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4년의 필름 영화 감상과 영화관의 전망 본문

7면/원우칼럼

2024년의 필름 영화 감상과 영화관의 전망

Jen25 2024. 6. 14. 15:20

2024년의 필름 영화 감상과 영화관의 전망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김민준

 

최근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이하 영자원)에 다녀왔다. 영자원은 514일부터 열흘간 <1990s 시네마테크의 필름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90년대 시네필이 봤던 필름을 다시 상영한다는 취지다. 영자원의 프로그램 설명에 따르자면, 흐릿하게 복제된 비디오로 영화를 감상하던 90년대 시네필들에게는 극장에 모여 선명한 필름을 관람한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경험을 2024년에 새로운 감각으로 느껴보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시네마천국>과 같은 영화에서나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던 상영방식을 체험할 일이 또 언제 있겠나 싶은 마음에 표를 예매했다. 가장 가까운 시간에 상영하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아키 카우리스마키, 1989, 한국 개봉 1996)를 골랐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는 핀란드 툰드라 지역의 밴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는 성공을 위해 미국으로 가지만, 미국의 대중음악은 그들이 해 오던 장르와 너무도 다르다. ‘로큰롤이라는 장르는 들어본 적도 없었던 이 밴드는 결국 다른 성공을 향해 멕시코로 향한다. 미국에서의 실패와 멕시코로 향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우여곡절이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의 핵심이다. 작품 전반에 미국 사회에 대한 풍자와 컬트적인 코미디 요소가 깔려있어 취향에만 맞는다면 아주 좋아할 작품이다.

굉장히 즐겁게 본 영화이지만, 이 글에서는 영화의 내용보다는 체험으로서의 필름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영화가 시작하자 가스 불이 켜지는 듯한 타다다- 소리가 극장에 퍼졌다. 필름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조그마한 소리였지만 워낙 조용한 공간이라 귀에 꽂혔다. 디지털의 세계에서 아날로그의 세계로 진입하는 새로운 감각이 느껴졌다. 첫 대사가 나오자, 스크린 우측에 세로로 된 자막이 띄워졌다. 청각에 이어 시각으로도 90년대의 체험이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워낙 코믹한 작품이라 중간중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90년대의 관객도 이랬겠지, 어느 시대나 사람은 똑같구나, 라는 마음으로 즐기며 관람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극장의 전등이 켜졌다. 객석을 돌아보니 20대로 보이는 관객부터 백발의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이 관객 중에서 90년대에도 이 필름을 보았던 사람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90년대에 그들이 극장에서 가졌던 체험과 2024년의 체험은 무엇이 다른가. 90년대 관객의 관람과 나의 관람은 무엇이 다른가.

벤야민은 산딸기 오믈레트(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라는 에피소드에서 재현 불가능성을 말한다. 과거에 아무리 맛있게 먹었던 음식일지라도 당시의 주어진 환경, 즉 분위기가 다르다면 그 맛을 재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 생각에 따른다면, 90년대의 관람과 2024년의 관람은 같은 관객일지라도 절대 같을 수가 없다. 영화관 좌석의 단차가 낮고 앞뒤 좌석 사이의 거리가 좁아 세로 자막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90년대의 환경과, 널찍한 좌석에 앉아서 앞 사람 뒤통수의 방해 없이 세로 자막을 읽는 일은 분명 다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90년대에 영화를 보는 개인과 2024년에 영화를 보는 개인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시대적 경험이 다른 관객을 한곳으로 모아주는 곳이 영화관이다. 그런데, 혹여 영화관이 필름의 자취를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상이 산촌여정에서 카누도의 표현을 빌려 말하듯, 필름 영화는 한때 온갖 예술 위에 군림하는 종합예술이었다. 하지만 여러 방식을 거치며 다른 매체에 자리를 내줬다. 필름은 디지털에, 영화는 TV, 영화관은 OTT. 거대 자본이 뛰어든 OTT 시장은 극장 영화의 전망에 드리운 그림자다. 이대로라면 영화관은 필름의 전철을 밟으며 점차 대체될 수밖에 없다는 어두운 전망밖에 남지 않는다.

이 전망에 답하는 것이 이번 <1990s 시네마테크의 필름들> 프로그램이었다. 영자원은 프로그램 소개를 통해 시네마테크라는 물리적 공간에 모여서, 영화사 상 가장 오래된 물리적 지지체인 필름으로 영화를 함께 보는 체험은 지금의 시네필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묻기 위해 기획하였다고 밝혔다. 설명대로, 필름은 한 영화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실체다. 2024년의 필름 상영회는 그럼에도 필름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예증한다. 극장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킥킥 웃음소리가 거슬리지 않는 공감을 만들어 낼 수도 있듯이, ‘함께 보는 체험은 영화관이 가진 강력한 힘이다. 1989년에 탄생해 1996년 한국에 들어온 영화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과 한 공간에서, 그것도 그 당시의 필름으로 2024년의 내가 보는 경험은 정말 짜릿한 경험 아닐까. 이 경험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영화관은 살아남을 것이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축소되는 것은 막기 힘들지라도.