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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n번방 사태’의 본질과 법적 대응의 방향을 묻다 본문

1면/시론 인터뷰

‘n번방 사태’의 본질과 법적 대응의 방향을 묻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0. 5. 13. 11:30

 

 

  지난 201911한겨레보도 이후 이른바 ‘N번방을 포함한 텔레그램 내 성착취 문제가 수면 위에 올랐다.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이 성립되어 35일 국회 청원 1호 법안인 ‘N번방 방지법(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통과된 법안에는 딥페이크 기술(deepfake, 사진 및 영상 합성 기술)을 이용한 영상의 제작·유통의 처벌 규정만 신설되고 기존의 성폭력 특례법 개정 발의안 4개와 병합되어 처리되었다. 정작 청원인이 요구한 내용인 경찰의 국제공조수사 수사기관 내 디지털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및 2차 가해 방지를 포함한 대응매뉴얼 신설 엄격한 양형기준 설정 등이 전혀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해당 청원을 심사한 국회의원 및 고위 관료들은 ‘N번방 사건딥페이크 영상개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법안을 논의해 졸속 처리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이번 호 본지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현행법의 미비사항을 분석하고, ‘N번방 방지법이 담지 못한 디지털 기반 성착취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한 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의 목적과 활동

  우선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의 출범 목적은 무엇이고 현재 어떤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개략적으로 묻고 싶다.

 

  “저희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18년 말부터 이미 텔레그램 등 디지털 관련 성착취 문제로 인해 여러 피해자들의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고, 심각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서 올해 초에 공대위를 구성해야하지 않느냐는 논의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공통된 문제의식을 통해 2월 달에 출범을 하게 된 것이죠. 공대위의 기본적인 목적은 디지털 성폭력의 위험성과 본질에 대해 알리고, 여러 방면으로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것에 있습니다.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이다 보니 피해자들이 쉽사리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대처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여느 때보다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또한 법망을 빠져나가는 인터넷 성폭력의 원리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를 예방처벌할 수 있는 입법을 제안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목적 하에 현재는 언론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과 새로운 형태의 성폭력을 사람들이 최대한 빨리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끔 개별적인 인터뷰부터 기자회견까지 폭넓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피해자들을 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변호인단을 꾸리고 구성하는 것도 저희 같은 지원 기관들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현재 이러한 법률지원단이 23명 정도 구성이 됐고, 피해자분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로 이루어진 입법 TF팀이 구성이 됐습니다. 이 공간에서 법망의 빈틈이라든가 법적 논점들에 대해서 함께 논의하고자 합니다.”

 

* 디지털 성범죄의 특수성과 법적 대처

  N번방 사건을 통해 가시화되었듯 딥페이크 기술을 비롯한 영상 촬영 및 제작, 피해자 협박, 영상 공유 및 가상화폐 거래까지 현행법의 법망을 벗어나는 디지털 기반 성범죄가 몸집을 불리고 있다. 디지털 매체가 어떤 방식으로 성범죄 양산에 기여하는지, 또 현행법이 포괄하기 어려운 디지털 성범죄의 유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를 법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디지털 성폭력 문제는 사실 예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소라넷사건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디지털 매체가 진화하면서 범죄 양상도 함께 복잡해지고 있어 문제입니다. 이해를 위해 소라넷‘N번방을 비교해서 설명을 드리면, 전자는 한 명의 가해자가 피해자의 영상이나 사진을 올리면 댓글을 통해서 재차 가해가 이루어지는 양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자는 채팅방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시간차가 없는 집단착취가 가능해진 것이죠. 유포 등으로 피해자를 실시간으로 협박하면서, 예전 같았으면 그늘에 숨어있었을 수많은 가해자들이 집단을 이뤄서 하나의 피해자를 끊임없이 착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되고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이번 ‘N번방가담자들의 행태에 모두가 놀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협박으로 찍은 영상으로 또 협박을 해서 착취를 계속하고, 실제로 사람을 모아 성폭행을 하기도 했으며, 몸에 스스로 흉터를 새기게 하기도 했죠. 이런 천인공노할 반인류적 행위가 가능했던 데에는 디지털 매체의 속성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디지털 성범죄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 유형이 변화무쌍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매체의 진화에 따라 범죄의 수법과 방식이 끝없이 다양해지고 정교해지죠. 그러면서도 피해는 반영구적입니다. 영상이나 사진이 한 번이라도 유포가 되어버리면, 거기에 가해자의 이름은 사라지고 끝없이 인터넷 상을 떠돌며 피해를 재생산합니다. 그렇기에 그 변화무쌍함을 최대한 포괄할 수 있는 법과 확실한 처벌을 통해 사전에 이를 막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입법 양상은 법이 범죄를 쫓아가고 있는 형국이에요. 예를 들면 이번의 ‘N번방 방지법만 봐도 법안의 신설을 통해 딥페이크유형의 범죄는 처벌할 수 있게 됐지만, 다른 수많은 합성 기술에 의한 디지털 성범죄는 아직도 완벽하게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계속 이러한 태도가 계속된다면 점점 진화할 디지털 성범죄에 대처하기가 너무나 힘들어지겠죠.”

 

* 참여 정도에 따른 처벌의 문제

  N번방 회원의 참여 정도에 따른 처벌 수위로 논란이 일고 있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의 호기심발언이 불러일으킨 파장은 이 논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N번방 회원의 성착취 가담 정도와 참여 형태를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할까.

 

  “참여 정도에 따른 처벌 수위는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N번방사건에 관계된 가해자가 굉장히 많고, 다수가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상 참여의 정도를 구분하는 것이 아주 복잡하기 때문인데요. 우선 참여자들을 최대한 간단하게 나누자면 그 방들을 운영한 운영자들, 돈을 받고 일을 처리하던 직원들, 여러 형태로 가해에 참여한 회원들, 강요나 협박은 하지 않았지만 영상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 정도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다 방마다 존재하는 차이도 고려해야겠죠. 실시간 착취와 실제 성폭행까지도 발생했던 방, 유포 전용 방, 도피용 방 등 방의 종류도 굉장히 많습니다. 거기에 텔레그램이 아닌 다른 경로로 여기서 제작된 영상을 소유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가해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면, 처벌의 정도에도 차이가 있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운영자부터 단순 소지자까지 가담자들을 전부 처벌해야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가담자들은 이 영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었고 수요로든 공급으로든 끊임없이 그 재생산에 기여하는, 이른바 강간 문화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영상 속 피해자들은 이들에게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이고 사물입니다. 이 가해자들을 여기서 처벌하지 않으면 또 다른 디지털 매체를 통해 피해를 재생산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박사와 같은 핵심 운영자들에게 행해졌던 법적 처벌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겠죠.”

 

* 양형기준과 함께 인식의 변화도 이뤄져야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양형 기준이 없어 솜방망이처벌을 내리는 판례가 비일비재하다. 청원에서 제기하듯 N번방 회원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위해 엄격한 양형 기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양형기준이 적절하다고 보는지, 또 양형위원회가 제안한 감경 사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성폭력특별법 14조를 보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는데, 애초에 법정 형량이 낮은 범죄는 아닙니다. 다만 실제로 처벌을 할 때 형량이 급격히 낮아집니다. 그래서 이 차이가 너무 벌어지지 않도록 양형 기준을 설정하자는 논의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요.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솜방망이 처벌은 오로지 양형 기준이 부재해서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제대로 판단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이는 수사구형판결, 즉 처벌을 담당하는 일선에 계신 분들이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족하기 때문인데요. 특히 디지털 성폭력의 경우, 물리적인 폭력이 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통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인식이죠. 피해자의 고통은 그렇게 도식적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실제로 저희 쪽에 상담을 요청하는 텔레그램 피해자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유포된 사진이나 영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하루 종일 인터넷을 서칭한다고 하세요. 이렇게 한 사람의 삶을 망친 엄연한 피해와 고통이 있는데 그것을 중요한 성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해선 안 되겠죠. 지금과 같은 인식이면 엄격한 양형기준으로만 해결하려하는 것은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양형 기준은 법정형과 달리 구속력이 없어서 더욱 보완이 필요하고요.

  양형위원회가 제시한 감경 사유 역시 비슷하게 인식의 부재에서 나온 것인데요. 초범이라든가, 피해자의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든가, 영상을 지우려고 노력했다든가 등을 감형 사유로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파일이 남는 순간 유포의 가능성과 피해는 반영구적으로 박제됩니다. 딱히 논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 피해자 중심의 사고

  성착취물을 공공연하게 유통하며 수익구조를 형성한 소라넷과 웹하드, 다크웹은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고, 정준영 단톡방 사건 및 일부 남대생들의 단톡방에서 유포된 음란물과 지인 영상 적발 등 일련의 사건을 볼 때 플랫폼만 바뀔 뿐 성착취 문화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이번 사태를 N번방 회원만의 문제로 한정하는 대신 성착취 문화를 근본적으로 뒤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늘 받는 질문이지만 정답도 없고 지름길도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저 하나만 강조하고 싶은 태도가 있다면, 언제나 피해자의 마음을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가해자 처벌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논의가 오가고 있지만, 이렇게 되면 ‘N번방가해자들만 나쁜 놈이 되고 성착취 문화는 균열 없이 누군가에 의해 다시 이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어떻게 그들을 지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그로 인해 자신까지도 돌아보게 되는 태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출처-여성신문
한국성폭력상담소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 감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