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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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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사설

탄핵 이후의 사회를 꿈꾸기

Jen25 2025. 3. 5. 00:16

탄핵 이후의 사회를 꿈꾸기

 

  개강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여행을 다녀왔다. 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걸었던 추억, 그리고 40여 년 전 시민들의 피로 물들었던 역사가 깃든 그 길 위에는 헌법재판관들의 이름을 외치며 구속을 촉구하는 밴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바리케이드를 가운데 두고 탄핵 찬반시위가 어지럽게 대치했다. 광화문에서도 탄핵 찬반시위가 이어져 온 지도 한참인데, 왜 유독 금남로의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민주화의 ‘성지’와도 같은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목도해서? 그보다는 탄핵 반대를 목놓아 외치는 이들이 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진심’을 담은 눈빛과, 이들을 그저 우매한 사람들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시민들의 모습에서 탄핵 이후의 사회를 직접 마주하는 기분이 들어서였을 테다.

  요즘 언론에서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분열’일 테다. 대학가에서도 ‘반국가세력의 척결’을 외치며 탄핵 반대 기자회견과 시위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 단순히 외부인이 벌인 소동, 소수의 과격한 극우파가 벌인 행보로 치부하기에는 어려운 현실이다. 이를 증언이라도 듯, 당장 오늘 아침 출근길에만 해도 마주친 여당의 수많은 “이재명은 안됩니다”, “부정선거 재수사·날치기 탄핵 반대” 현수막이 연이어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화합을 꿈꿀 수 있을까. 탄핵 판결이 난다고 과연 긴 겨울이 끝나 봄이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치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화합의 실상은 화해를 유도하고 더욱 포괄적인 분위기로 ‘치유’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유권자층을 ‘응집’시킬 수 있는 방안을 꾀하고 있을 뿐이다. 광장에서의 뜨거운 열기가 탄핵 판결 이후에 오랜 상처로 남게 될까 걱정되는 현실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한 정치인, 한 정당의 미래를 둘러싼 정치적인 대립이 아니라는 점이다. 곳곳에서는 그간 이어져 왔던 정치체제의 문제와 개혁 방향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고, 광장을 수개월째 채우고 있는 것은 탄핵 문제를 넘어 청년들이, 여성들이, 노동자들이, 장애를 지닌 이들이 모두 안전하고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각자가 갈망하는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이다. 이렇듯, 탄핵을 둘러싼 논란은 지역, 세대, 젠더 등 사회 곳곳에 스며든 균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진정한 화합을 이루어내는 방안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동시에 다른 결론을 향해 가는 현재, 우리는 그 답을 ‘탄핵’이 아닌 그 너머의 현실과 미래에서 찾아야 한다.

  물론,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쉽게 답을 내려서도 안 되는 문제이다. 우리 인류가 수 세기에 걸쳐서 시도해오고 있는 것이지만, 좀처럼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화합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다만 이 매서운 겨울이 지나고 우리에게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열된 사회가 아니라 진정한 화합을 향해 나아가는 동력이기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