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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길을 묻는 학문, 학문을 묻는 길 본문
길을 묻는 학문, 학문을 묻는 길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윤이정
한국에 온 지 반년이 지났다. 특별한 목표 없이, 그저 호기심과 도전 정신만으로 시작한 타향살이였다. 단순히 공부를 위해 들어온 대학원이었고, 여태껏 그래왔듯이 교실에 앉아 배우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냐는 생각에, 별다른 고민 없이 이곳에 왔다. 그러나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그러한 자신감은 완전히 무너졌고, 마주한 현실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나는 스스로 학생이라 여겼으나, 모두가 나를 연구자로 대했다. 공부를 한다고 생각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노동이라 불렀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한국에 왔음에도 내가 전공한 한국문학은 이곳에서도 비주류 학문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학원에는 이미 각자의 진로를 설정하고 묵묵히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사이에서 불투명한 목표를 가진 나는 점점 커지는 불안과 스트레스에 짓눌렸다. 그때부터 나는 학문이 더 이상 단순히 지식의 습득이나 창조적인 사고의 영역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구이자,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노력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학문은 점차 내면적인 욕망이나 갈망을 충족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현실과의 끊임없는 타협과 싸움이 되면서, 대학원 생활은 단순히 학문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변질되어 갔다.
나는 끊임없이 길을 물었다. 졸업 후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연구자로 남을 수 있을까? 비주류 학문을 선택한 나에게 남은 길은 얼마나 될까? 한국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고민도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뿐이었다. 당장 눈앞의 과제와 연구에 치이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다 보니, 어느새 그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익숙함 속에서 뜻밖의 여유가 찾아왔다. 여유는 나에게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주었고, 불안감 대신 학문적 열정과 몰입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는 비로소 이 길은 생존만을 위한 고통과 불안의 연대가 아닌 나 자신을 향한 중요한 여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걷는 길은 경제적 안정과는 거리가 멀어 여전히 불안을 내재하고 있으나, 역설적으로 그러한 불안이 도리어 학문에 매달리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주류와 비주류, 그 경계는 무엇일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주되는 것이 학문이며, 한때 소외되었던 학문이 재발견되기도 하고, 주류로 인정받던 분야가 점차 변두리로 밀려나기도 한다. 현재의 사회구조 속에서 인문학은 대부분의 곳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며, 문학 연구 역시 경제적 가치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한다. 이러한 현실을 나는 자주 실감하곤 한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요즘 뭐 하고 지내?”라고 물을 때 단순명료한 대답을 건네지 못하고 장황한 수식어를 덧붙이며 설명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면, 그 씁쓸함이 더욱 선명해진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사회와 연결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이러한 점에서 종종 회의감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학의 본질적인 가치까지 흔들릴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내게 문학은 인간의 경험을 기록하고 사유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다리와도 같은 존재이기에, 그것이 경제적 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이 필수적이며, 이를 확보하지 못한 연구자는 끝내 학문의 길을 이어가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학문이 생존과 무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학문이 길을 제시할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그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가? 나는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전통적인 연구자로서의 길은 학계에 남아 연구를 지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책상 앞에 앉아 순수문학의 탐구에만 몰두하는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담론과 가치를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능동적으로 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방식을 과감히 내려놓고 오직 실용성에만 초점을 맞추어 학문의 지평을 확장하거나, 혹은 전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의 선택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막 이 길에 입문한 나로서는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나는 종종 두려움과 갈등에 휘둘리곤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길을 가든 학문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문은 단순한 생존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나 자신을 발견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흔들리고 불안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도 방향을 찾는 것이 학문의 본질이 아닐까. 그 불확실성이 오히려 내 안의 질문을 깊이 있게 만들어 가며, 때로는 이 길이 내가 나아가야 할 길임을 확신하게 한다. 학문의 길과 나의 길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길을 묻고 고민하는 그 과정 자체가 학문이며, 결국 나의 삶이 될 것이다. 결국, 내가 걸어가는 길은 단순히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나를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라도, 걸어가는 한 길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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