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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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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원우칼럼

텍스트는 열려 있다

Jen25 2024. 5. 7. 16:29

텍스트는 열려 있다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오현지

 

요즘 들어 소설 읽기가 재미있다. 소설 연구자의 새삼스러운 발언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고백하건대 원래 나에게 소설은 재미가 없었다. 수많은 소설 가운데 재미있는 텍스트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의 소설은 나에게 매력적인 읽을거리가 아니었다. 스마트폰 중독자로서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소설은 유튜브보다 재미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대학원까지 와서 소설 연구라는 전공을 택한 이유를 묻는다면 소설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쓰는 글이 좋아서다. 흠모하는 사람을 쫓아서 무작정 연구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었다. 그런 내가 비로소 소설이 재미있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텍스트에 대한 인내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전히 모든 소설이 재미있을 리는 없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기대에 못 미치는혹은 내 관점에서는 파악이 도저히 되지 않는텍스트로부터 고개를 돌리지 않게 되었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내가 아니더라도 친구가 재미있는 해석을 던져주곤 한다.

재미는 연구자로서의 나에게 늘 중요한 키워드였다. 소설 중에서도 정전만 피해서 연구하는 것처럼 보일 나 같은 사람이 손쉽게 들 수 있는 카드기도 했다. 내가 연구하는 텍스트에는 있고, 정전에는 없는 것이 바로 재미라고 말이다. 본디 고전이란 대다수 사람이 제목은 알더라도 정작 제대로 읽어본 이는 손에 꼽는 것 아니던가? 사실 여성 작가의 소설을 읽고 연구하는 일이 단순히 사명감에서 시작된 일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느정도 진실을 담보한 말이라 생각했다. 정전은 다른 텍스트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서 정전이 된 것이 아니며, 필요에 의해 구성된 것뿐이었다는 대항 논리의 차원에서도 그렇다고 믿었다. 따라서 늘상 농담처럼 말하곤 하는 재미 있어서 연구하죠라는 말에는 꽤나 커다란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생각이 바뀌었다. 정전이나 내가 좋아할 법한 텍스트들이나 모두 같은 재미의 가능성을 가진 게 아닐까. 아무리 많이 연구된 텍스트라 할지라도 새로운 해석에는 늘 열려있다. 게다가, 텍스트들은 늘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 석사 학위 논문을 쓰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연구했던 시대에 발표된 소설 가운데 잘 알려진 작품에서 뒤늦게 그걸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대 안에서 유사한 소재나 문제의식을 다룬 텍스트는 가능한 한 많이 읽고 썼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유사한 시공간을 다룬, 같은 시대에 발표된 두 개의 작품이 있다고 해도 주인공들이 도저히 마주쳐지지 않을 것 같은 경우가 있다. 예전엔 그런 경우에 서로가 참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같은 시간에 놓여있는 한 서로에게 아주 미세한 영향이라도 미칠 수밖에 없듯 소설 또한 그러하다. 같은 공간을 아무리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공간에 남은 서로의 발자취는 마주치듯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전과 정전이 아닌 텍스트건, 연구가 많이 쌓인 텍스트와 아닌 텍스트건 서로 참조하고 참조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그토록 말하던 재미가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결국 재미는 하나의 흥미로운 텍스트에서 오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재미있는 텍스트를 찾아 헤맨 것이지 읽기 자체를 재미있게 했던 게 아니었다. 재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 재미있다는 이유에 매달렸기 때문에 나는 그토록 글을 쓰기 힘들었던 것일까? 페미니스트 비평과 서사 이론을 쫓아가며 타인의 읽기에 감탄만 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들의 글쓰기를 읽으며 그 속의 문장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동료들이 쓴 아름다운 글에 쉽게 주눅이 드는 시간들이었다. 나의 읽기는 재미가 없고 타인의 읽기는 감탄만 나오니 글이 써질 리가 없다. 글은 결국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그 말을 해야한다는 자기 확신에서 나오는 데 말이다. 여전히 글을 쓰는 속도는 느리지만, 요즘은 쓰다 보면 문장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을 느끼곤 한다. 당연한 말을 무슨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과정을 수료한 뒤에나 지면에 쓰고 있자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잠깐이고, 소설을 읽는 재미는 그보다 오래 갈 것이다.

이제 소설 읽기는 좀 재미있어졌는데 세상을 살아가는 건 나날이 재미없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라는 다양한 텍스트에 열려있지 않은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자기 가치를 증명하는 데 빠진 사람들이, 그 가치를 증명하기 힘든 사람들에게도 삶을 허락하라는 요청을 묵살해버리는 장면을 자꾸 목격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에겐 당신에게 요구되었던 가치가 진정 믿을만한 것인지 묻고 싶다. 그렇게 세상을 살면 삶이란 좀 더 재미있는 것이 될까?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할 새도 없이 인내심이 바닥을 쳐버리고야 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재미없는 작품에서 고개를 돌렸듯 사람에게서 고개를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냉소는 나의 몫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내가 인간을 바라보며 텍스트에 대한 인내심을 키웠듯, 이제는 텍스트를 읽으며 인내심을 키울 차례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