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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또 다른 이가 나타나 카메라를 켜고보편적 극단, 김소연 연극평론가 객석 한 가운데 작은 카메라가 희미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를 향해 놓여 있다. 카메라 맞은 편 텅빈 무대 위에는 빈 의자가 하나가 놓여 있다. 연극은 이 텅빈 무대에 한 남자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무대 한편의 모니터에는 임운상이라는 남자의 이름과 현재의 나이, 사건 발생 연도와 당시의 나이, 그리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장소와 때가 적혀 있는데 날짜를 쓰지 않고 “2002년 월드컵 한국 vs 미국”으로 적혀 있다. (3막으로 전개되는 연극의 1막은 네 명의 인터뷰로 진행되는데 모두 한일월드컵 경기 일정으로 날짜를 대신한다.) 의자에 앉은 남자는 보청기를 끼고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의 말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높지도 낮지도 않다. 쏟아내..

타웅 아이와의 만남으로부터 백 년 심혜린 과학칼럼니스트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면,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중 어느 쪽이 원숭이요?” 1860년 6월 30일, 새뮤얼 월버포스(Samuel Wilberforce) 주교는 이렇게 외쳤다. 옥스퍼드 대학 자연사박물관에서 진행된 영국과학진흥협회 총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 이후 진화론은 당대의 가장 첨예한 논쟁거리였다. 이날 있었던 총회에서도 『종의 기원』을 둘러싼 진화론 찬반 토론회가 열렸다. 위 질문은 진화론 반대론자이자 유명한 성공회 주교였던 월버포스가 진화론에 대한 반대 의견을 펼친 후 진화론 옹호자들에게 던진 질문으로 유명하다. 이에 대한 진화론 찬성론자인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의 대꾸 역시 ..
끝까지 웃으면서 함께 투쟁 이수진 기자 17km를 걸었다. 경상북도 구미에서 여의도 국회까지 총 350km 중 17km다. 이 350km는 고용승계를 외치며 고공에서 400일이 넘도록 투쟁하고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도보 행진이다. 햇볕은 따듯했지만, 바람은 차가워서 걷고 있으면 얼굴이 얼어붙는 날씨였다. 이곳에선 나를 ‘말벌 동지’라고 부른다. 아마 말벌처럼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빠르게 달려온다는 뜻일 것이다. 나에게 스스럼없이 “말벌 동지!”하며 말을 건네는 그들을 보며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이미 17일간 매일매일 1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온 사람들이었고,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연대하기 위해 교통비와 식비로 쓴다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
길을 묻는 학문, 학문을 묻는 길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윤이정 한국에 온 지 반년이 지났다. 특별한 목표 없이, 그저 호기심과 도전 정신만으로 시작한 타향살이였다. 단순히 공부를 위해 들어온 대학원이었고, 여태껏 그래왔듯이 교실에 앉아 배우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냐는 생각에, 별다른 고민 없이 이곳에 왔다. 그러나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그러한 자신감은 완전히 무너졌고, 마주한 현실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나는 스스로 학생이라 여겼으나, 모두가 나를 연구자로 대했다. 공부를 한다고 생각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노동이라 불렀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한국에 왔음에도 내가 전공한 한국문학은 이곳에서도 비주류 학문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학원에는 이미 각..
“나는 이 절벽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운 도시와 빛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한 투쟁과 그들의 승리와 패배 속에서, 나는 그들이 결국 평화로 나아가는 모습을 본다. 나는 그들의 삶을 내가 바친 삶으로 보며, 그들의 후손들에게까지, 여러 세대가 지나도 그들 마음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을 본다.”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中
탄핵 이후의 사회를 꿈꾸기 개강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여행을 다녀왔다. 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걸었던 추억, 그리고 40여 년 전 시민들의 피로 물들었던 역사가 깃든 그 길 위에는 헌법재판관들의 이름을 외치며 구속을 촉구하는 밴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바리케이드를 가운데 두고 탄핵 찬반시위가 어지럽게 대치했다. 광화문에서도 탄핵 찬반시위가 이어져 온 지도 한참인데, 왜 유독 금남로의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민주화의 ‘성지’와도 같은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목도해서? 그보다는 탄핵 반대를 목놓아 외치는 이들이 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진심’을 담은 눈빛과, 이들을 그저 우매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