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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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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쟁점 기고

그 많은 배는 누가 만들었을까?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9. 21. 00:22

전국금속노동조합 언론부장 장석원

 

조선소의 일거리는 일반인에게는 낯선 영역이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처럼 일상에서 접하는 물건을 만드는 노동과정은 자세히는 아니어도 미루어 짐작하거나, 설명을 들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거대한 배를 만드는 노동과정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면 매우 낯선 영역이다. 그리고 사실, 조선소와 직간접으로 연관된 사람이 아니면 알 필요도 없다. 그러나 올해 7월을 거치며 이 낯선 영역이 광장으로 걸어 나왔다. 원유나 가스를 나르는 탱커선, 화물을 나르는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처럼 한국 조선산업을 먹여 살리는 거대한 쇳덩어리들은 인간의 노동으로 만든다. 스마트 공장이니 하는 자동화 담론이 대세지만 조선소 노동은 로봇으로 대체가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다. 양질의 노동력과 숙련기술이 조선산업의 경쟁력인 이유이고 한국 조선산업이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남해안의 거대 조선소에서 만드는 배들은 사실상 하청노동자가 만든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조선산업 호황기인 2013년 한국 9대 조선소의 원청 소속 생산직은 35,712명이고 하청에 속한 생산직은 105,041명이다. 3배의 차이가 난다. 단순히 말하면 배 한 척을 만드는데 정규직 한 명과 비정규직 3명이 필요한 것이다. (박찬임 2015) 상위 3개사로 좁혀도 전체 생산인력 중 하청의 비율은 70.6%이다. 10명의 노동자 중 3명은 정규직, 7명은 비정규직인 것이다. (이정희 2016) 이번 파업의 무대가 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현재 원청과 하청 생산직의 비는 2:1이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대형 조선소들은 목적을 가지고 하청의 비중을 꾸준히 늘렸다. 가장 큰 이유는 저임금 노동이 필요해서다. 앞서 보았듯 대형선은 인력의 투입 없이 만들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조선산업은 일본, 유럽과의 경쟁과정에서 임금의 희생, 즉 인건비를 줄여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성장했다. 이런 전략은 1987년 이후 노동조합의 등장과 임금의 현실화 과정에서 벽을 만났다. 자본은 하청노동을 늘려 인건비를 줄이는 길을 택했다.

하청노동을 통해 고용의 유연성도 확보했다. 고용의 경직성이 높은 정규직 대신 하청노동자는 소속 업체의 통폐합이나 폐업을 통해 원청이 규모를 조정할 수 있다. 원청 노동자의 수를 줄여 노동조합의 힘을 빼겠다는 의도도 있다. 원청이 파업을 해도 생산은 하청을 통해 계속 이루어지니 파업의 위력은 그만큼 줄어든다. 가뜩이나 위험한 조선 노동인데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노동자의 산재율은 원청보다 높다. 이러다 보니 배를 만드는 것은 하청노동자인데 이들의 임금 수준은 원청 대비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고정됐다. 자동차 산업의 사내하청 노동의 경우 원청 완성차기업의 임금 수준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과 달리 조선 하청은 울산, 목포, 거제가 거의 하나의 노동시장처럼 묶여 있다. 어느 한 지역·기업의 하청 임금이 오르면 다른 지역·기업의 숙련 인력이 이동할 테니 이를 막으려 생긴 암묵적 담합인 셈이다. 원청의 노동조합을 옥죄기 위해 하청노동자를 늘렸기 때문에 이들이 조직되는 것은 막기 위해 원청은 온 힘을 기울였다. 노동조합을 기웃거린 노동자는 블랙리스트에 올려 재취업을 막는다. 2017년 이후 금속노조는 조선하청노동자 조직을 위해 울산지역을 담당하는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현재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거제·통영·고성을 맡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영암·목포 일대를 조직하는 전남서남지역지회(현재 전남조선하청지회)를 연이어 세웠다. 그러나 다단계 하도급의 덫에 갇힌 하청노동자는 쉽사리 조직되지 않았다. 어렵게 노조에 가입해도 신분을 드러내지 못하는 비밀조합원으로 남았다. 그나마도 들어오고 나감이 심했다. 사업장을 움직이는 힘은 모이지 못했고, 원청과 직접 교섭하지 못하는 노동법의 맹점으로 노조의 힘은 한계가 뚜렷했다.

 

이 벽을 최초로 뚫은 것이 대우조선의 하청노동자였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하청노동자 조직화의 한계를 넘기 위해 특정 공정의 노동자를 집중 조직했다. 처음에는 파워공(도장할 곳을 샌딩머신으로 미리 연마하는 공정), 다음에는 도장공을 집중 조직했다. 그리고 파업을 통해 기본급을 올렸다. 노동조합으로 모이면 하청노동자도 교섭력과 투쟁력을 확보하고 원청과 하청 자본을 상대로 성과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이런 과정에서 배운 교훈과 시행착오를 종합해 올해 조합원을 대폭 늘리고 조선산업 불황기에 사라진 상여금과 인상 없이 고정된 임금의 일부를 물가인상분이라도 고려해 일정 수준 정상화한다는 목표를 세워 임금협상에 돌입했다. 교섭은 평행선은 그었고 결국 파업에 들어갔다. 이 파업이 대우조선해양이라는 세계 굴지의 조선소를 자그마치 51일 동안이나 세울 줄은 회사도, 노동자도 모두 상상하지 못했다. 51일 파업의 성과라는 측면에서 보면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애초에 목표로 잡은 임금의 현실화와 노동조합 활동의 보장은 접어야 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과를 대체하는 눈부신 성과를 얻었다. 지금껏 아무도 관심 없고 알려고도 안 했던 저임금·중대재해·고용불안에 갇힌 조선하청 노동자의 삶을 여론의 한 가운데로 끄집어낸 것이다. 글자 그대로 바닷물을 등지고 배수의 진을 친 유최안 동지의 눈빛이 시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 달 넘긴 파업노동자의 생계라도 챙겨주자는 시민의 정성이 1인당 180만 원씩 지급하는 수준으로 모였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로 위장취업(?)한 경험을 현대조선잔혹사라는 책으로 냈다. 기자조차도 정상적인 취재방법으로 이해하고 정리할 수 없는 가려진 세계였던 셈이다. 이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가 쏘아 올린 공은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받아들었다. 인력이 부족하다면서도 저임금 생산구조를 깰 수 없어 아무 것도 못하는 원청, 생산을 떠맡고 있으나 2등 노동자 취급을 받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지 우리 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노동조합은 또다시 확인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분절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손배·가압류 같은 살인적인 보복행위를 어떻게 막을지 고민에 빠졌다. 눈앞의 성과는 없더라도 51일 파업 이전과 이후의 한국사회는 결코 똑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