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시대의어둠을넘어
- BK21 #4차BK21
- 고려대학교언론학과 #언론학박사논문 #언론인의정체성변화
- 죽음을넘어
- 518광주민주화운동 #임을위한행진곡
- 수료연구생제도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n번방 #코로나19
-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 코로나19 #
- 보건의료
- 임계장 #노동법 #갑질
- 심아진 #도깨비 #미니픽션 #유지안
- 선우은실
- 항구의사랑
- 국가란 무엇인가 #광주518 #세월호 #코로나19
- 권여선 #선우은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김승옥문학상수상작품집
- 공공보건의료 #코로나19
- 쿰벵
- 한상원
- 김민조 #기록의 기술 #세월호 #0set Project
- 산업재해 #코로나시국
- 애도의애도를위하여 #진태원
-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염동규 #자본주의
-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 쿰벵 #총선
-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로나 콜른타이 #위대한 사랑 #콜른타이의 위대한 사랑
- 5.18 #광주항쟁 #기억 #역사연구
- 미니픽션 #한 사람 #심아진 #유지안
- n번방
- Today
- Total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종착지 없는 길을 점근선처럼 나아가기 본문
종착지 없는 길을 점근선처럼 나아가기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남명현
나는 책을 다루는 회사의 영업부에서 몇 년간 근무하다 작년 가을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교라는 공간은 회사와는 사뭇 달랐는데, 신입생 때 의아했던 점 중 하나가 ‘정해진 것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회사에서는 연간 매출 목표가 명확했고 YOY 등의 수치를 통해 수시로 이슈를 확인하여 업무를 파악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선 석사 신입생에게 는 당장 무얼 해야 할지 알려주는 지표가 없었다. 선배들은 잘하고 있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었으나 나는 스스로의 ‘좌표’를 확인할 수 없어 하루하루 불안했다. 이건 석사 입학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의아했던 점은 국어국문학과생에게도 외국어 학습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비교문학이나 영문학 같은 분야에서나 외국어가 필요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많은 국문학 연구자가 일본어나 독일어, 러시아어 같은 제2외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선배들을 따라 외국어를 학습하던 중, 문득 소설이나 논문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이 외국어 공부의 성격이 제법 ‘대학원 과정’ 그 자체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언어를 배울 것인지 택하여 프리토킹‧ 원서 읽기 등 대략의 목표를 설정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을 익히는 것은, 진학 학과를 정한 후 스스로 관심사를 찾고 부지런히 텍스트를 공부하는 대학원 과정과 분명 닮아있다. ‘끝’이 없는 ‘막연한’ 분야라는 공통점까지도.
이것저것 의아하기만 했던 대학원처럼, 외국어 공부도 처음부터 즐길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초·중학교를 다닐 때는 ‘뭐든 노력하면 된다’는 정신이 팽배해 있었고 그런 만큼 노력에 대한 격언도 많았다. 지금은 운이나 환경 등 다른 요인도 많이 강조되는 듯하지만, 당시에는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건 노력이 부족한 탓으로 일축되었다. 그러한 ‘노력의 신화’에 균열이 생긴 첫 번째 영역이 바로 외국어였다. 내가 다닌 학교에는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온 학생이 많았고, 그 친구들은 특별히 영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영어 성적이 늘 우수했다. 그들과의 격차는 내가 단어장을 달달 외우는 기계적인 ‘노력’으로 메울 수 없을 이색적인 층위에 있었다. 그 친구들의 유려한 영어 발음을 듣는 한편 언어의 무한함을 체감하며 내가 기울이는 노력이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배워도 끝이 없다는 건 흥미로운 동시에 슬프다. 몇 달 집중적으로 파고든다고 실력이 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몇 주만 소홀히 해도 금방 까먹는 것. 외국어는 이런 특성 때문에 나를 더욱 속상하게 했다. 그러나 입시를 마친 후에는 외국어에 ‘한계’가 없다는 점이 조금씩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원어민이라면 인지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울 부분을 외국어 학습자로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신선했다. 외국인 친구들도 동기부여가 되었다.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외국어로서 공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그들과 소통하며 언어뿐만 아니라 특정 표현에 담긴 사고방식이나 문화까지 배워가는 것도 흥미로웠다. 새로운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다소 거창한 말이 조금이나마 실감이 되면서 비로소 외국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짧게 접해 본 언어는 여럿 있지만 꾸준히 배우려고 생각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는 일본어, 영어, 스페인어 정도이다. 일본어와 영어는 5년 이상 배우기는 했으나 워낙 고수가 많아 나의 실력을 가늠하고 밝히기가 무척 어렵다. 묘하게도 자격증 등급이 오를수록 자신감은 떨어지는 듯하다. 한편 회화에서는 외국인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도가 되었음에 만족하고, 읽기 차원에서는 ‘읽히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 ‘눈에 들어오면’ 기뻐하는 자세로 스스로 고무하고 있다. 스페인어는 환상 문학에 관심이 생겨 배우기 시작했는데 ‘가성비’가 무척 좋은 언어라고 생각한다. 발음, 문법이 다른 언어에 비해 쉬운 데다 사용되는 국가도 많아 혹시 새로운 언어를 접하고 싶은 학우가 있다면 추천하고 싶다. 나의 장기 목표는 후안 룰포의 『페드로 파라모』(Pedro Páramo)를 원서로 읽는 것인데 ‘어느 세월’에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최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22개 국어를 구사하는 로스 킹(Ross King) 교수님이 출연하여 외국어는 ‘미친 듯이, 무자비하게’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외국어도, 그리고 앞으로 내가 ‘외국어처럼’ 공부해 갈 인문학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두 분야 모두 수학의 점근선 개념처럼, ‘완벽’해질 수 없지만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뻗어가는 형상일 것이다. 점근선을 향해 나아가는 그래프 상의 어딘가에 있을 나는, 때로 더디게 나아가고 역행하기도 하며 자주 길을 잃고 꾸준히 좌표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느낄 것이다. 또 그것 때문에 자주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막연함에 자신감을 잃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끝없는 우주를 유영하려는 탐험가와 같은 마음으로, 외국어도 그리고 인문학 공부도 한 발짝씩 정진하고 싶다.
'7면 > 원우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을 묻는 학문, 학문을 묻는 길 (1) | 2025.03.05 |
---|---|
춤과 추함 (3) | 2024.12.27 |
무해한 손 (4) | 2024.11.08 |
식민지를 상상하는 법 (12) | 2024.10.16 |
무엇을 바라 (2) | 2024.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