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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강사 칼럼

대학 최상위 포식자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0. 10. 13. 11:36

  나는 강사 출신 직원이다. 계약직인데 너무 바쁘고 힘들다. 돈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일이 많다. 종일 격무에 시달리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와 간신히 책 본다. 사실 피곤해서 책도 잘 안 들어온다. 잠을 줄여볼까 했는데 며칠 시도하다 포기했다. 잠에 진 빚은 어떻게든 갚아야만 했다. 점심 먹고 꾸벅꾸벅 졸다 눈치 보여 죽는 줄 알았다. 결국 평일 공부량은 극빈이다. 돈은 많아졌지만 논문을 쓰기 위한 시간은 대폭 줄었다. 마음 잡고 공부할 수 있는 건 주말인데, 덕분에 사람을 아예 못 만난다. 나는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강사 시절에 벌었던 돈은 끔찍했다. 월세 내기도 힘들었다. 한 칸짜리 방에서 7년을 살았다. 어떻게 해도 돈 모으기 어려웠다. 월세, 각종 세금, 기타 생활비. 모든 것이 빠듯했다. 내 사정을 알 리 없는 학생들에게 교수님 소리 들으며 강의를 마치면 허탈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학점 주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방 한구석에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틀고 쌀이 떨어지면 라면을 끓여 먹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10?

 

  많은 고민을 했다. 계약직 직원으로 들어가면 강의 경력이 끊기는데 괜찮을까. 연구할 시간은 얼마나 될까. 처음하는 조직 생활 잘 해낼 수 있을까. 책 읽고 글 쓰다 자고 깨던 생활을 했던 내가 출·퇴근하는 삶을 견딜 수 있을까. 집과 사랑과 결혼과 삶의 질을 생각하면 강사 생활은 그만해야 맞는데, 좁은 방, 개 짖는 소리, 요리조리 난 골목길을 넘어야만 나타나는, 지겨운 내 방. 연구는 직원 생활하면서 해보지 뭐... 그리고 직장 생활 1주일. 나는 사직서를 써서 서랍에 넣고 다녔다. 가슴에 사표를 넣고 다닌다는 회사원의 이야기가 실화임을 깨달았다.

 

  여타 대학이 그렇듯 우리 대학도 평가를 받는다. 나는 부서 평가를 잘 받기 위해 뛰어다닌다. 처음 경험하는 행정 서비스 제공은 신세계였다. 친근하고 겸손한 학생도 많지만 얼토당토않은 불평을 늘어놓는 학생도 많았다. 다짜고짜 화를 내는 학생도 있고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민원을 넣는 학생도 있었다. 심지어 어딘가에서 불만이 잔뜩 쌓여 들어온 학생의 화풀이 대상이 될 때도 있었다. 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학생 만족도 조사를 하는데 점수와 평가가 이상하게 나올까 두려워하는 편이다. 사실 지난 평가 때 불친절해서 기분 나빴다는 평가를 받아서 더 그렇다(내가 그렇게 불친절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물론 진짜 문제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나는 서비스 마인드를 더 잘 갖추게 되었다). 평가는 상부에 보고된다. 나는 모욕을 받는 느낌이었다. 잘잘못을 떠나, 많은 사람이 나의 과실과 실적을 적나라하게 보고 평가한다는 게 정말 끔찍했다. 나는 나의 입장이나 처지와는 무관한 학생의 일방적 평가로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강사로 돌아갈 수도 없어서 참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직원으로 들어갔던 시기는 강사 계약 3년 보장 정책이 시행된 때였다.

 

  그나마 학생은 괜찮았다. 학생은 직원을 어려워할 줄 알고 고마워할 줄도 안다. 그런데 교수는 정말 안하무인이다. 나도 안다. 좋은 사람 많다는 거. 하지만 내가 본 꽤 많은 사람은 터무니없이 황당했다. 비웃음, 고집, 갑질, 쉽게 터지는 분노, 그들은 왕이고 황제였다. 나는 직원들이 왜 그토록 상냥해졌는지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도게자 역할도 곧잘 맡았다. 어떤 교수는 말로 난도질해놓고 자기가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은 세게 말하지 않았는데 직원이 상처받는 것 같아서 어렵다고 했다. 이게 대학의 권력 구조인가.

 

  말로 독을 내뿜는 사람들, 직장 생활하기 전에는 피하면 그만이었다. 그들에게도 그들의 인생이 있으니까, 알아서 살다 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피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나는 정신과로 간다. 상담받고 약을 먹는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고 피부가 가렵고 화장실을 자주 간다. 모두 없던 증상이다. 강사 시절, 그들의 안정된 자리가 정말 부러웠다. 지금은 그들의 평가 받지 않는 자리가 더 부럽다. 평가받아도 끄떡없는 그 자리가, 뻔뻔해도 먹고 사는데 문제없는 그 위치가 부럽다.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반성하지 않아도 되는 그 위치는 도대체 얼마나 편한 위치일까. 그들이 구성원에게 익명으로 평가받으면 좋겠다. 그 평가가 그들의 인사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외부의 시선 없는 삶의 한계란 자명한 법이다. 수 없는 평가와 이로 인한 영향이 직원과 강사와 학생에게만 유독 크게 존재한다는 건 좀 이상하다. 내가 교수가 아니어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느 교수의 이야기란이 필요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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