 그런 사람을 사귈 바에야 ‘진짜’ 남자하고만 사귀는 게 낫지 않아? (14~15면)
훗날 이 일을 돌이켜 ‘나’가 “말실수”라고 칭하듯 “웩”은 얼마간은 실수였을 것이고, 그렇다 하더라도 퀴어 혐오는 옳지 않으며 이는 중학생이어도 예외일 수 없다. 다만 그러한 행동을 지적하는 여러 방법이 있었을 텐데 짝은 그것을 폭력으로 다스린다. ‘나’는 노래방에서 짝의 ‘여친’ 및 그의 친구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그 또한 진심이었을 것이나 ‘나’는 그 상황에서 벗어난 뒤에 배신감에 휩싸인다. ‘웩’이 구타를 유발함에 마땅한 이유겠느냐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같이 놀자며 ‘나’를 이끈 짝이 구타가 행해지는 동안 한 번도 자기를 돌아보지 않은 채 노래했고, 얻어맞기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상냥하게 굴었다는 이 모든 정황 때문이다.
이는 과연 ‘배신감’이라는 표현으로 적절한가? ‘나’가 퀴어 혐오를 드러냈기에 응징당했다는 말로 이 장면을 설명할 때, 이것은 악의 없는 혐오 또는 정당성을 가진 폭력 그 어떤 쪽으로도 기울어지기 어렵다. 악의가 없더라도 ‘혐오’이고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 두 맥락이 인과성을 지니게 되었을 때 이 상황 한복판에 놓여있는 ‘나’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실수이되 잘못이므로 벌 받았다고 생각하는 한편 처벌에 의한 반성이 집단과 힘에 의한 굴복으로 집행되었다는 데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며,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친밀감에서 적대감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음에 혼란을 느꼈으리라. 그러니 자기가 저지른 일과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한 이중의 수치심이야말로 ‘배신감’의 정체일 것이다.
그런데 소설은 이 사건을 딛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사건을 겪은 뒤 ‘나’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고등학교 친구 ‘영주’에게 우정을 넘어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나’의 엄마가 친구라고 소개한 일본에 거주한다던 이모 성윤이 사실은 오랜 애인 관계였음을 넌지시 깨달았던 과거를 소환한다. 이제 ‘배신감’은 ‘나’의 삶의 구성원리로 결집한다. 퀴어 섹슈얼리티를 전유했던 ‘나’가 친구의 ‘여친’ 여부에 “과민 반응하며 혐오의 말을 내뱉은 건 어쩌면 자기부정에 가까운” 일이었으리란 오혜진의 해설(323면) 또한 이런 측면에서 이해된다.
그런데 ‘나’의 자기부정은 그저 섹슈얼리티에 대한 수용 여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 엄마의 외도에 동참하며(그렇다. 결국 성윤을 만나는 일로 이혼하게 되었음을 고려할 때, 엄마와 성윤의 관계는 가부장제에서 거부된 사랑이면서 가부장제를 기틀 삼는 공동체에서 이혼의 사유, 즉 외도라고 표현된다) ‘나’가 성윤 이모에게 가졌던 선망과 호감은, 자신을 그 누구 못지않게 사랑한다고 여겼던 ‘엄마와 이모’로부터 배반당한 꼴이 된다. 이모가 ‘나’에게 갖는 호감은 정확히는 애인의 자녀에 대한 호감이자 애증이고, ‘엄마의 애인’이라는 관계성이 가로놓여 있는 한 ‘나’에게 보였던 이모의 호감은 결국 자신을 이혼 가정의 자녀로 이끈 궁극적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것과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었던 것이 끊임없이 자기를 배반하고 배신하는 경험의 축적 속에서, ‘나’는 절친 영주를 사랑하면서도 절대 ‘그런 사이’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혐오의 끝에 자기혐오가 있듯, 부정의 가장 끝 간 데 놓인 자기부정은 이렇게 펼쳐진다. 이는 오랜 배신의 경험을 체화해온 ‘나’가 자신을 배신함으로써 도달하게 되는 ‘안전한’ 지점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부정을 삶의 원리로 작동시키는 ‘나’의 행위는 옳은가? 또는 저마다의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서 주변의 인물들이 ‘나’에게 저지른 일들은 옳은가? 이 질문은 부족하다. 때로 ‘옳은가’를 질문하게 될 때 납작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멜라의 소설이 바로 그 지점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의 배신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보다 입체적으로 읽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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