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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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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원우칼럼

무엇을 바라

Jen25 2024. 9. 11. 15:29

 

무엇을 바라

 

연세대학교 박사과정 정윤성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확실히 이야기하는지?’ 지난 학기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한국근현대문학사 강의에 대한 한 수강생의 평가를 접했다. 반문의 형태로 작성된 몇 글자는 고백하건대 나에겐 꽤 공격적으로 다가왔다. 강의 경험이 많지 않은 나는 꽤나 당혹스러웠다. 학기는 이미 끝났고 익명의 평가를 향해 내가 대응할 방도는 없었지만, 강의 내용을 강의자의 태도나 분위기와 엮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를 곱씹어 보게 됐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는 어떤 점에서 당혹스러움을 느낄 필요가 없으며, 기뻐할 만큼 좋은 평가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왜냐하면 약 3시간 동안 지정된 교과서의 내용을 넘어 전달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은 몇 가지의 단순한 정보로 설명될 수 없고 개인의 의도는 소박할 수 없으며, 현장 강의는 잘 짜인, 그렇기에 이내 굳어질 교과서를 넘어 불가능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불가능함을 힘주어 말하는 나의 모습은 사뭇 어색하다. 나는 많은, 그러나 막연하기 그지없었던 기대를 현실화하기 위해 대학원에 왔기 때문이다. 창의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를 명확한 문장으로 옮기는 능력을 기르고, 무엇보다도 불안정하고 일관적이지 못했던 나 자신, 그리고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을 확실히 이해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다시 말해 나에게 대학원은 정보와 그것이 배치된 방식을 학습하고, 나름의 대안적 방식을 만들어 보는 것과 더불어, 어떤 종류의 인격자가 되기 위한 도야의 장소와도 같았다. 지나온 대학원 생활의 한편에 늘 좋은 사람에 대한 욕심이 있었지만, 그것을 위해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충분히 생각해 보지 못했고 이 고민은 다급한 과제에 밀려났다. 다만 해방 이전, 식민지 시기 사회주의문학(프롤레타리아문학)이 드러내는 재현의 윤리 문제를 종종 떠올리고 곱씹으면서, ‘좋은 사람되기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을 놓지 않으려 했다.

대학원에서 읽고 쓰는 일을 배우겠다고 마음먹고 몇 년이 지날 무렵, 기자, 변호사가 된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등 인접 학문 분야의 연구를 의식적으로 읽기도 했으나, 소위 학계가 아닌 곳에서 글로 자신의 영역을 만드는 이들에게도 관심이 있었다. 그들은 실로 많은 것을 읽고 쓰며, ‘현실속에서 어떤 의미와 성과를 만들고, 무엇보다도 실천하고 있었다. 격렬한 비난과 혐오, 차별이 끓어 넘치는 현실한복판에서 그들은 말과 글로 분투하고 있었다. 존경할 만한 용기와 자존심이라 생각했다. 이들을 보며 나는 연구 노동의 성과가 현실과 보다 가깝게 연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옛날 소설들을 읽고, 이에 대해서 무언가 말하는 것이 이미 한 세기가 지나 판이해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응당 있어야 한다고 믿게 된 것이다. ‘현실을 향한 곁눈질은 좋은 사람되기의 관심만큼이나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지금은 이 두 가지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마련하는 일이야말로 나의 근본적인 임무라고 생각한다. 대학원생으로서의 노동현실과의 접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모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이곳저곳에서 (문학적) 상상력, 연대(連帶)와 같은 표현을 썼는데, 나는 여러 선행연구를 읽으며 역사적 평가, 사회적인 실천을 서술할 때 빈번히 사용되는 이 표현들에 대해 알게 됐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가지 표현에 텍스트를 가두는 텍스트 분석에 다소간의 불만을 품고 있다. ‘현실로 파급될 수 있는 실천적 역량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보다, 단순히 사회(참여)적으로 보이는 기표가 확인된다는 소재주의적인 관찰로써 사회적텍스트를 도리어 사회로부터 유리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국문학이 다루는 텍스트의 범위가 거의 무제한으로 확장되어 연구의 측면에서도 문학(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요구되는 요즈음, 문학 텍스트의 사회적의미를 더욱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소박한 불만에서 나아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게 될 때 비로소 연구의 재미, 그리고 종국에는 의의를 확인하게 될 것이라 지금은 믿고 있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출국까지 24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나는 내일부터 중국에 건너가 100년 전 중국 방방곡곡에서 문장과 실천으로써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이들의 기록을 접하게 될 것이다. 해외에서의 장기 체류 자체가 주는 설렘이 분명 존재하지만, 여러 의미에서 국가적 영웅으로 주목 받아온 그들의 실제 문장과 생애를 나의 문제의식 속에서 재구성해 볼 생각에 벌써 큰 흥분을 느끼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내가 발붙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또 다른 한국의 기록을 충분히 읽고 사유하며 한국 사회에 대한 나의 소박한 이해가 조금이나마 나아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