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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면/미니픽션

한 놈은 잡는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9. 19. 21:25

한 놈은 잡는다

심아진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3, 아니 4대가 식당 앞에 모였다. 얼마 전에 여든 살이 된 할아버지를 평생 단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아버지 얼굴에 언제나처럼 체념이 서려 있었다. 나 역시 내가 죽어도 한 놈은 반드시 제대로 잡는다.”는 식의 신조를 지닌 할아버지를 당해내지 못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핑계를 대보았지만, 음식을 포장해 집으로 오겠다는 말에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날이 어렵다고 하면 다른 날, 또 다른 날을 잡자고 매일 전화할 게 뻔하기도 해서였다.

방역 4단계로 식당은 4인까지만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런 지침쯤은 가볍게 무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족이라고 말 안 하면 누가 알겠냐며, 네 명, 세 명씩 따로 들어가자고 했다.

 

이 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냐? 여기 내 평생 한 시간 이상 줄 안 서고 들어간 적이 없다.”

이 코로나 시국에도 꼭 막국수를 먹고야 말겠다는, 그것도 아들 내외만이 아니라 손자 내외, 증손자까지 데리고서 그러겠다는 할아버지야말로 대단해 보였다. 물론 줄을 선 건 우리만이 아니었으니, 모두가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백신도 다 맞았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말이 되냐?”

 

할아버지는 구시렁거렸다. 할아버지만큼이나 늙어 보이는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돌파 감염 같은 걸 들먹여 보았자 돌아올 대답이 뻔해서였다. 할아버지는 월남전에서 바로 옆에 있던 전우의 얼굴이 박살 났을 때도 자기는 코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며, 다 운명대로 죽거나 살기 마련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곤 했다.

내가 아들이 없냐, 딸이 없냐, 손자에 증손자까지 있는데 내가 왜 할망구랑만 밥을 먹냐.”

그건 자식 욕심 많은 할아버지가 우리를 식당으로 끌고 다니면서 자주 하는 말이었다.

 

코로나 유행 초창기 무렵, 아버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최소한 아들 내외, 딸 내외, 손자들까지 더해 거의 스무 명은 되는 가족이 몰려다닐 일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평생 할아버지를 겪고서도 여전히 충분히 할아버지를 알지 못한 아버지의 오판이었다. 할아버지는 직계 가족이라는 걸 강조하며 아버지와 나만큼은 놓아주려 들지 않았다. 회나 고기를 사서 할아버지 집에 모여 앉아 먹는 건 더 고역이었다. 식당은 문 닫는 시간이라도 있었으나 집은 그런 것도 없었으니까.

 

줄이 현저히 줄어든 무렵이었다. 우리보다 몇 자리 앞에 줄 섰던 사람들과 식당 주인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일었다.

글쎄 우리 어머니는 백신도 다 맞았다니까요. 같이 사는 가족인데, 겨우 다섯인데 같이 못 들어가다니 말이 돼요? 등본이라도 떼다 줘요? ?”

그러나 방역이 4단계로 강화되고서는 가족이건 뭐건 4인 이상이 모여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주인은 완강했다. 죄송하다고 말했으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끌끌, 혀를 찼다.

사람들이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우리처럼 애초에 나눠서 들어가면 될 것을. 안 그러냐, 애비야?”

아버지는 주변에 들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스러운지 서둘러 네네, 했다. 종일 막국수 한 가락 제대로 얻어먹지 못한 듯 기운 없는 얼굴이었다. 내게 핑곗거리 만들어서 못 온다고 하라던 때의 분기탱천했던 마음은 모두 사라진 듯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먼저 들어갔다. 나와 아내, 유나가 앉은 곳은 할아버지의 테이블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맛있게들 먹어라.”

떨어져 앉은 우리에게 들리도록 일부러 소리를 높인 게 틀림없었다. 가게 주인이 당장 할아버지 자리로 달려갔다.

어르신. 식당에서 큰소리를 내시면 안 됩니다.”

할아버지는 팔십 평생 그런 일 한번 겪지 않았겠냐는 듯 유들유들한 태도로 알겠소, 알겠어. 내가 귀가 어두워서.” 했다.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주인이 곤란하다는 얼굴로 물러섰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주인이 카운터에 닿기도 전에 다시 소리쳤다.

이 집 열무김치가 끝내준다. 어여 먹어들 봐라.”

이번에도 우리에게 들리라고 하는 말임이 명백했다. 주인이 다시 당황한 얼굴로 뛰다시피 갔다. 이미 마스크를 벗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사정하다시피 말했다.

어르신, 식사가 나오기까지는 마스크하고 계셔야 합니다. 제발 소리 좀 낮춰 주시고요.”

할아버지는 유들유들하던 좀 전의 태도를 단번에 버렸다.

이거야, . 김치를 먹으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할 거 아니요. 열무김치는 음식 아니요?”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논리는 수육이나 막국수, 전병을 먹을 때만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면 다른 밑반찬도 주요리가 나올 때 같이 내놓든지 해야 한다는 거였다.

상에 음식이 있는데 마스크를 벗지도 먹지도 말라니 말이 돼? 이러려면 손님을 왜 받아.”

편의상 밑반찬을 먼저 내놓을 수밖에 없었을 주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아버지가 간곡한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달랬다.

아버지, 좋은 기분으로 잡숫게 그만 하세요.”

모르긴 몰라도 그 순간 아버지는 할아버지 때문에 식당에서 무수히 겪어야 했던 민망한 경험들을 떠올렸을 거였다. 어머니 얼굴도 굳어갔다. 언제나처럼 할아버지가 뭐라 하든 누구와 무슨 실랑이를 벌이든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는 할머니만 표정이 밝았다. 내가 알기로 할머니는 육신이 있을 뿐 오래전에 성불한 분이었다.

수육이 나오자 할아버지는 아차, 하더니 막걸리를 주문했다.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하면 자리가 길어지는데. 그런 걱정을 나만 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떨어져 앉은 나와 눈을 맞춘 아버지가 급히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아버지였으나 얼른 비우고 얼른 일어서려면 그 수밖에 없다고 계산한 듯했다.

우리 자리에도 수육이 나왔다. 사람들이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라고 후기를 올린 그대로 정말 맛있기는 했다. 아내가 윤기 흐르는 고기 한 점을 집어 유나의 앞접시에 놓았다. 유나는 마스크 아래만 살짝 열고는 포크로 집은 고기를 입에 넣었다.

유나야. 잠깐은 마스크 벗어도 돼.”

아내가 말했으나 일곱 살 딸은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유치원에서 누군가가 마스크를 벗지 않고 간식 먹는 걸 보고 선생님이 칭찬한 뒤부터였다. 딸아이는 유치원 선생이 언급한 누가 보든 보지 않든이란 주문에 제대로 걸려 있었다.

어떠냐? 고기가 진짜 야들야들하지?”

할아버지가 또 크게 소리쳤다.

혹시 저쪽 할아버지와 일행이신 거예요?”

우리 테이블에 막국수를 놓던 종업원이 갑자기 나를 향해 물었다. 근처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도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듯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딸 앞에서 거짓말하기가 싫었으나 사실대로 말해서 주변의 눈총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 .” 하며 우물거리고 있는데 할아버지 소리가 다시 들렸다.

여기 막걸리 한 병 더 주쇼.”

막걸리를 한 병 더 시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아버지 얼굴은 화로에 들어간 고구마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주인은 또다시 번개처럼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주인이 우리가 앉은 테이블로 시선을 주는 걸 보니 종업원이 우리가 일행일지 모른다고 알린 듯했다. 주인이 허리를 낮추고서 할아버지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순순히 물러서는 대신 꽥 소리를 질렀다.

예끼, 이 사람아. 여기가 무슨 북한인가? 공산당이야? 빨갱이들도 이렇게는 안 해!”

할아버지는 좌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술도 급히 마셨겠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자며느리, 증손자까지 함께 있겠다, 게다가 얼마 전 팔순 생일을 온 가족 불러 거하게 챙겨 먹지 못해 내내 서운했겠다, 할아버지가 흥분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나는 마스크를 쓴 채 우물우물 고기를 씹고 있는 유나를 보았다. 아내에게 눈짓을 했다. 대충 먹고 빨리 일어서자는 뜻이었다.

우리는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계산을 하고 나와서는 곧장 주차장으로 갔다. 아버지 차 옆에 우리 차가 있었다.

한참 후에 네 사람이 나왔다. 할머니는 식당에서 아무것도 듣고 본 게 없다는 듯 맑은 얼굴이었으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울한 얼굴이었다. 할아버지는 미뤘던 팔순 잔치를 마침내 제대로 열기라도 한 것처럼 흐뭇한 표정이었다.

어쨌거나 나만 죽을 수는 없지 않냐, 윤철아. 내가 항상 말했지? 곧 죽어도 한 놈은 반드시 제대로 잡는다고.”

나는 우리가 먼저 나간 후 할아버지가 식당에서 무슨 일인가를 벌였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버지를 보았으나 아버지는 내 시선을 외면한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어떠냐, 유나야? 맛있게 먹었냐?”

, 할아버지.”

할애비가 다음에 또 좋은 데 데려가마. 우리 맛난 거 많이 많이 먹자꾸나.”

, 할아버지.”

우리 유나가 신랑 데려올 날도 있겠지, 안 그러냐?”

할아버지가 하하하, 큰소리로 웃었다. 할아버지가 증손자, 아니 고손자까지 대동하고서 음식점에 들어서는 장면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아닌 게 아니라 할아버지라면 백 세가 아니라 백이십 세까지도 거뜬히 건강을 유지할 것 같았다.

 

나중에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너희랑은 우연히 만난 거라고 주인에게 박박 우기셨단다. 따로 앉은 거 보라며, 손자들이 먼저 나간 거 보라며, 자기가 여든 넘어 헛소리나 하겠냐며. 게다가 글쎄, 언제 보셨는지. 멀리 있는 두 테이블을 가리키며 일행이 틀림없다고 하지 뭐냐. 수육 먹고 나서 한 사람씩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자리를 바꿨다는 거야. 할아버지가 못 믿겠으면 CCTV 당장 돌려보라고 큰소리치는 통에, 그 사람들 순식간에 나가버리고, 식당 주인 쩔쩔매고. 할아버지 결국 막걸리 세 통 드셨다, 세 통.”

나는 그날 할아버지가 제대로 잡은 한 놈이 누구였을까 생각했다. 식당 주인이었을까, 자리를 바꿔치기한 손님들이었을까, 아니면 아버지나 나였을까? 어쩌면 코로나19가 아니었을까? 순간 딸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유나는 집에서는 마스크 벗고 먹어도 돼.” 하는 엄마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연신 포크를 마스크 아래로 넣었다가 뺐다가 하며 복숭아를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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